다시 찾은 미술관

Detroit institute of Art (DIA)

by 러닝

다시 찾아 간 미술관.

지난 방문 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작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발버둥 쳤었다.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이미지를 머릿속에 쑤셔 넣느라 머리가 무겁고 두통이 찾아왔었다. 훌륭한 작품들이 있음에도 어느 하나의 작품도 깊게 들여다보지 못하였다. 무엇보다 작품을 즐기지 못하였다.

두 번째 방문. 첫 방문과는 사뭇 달랐다. 미술관의 건물 구조와 갤러리 분류 등을 이미 학습한 터라서, 보고 싶었던 갤러리 전시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호감 가는 작품을 발견하면 수십 분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이미지를 머릿속에 상세하게, 그리고 더 풍부하게 그려 넣었다. 그런 과정에서 눈가 주변이 촉촉해지도 했고, 중세 시대의 생활 상에 가슴이 아려왔다. 어느 정물화에서는 멈춰있지 않은 하나의 대상이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움직이는 대상을 통해서 화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DIA 미술관이 전시한 65,000점의 작품 중 내게 인상 깊었던 작품 몇 가지를 감상하면서 내가 느낀 것들을 말해보려고 한다.


1. 터키를 정복하려 들어간 군사

[Mural Defeating the Turkish Army at Aboukir, 1805, Antoine-Jean Gros]

흔하디 흔한 전쟁 영웅을 우상시하는 그림인 줄 알았다. 이집트의 수많은 벽화들은 신을 숭배하는 그림도 많지만, 그 이상으로 파라오의 업적을 치켜세우는 영웅화시키는 벽화가 꽤나 많다. 파라오가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적들의 잘린 머리 서너 개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그 한 예이다. 적들은 매우 흉하게 생기고, 파라오는 늠름한 영웅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여유롭게 이 그림을 뜯어보니, 흥미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침략한 군대의 칼날이 적을 향하기보다는 반대편에 있었다. 적을 베거나 찌르기 위해서 앞을 향하고 있는 칼은 없었다. 오히려 도망가고 있는 이슬람 복장을 한 터키의 군대가 칼날을 앞을 향하고 있었다. 또한 그 누구도 피를 흐르지 않았다. 붉은 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침략자는 근엄한 표정을, 도망가는 적장은 악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림 속의 희생자들은 주로 두 부류였다. 도망가는 무리의 발에 밟히는 사람들과 터키 군인들이 찌르거나 도망가지 못하도록 잡힌 자국민들이었다. 그리고 어떤 터키 군인은 침략자를 환영하며 칼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이 그림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였다. 정복자들이 터키인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터키의 군인들이 자신의 국민을 살상하였다. 악랄한 터키의 적장이 이 같은 죽음의 원인이라는 것이었다. 이 시대에는 대중을 위한 언론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는 바, 어쩌면 이 그림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단이 되진 않았을까? 글자를 읽지 못하더라도,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과 긴박함, 절박감, 냉정함 등은 읽을 수 있을 테니깐. 시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매체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고 예술 작품도 그 손아귀에서 놓여 있었는 듯하다. 순수하게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인지, 정치적인 의도로 만들어진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보게 될 것 같다.



2. 피 흘리는 정물화

[Still Life with Fruit, Vegetables, and Dead Game, 1635-37, Frans Snyders]

지극히 정적인 정물화 속에 생명체들이 존재했다. 오른쪽 일부를 가리고 본다면, 일반적으로 흔히 알고 있는 정물화의 전형적인 그림일 수 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아기 사슴과 멧돼지. 같은 제목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여러 있었다. 각기 다른 화가이지만, 그들이 표현하는 방식이나 대상, 전달 메시지는 동일하였다. 마치 한 사람이 전부 다 그린 것처럼.

처음 작품을 접하였을 때, 느낀 것은 인간의 잔인함이었다. 단 한순간에 매우 강한 메시지와 이미지가 머릿속을 강타했다. 생명체에 대한 미안함과 인간의 잔인함에 숙연해졌다. 그 어떤 문자도 이렇게 강력하게 내뱉지 못할 것 같았다.



3. 중세 시대의 볏짚불

[Fire in a Staek of Wheat, 1856, Jules Breton]


[Peasant Fleeing a Burning Barn, Egbert Lievensz van der Poel]

최근에 건조한 날씨 탓에 산불로 온 나라가 걱정에 휩싸였던 적이 있었다. 중세 시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급박하고 초조했을 듯하다. 겨우 추수를 다하고 수확을 걷어들이려고 하는데 불이라니. 위험한 화마 속에서 초조하게 불을 끄고 있는 사람들은 소작농이었다. 마음씨 좋은 지주를 만났으면 모를까, 화재로 인한 피해의 대부분을 소작농에게 돌아가지는 않았을까? 헛간에 불이 닥쳐서, 가축들과 대피하는 그들의 급박함과 절박함이 전해진다. 중세 시대의 서민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4. 그 시절의 풍경들

[The Fair at Oegstgeest, 1655-60, Jan Havicksz Steen]


[Wooded Landscape with a Stream, 1665-70, Jacob Isaakz van Ruisdael]


[Landscape of Ancient Greece, 1786, Pierre-Henri de Valenciennes]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얻은 것이 하나 있었다. 눈을 감고 회상하는 이미지 속의 온기, 바람, 공간, 기분 등을 이전보다 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생생하게 그려 넣은 작품들을 보면서, 그 시대의 풍경들이 생생하게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물론 상상 속의 세계일지라도 시장 번화가의 어수선함, 조용한 자연 속의 물소리, 그리스 사람들, 마치 그림 속 세상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또 하나의 착각이 있다. 사진 보다 그림이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순간 포착한 사진들에서 사람들의 표정이 생동감을 더해주기는 하지만, 그림 속에서는 한 사람의 표정이 아닌 전반적인 그림 속 풍경, 햇빛, 행동, 표정들이 오히려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5. 고흐의 작품.

[The Diggers, 1889, Vincent van Gogh]

해당 미술관에는 고흐의 작품 3점이 걸려 있었다. 초상화, 우편부를 그린 작품, 그리고 바로 땅을 파고 있는 이 작품이다. 노란색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외로움! 나는 그 이외의 것은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AI의 검색어 연동 때문인지, 유튜브에 책 소개 <반 고흐, 영혼의 편지>가 나왔다. 고흐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흐와 남동생이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 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 편지들이 공개되기 이전에는, 고흐는 정신 질환자로 오해를 받고 그의 작품 또한 낮은 평가를 받아왔었다고 한다. 그의 생애 동안은 생계를 유지하지도 못할 정도로 굉장히 궁핍하게 살았으며, 남동생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작품을 그려나갈 수 있었다. 고흐는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수많은 고뇌와 연민을 가진 마음 따뜻한 화가였다. 이제,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읽으며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다.



처음에는 약 4시간, 두 번째는 2시간을 감상하였다. 아직도 나의 마음속에 담고 싶은 작품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또다시 세 번째 방문을 조만간 할 예정이다. 벌써부터 두근 거린다. 처음과는 너무 다른 두 번째 방문이었기에, 세 번째 방문은 또 어떠한 것들을 담아 갈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어쩌면 기본적인 상식조차 알지는 못하지만 예술 작품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인지, 감성이 깊어지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을 보는 세상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마치 낯선 여행지를 찾았을 때처럼 흥분되는 활력, 따뜻한 마음, 현지인들의 목소리가 닿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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