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과 바깥세상의 변화
바이러스는 고대로부터 혐오와 박멸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드래곤 하트라는 바이러스는 오히려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돈과 권력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복권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 복권을 긁으면 주로 2가지 중 하나였다. '꽝'은 죽음을 의미했고, '당첨'은 신체 강화를 의미했다. 더불어 부를 갖춘 이들은 일종의 마약처럼 새로운 유희로 생각하였다. 드래곤 하트 감염자의 피로 만든 BLOOD SHOT을 자신에게 주사해서 변화를 꿈꾸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이 소유한 그룹의 구성원에게도 주사하였다. 보다 큰 권력과 힘을 손에 넣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 이상한 바이러스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가는 동안, 죄책감 가득한 동굴 속에서 천천히 기어 나왔다. 언제까지 현실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며칠 전부터 근육이 경직되는 증상이 시작되었다. 미디어에서 떠들던 감염자 신체의 근육 섬유화, '석화'라고 불리는 과정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석화'는 감염자가 사망에 이르기 전에 일어나는 전초증상이라고 밝혀 왔다. '석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진 것은 없지만, 이대로 집 안에서 은둔하며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이봐요! 제발 그 사람 좀 잡아줘요"
"야! 저리 비켜~"
집 골목을 나오자마자 복면 쓴 사내가 가슴을 툭 밀치며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뒤로 점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앞치마를 두르고 거리를 뛰다가 지쳐 헐떡 거리고 있었다.
한국이라고 도무지 믿기지 않는 모습들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거리의 몇몇 상가들의 유리창이 깨져있었고,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상가에는 굵은 쇠창살이 쳐져 있거나, 철로 만든 문으로 함부로 접근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세상은 더 이상 예전에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은둔 생활 동안 모든 멀티미디어를 멀리하고 있어서였을까,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집 밖은 나의 신체만큼이나 변해있었다. 한걸음 한걸음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웠다. 굳어버리고 무거운 다리를 들어 올려서 다시 앞으로 내미는 단순한 동작이 마치 헬스클럽에서 무거운 기구를 드는 만큼이나 근육들에 부하가 걸렸다. 어떻게 이렇게 변했을까? 나의 세상도, 집 밖의 세상도...
"아저씨, 괜찮아요? 죄송해요 도와드리고 싶었지만..."
사라져 버린 도둑을 향해 토로하고 있는 상인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후~~ 알아요. 걷는 것도 힘겨워 보이는걸"
한숨을 내쉬며 상인은 대답했다.
"저기 오랜만에 집 밖을 나와서 그런데, 왜 이렇게 세상이 변했죠?"
"왜긴 왜야, 신체 기능이 강화된 감염자들을 경찰도 잡지 못하니,
어느 순간 저 녀석들이 저렇게 날뛰는 거지. 이제 완전 무법지대야. 무법지대"
"정부에서는 뭐 하고 있나요? 경찰특공대나 군인들이 동원되진 않았나요?"
"동원되었지. 근데 이런 자잘한 것에는 안 와! 그 용신교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와 대치하는데 대부분 동원하더라고. 그리고 정치인들이 말로는 맨날 서민들의 치안이라고 강조하면 뭐 해. 실제로는 돈 많은 놈들, 재벌들 보호하는데만 신경 쓰는 걸. 무슨 빌딩 같은 곳만 둘러싸고 있어. 그나마 도심지는 좀 나은데, 변두리에는 이 모양 이 꼴이야."
가게 주인의 한탄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너무나 비현실적인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 가게 주인들도 거의 다 접었어. 도둑과 강도에 속수무책이니 방법이 있나. 그래도 나는 먹고살려고 버티고 버티었는데...
이제는 다 끝난거 같아. 더 이상은 못하겠어."
"정말 힘드시겠어요. 해드릴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네요. 힘내시라는 말 밖에는..."
"자네도 얼른 집으로 들어가. 괜히 저놈들에게 해코지 안 당하게."
"네 감사합니다. 아저씨도 힘내세요."
아저씨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큰 대로변으로 발길을 옮겼다. 제대로 몸도 건사하지 못한 상태에서 돌아다니다가는 큰일일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 위해서는 바깥세상을 더 알아야만 했다. 딱딱하게 온몸이 굳어져, 마치 로봇이 걷는 것 마냥 어기적 어기적 거리면서도 계속 걸어갔다.
"꺄악!"
갑작스러운 비명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는 대형 쇼윈도의 유리가 굉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져 나가 있었다. 붉은 복면을 한 사람들이 창 밖의 쇠창살까지 휘어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해는 저물고 있었지만, 아직 거리에 몇몇 행인이 있음에도 그들은 과감하게 침입하였다. 요란한 경고 알림 소리가 금은방에서 울려 퍼져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붉은 복면의 2인조가 각각 검은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때마침 경찰차 한대가 도착했다. 경찰관 3명이 차에서 내리자, 2명의 경찰관은 삼단봉을 펼치고, 나머지 한 명은 강도에게 전기충격기를 향하며 대치하였다. 바로 눈앞에서 강도와 경찰관의 대치를 보며 먼발치에서 행인들이 모이고 있었다. 빠져나가려는 강도들을 향해 삼단봉을 휘두르며 경찰관이 막았지만, 그들의 굵직한 팔이 뻗어 나와 봉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봉을 이리저리 흔들자 경찰관이 오히려 휘두른 방향으로 내쳐지며 바닥을 뒹굴었다. 다른 경찰관도 다르지 않았다. 대치했던 강도에게 폭행을 당했는지 그 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마지막 남은 경찰관이 전기 충격기를 복면한 강도에게 발사했지만 그들은 잠깐 꿈틀거리더니, 몸에 쳐진 전선줄을 걷어내며 마주한 경찰에게 주먹을 날려서 쓰러뜨렸다. 주위에서 보고 있던 내가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강도의 매서운 눈빛에 휴대폰을 숨기고 뒤로 물러났다. 경찰도 어찌하지 못한 강도를 내가 어찌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주위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굴복한 순간이었다. 잠시 후 반가운 소리가 멀리에서 들려왔다. 또 다른 경찰차 소리였다. 그러나 그들은 삼단봉을 들고 주위에 위협을 가한 뒤, 세워져 있던 경찰차를 탈취하여 달아났다. 순식간이었다. 공포와 동시에 무력감이 주변을 휘감았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기절해 있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경찰의 얼굴을 본 순간 섬뜩했다. 피범벅이 된 그의 얼굴에 오른쪽 눈 주위와 광대뼈가 함몰되어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경찰은 동료에게 다가갔다. 행인들의 증언을 듣고 뒤늦게 도착한 경찰은 도주하는 강도를 쫒아라고 무전하였다.
"여기는 서남 사거리, 강도가 순찰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
동료의 얼굴을 확인한 경찰은 조끼에 매달린 무전기를 들어서 분노로 격양된 목소리로 다시 한번 소리쳤다.
"여기는 서남 2호, 서남 2호, 2인조 강도가 서남 3호를 탈취하여 종로방향으로 도주 중이다. 성지네거리 일대의 순찰차들은 추격 바란다. 현재 강도에게 동료 3명이 심각한 상해를 입었으니 응급차도 빨리 지원 바란다. 오버"
드래곤하트 팬데믹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마치 중세시대 이전으로 돌아간 듯이, 폭력이 난무하고 범죄율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였다. 특히 한국에서의 폭력사태는 심각했다. 감염자들과 용신교의 거센 반발과 저항은 군병력을 동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재하기 어려웠고 치안이 급격하게 나빠져 갔다. 번화가에는 소매치기들이 판을 쳤고, 음지의 골목에는 폭행하는 장면들이 흔하게 목격되었다. 무법천지가 된 대한민국. 팬데믹 이전에는 치안이 안정되고 밤에 다녀도 무사한 국가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길거리 치안이 몹시 불안정하게 변하였다. 경찰의 삼단봉과 전기 충격기는 감염자에게는 단순한 저주파 마사지 따위로 취급되었다. 심지어 감염자 집단이 출동한 경찰들을 유린하는 영상까지 SNS에 게시되어 논란이 많아졌다. 일반 시민들의 자기 방어를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불법 총기의 밀매가 성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