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다
어느 추운 겨울,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매서운 추위가 나를 관통했다. 차가운 공기가 이마와 콧방울에 머무르면서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차가움들이 하찮게 느껴질 만큼 뱃속의 온 장기들이 얼어 가는 기분이 들었다. 시뻘게진 눈에서 흐르는 눈물마저 얼어붙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아득히 먼 다른 세상으로 정신이 넘어갔다.
삐-삐-삐-삐삐 삐삐삐.
요란하게 울려대는 심장 박동을 측정하는 기기의 알람 소리가 나를 깨웠다. 희미한 불빛 사이로 보이는 하얀 해파리와 그것의 수많은 촉수가 나의 가슴과 팔에 닿아 있었다.
터벅, 터벅, 벅벅벅벅벅.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듯한 발걸음이 점점 크고 분명하게 근처까지 들려왔다.
드르륵 드르르륵.
갑자기 수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을 울려댄다. 분명하지 않은 말소리들과 빠르게 지나쳐가는 촉수들, 뿌옇게 보이는 앞과 귓속을 가득 메운 소음에 답답함과 머리가 깨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길가 한편에 있는 나무 가판대를 향해 매섭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위에 놓여 있는 현지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위장이 구멍이라도 났는지 허겁지겁 집어넣어도 채워지지 않았다. 평소에도 많이 먹는 편이긴 했으나, 허기가 무척이나 심했었던 것 같다. 내가 먹었던 길거리 음식들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지나가며 코를 찌르는 듯한 역한 냄새에 손으로 코를 막고 찡그린 얼굴을 한 채, 빠르게 통과했던 거기였다. 어떻게 그것들이 내 입속 가득 구겨 들어갔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나는 가판대 위에 널브러져 있던 음식들, 무엇으로 만든지도 모르는 그것을 빠르게 해치웠다. 그러고 나서도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마시려고 두리번거리던 중, 길 위에서 머뭇머뭇거렸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왔다. 힘겹게 밀어 올리며 버둥거렸다. 순간순간 정신이 날아갔다가 돌아왔다. 오렌지 주스 마시는 것도 포기했다. 숙소를 향해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십여분이면 갈 거리였는데 점점 멀어져 가는 듯했다. 마치 땅을 접어 달리는 축지법과는 반대로, 땅을 늘려서 그 위에서 발버둥 치는 듯했다. 세상의 시간은 그대로 흘러가는데 나의 시간만 멈추는 듯했다. 무거운 눈껍을 들어 올릴 때마다 주변은 빠르게 변해갔다. 나 혼자 어떤 시간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었다. 그래도 나의 시간도 흘러가긴 했다. 세상의 시곗바늘이 사분의 일만큼 돌았을 때쯤,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삐거덕 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선풍기를 틀고 바로 침대 위에 엎어졌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던 탓일까? 아니면 배가 너무 불러서 움직이기가 힘들어서였을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서서히 익어가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발가락 끝에서부터 가슴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지만, 목 뒤에서 새어 나오는 땀방울로 인한 끈적임에 찝찝해하며 두 눈이 켜졌다. 눈부신 햇살이 커다란 유리창을 관통하여 나에게 닿고 있았다. 하지만 강한 햇빛 탓에 해맑은 태양이 썩 반갑지는 않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 시원함이 어디에서 오는지 발아래를 쳐다보았다. 흰색이 바랜 누런 선풍기가 끼기기긱 거리며 차가움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또다시 잠이 든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