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외출
'삐-------'
일정한 단음이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얼굴이 붉게 피범벅이 된 경찰을 보고 충격을 먹은 탓인지, 그대로 그 자리에서 얼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 경찰이 내가 잘 아는 듯한 그 누군가와 얼굴이 겹쳐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봐요? 괜찮아요?"
주위에 있던 행인으로 보이는 모자 쓴 한 남자가 말을 걸어 왔지만, 입에서는 아무런 말도 밖으로 내지 못했다. 초점없는 눈동자로 바닥을 향해 쳐다보고만 있다가 그의 말에 간신히 눈만 주위를 두리번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응급차와 경찰차가 사건 현장 근처로 접근하고 있었다. 물음에도 아무런 대꾸가 없자 그 사람은 나의 팔을 잡고 흔들며 다시 말했다.
"응급차가 왔으니깐 이제 옆으로 좀 비켜서세요."
그 사람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이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를 부축하게 하며 구조대의 앞길을 확보했다.
물리적 접촉이 있고나서야 조금씩 제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때, 그 모자 쓴 남자가 다시 말했다.
"괜찮아요? " 그리고 나서 내가 말이 없자, 나를 부축해주던 주변 사람에게 요청했다.
"그 분 좀 잠시 부축하고 있어요. 쓰러질꺼 같으니깐."
"아, 괜찮아요." 짧은 한마디라도 다시 입 밖으로 말을 뱉을 수 있었다.
"일단 심각하게 부상 당한 경찰 먼저 보내고나서 불편하면 뒤에온 응급차에 같이 타세요"
말하고 있는 그의 모자와 복장이 보였다. 그는 뒤늦게 도착했던 경찰관이었다. 내가 아는 그 누군가와 닮은 사람이 피범벅을 한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는 듯 했다. 누군가가 가져다 준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옆 사람의 도움으로 앉을 수 있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고난 경찰관과 구조대원들을 보고 있었지만, 일부는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은 경찰차와 응급차가 도착해 있었다. 마치 내가 은둔 생활하기 전에 보았었던 그 마지막 모습과 닮아 있었다.
피범벅이 된 도로, 빨간색과 파란색이 교차하는 불빛, 요란한 소음들.
그때와 너무 닮아 있었다. 제 정신을 차리고 얼마지 않아 사고를 뒷수습하고 있는 경찰들과 남아있는 일부 행인들이 눈에 보였다. 어느 순간 그 많던 사람들은 사라져 있었다. 그때와 같았다. 혼미한 정신으로 있다가 어느덧 빠르게 지나가 버린 시간들.
"진짜 괜찮겠어요?"
"네, 이제 괜찮아졌어요. 감사합니다. 진짜 감사합니다."
나를 부축해주고 자리를 내주었던 사람이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나서 사건 현장에서 사라졌다.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미 한참 전에 대부분의 사람이 제 갈길을 갔는데 나 때문에 아직 기다리고 있었나 보았다. 아직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는 없었지만 그 분이 가실 때 목을 숙여 인사드렸다.
"하~ 참 힘들구나. 겨우 다시 나온 세상이 이렇다니."
혼잣말을 내뱉으며 움직일 기력을 차리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다리의 무게가 천근만근이었다. 어떻게 된 게 처음 나왔을 때 보다 더 몸이 무거워지고 뻣뻣해지는것 같았다. 이제는 걷는 동안에도 허벅지 근육이 움직이지 않고 수수깡 처럼 가만히 있는듯 느껴졌다. 꼭 남의 다리가 된 것 처럼 말이다.
"후~ 이제야 겨우 도착했네"
처음 나왔었던 골목길 입구가 보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바로 그곳이었다. 복면을 쓴 남자와 부딪힌 곳. 겨우 반나절 동안 두 차례의 절도와 강도 사건을 마주쳤다. 변한 세상에 씁쓸함이 목구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집이 있는 골목길 안으로 들어갈 찰나 갑자기 눈 앞이 깜깜한 어둠으로 덮였다. 누군가가 몸을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공황상태에 다시 빠진걸까?'
"야! 왠일이야, 니가 밥값 할 때도 있고?"
"오~~ 아슬아슬했네, 하루만 더 지났으면 니가 저 신세가 되었을텐데..."
한동안 침묵하였던 주변에서 낯선 목소리가 여기저기 들려왔다.
"에잇, 무슨 말이십니까, 형님. 항상 밥값할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말은 바로 곁에서 들렸다. 그 사람이 나를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것 같았다.
"읍... 읍읍"
입에 제갈이 물렸는지 말 대신에 신음 소리만 낼 수 있을 있었다.
"야!야! 죽기 싫으면 발버둥 치지마라!"
손과 발도 묶여 있었다. 누군가의 어깨에 짐짝처럼 들쳐 업혀져 있었다. 거세게 몸부림을 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