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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고살롱 Jun 03. 2023

엄마의 마침표. 나의 쉼표,

[레퍼런서 살롱] 죽음을 마주하고 변화된 삶의 태도, 레퍼런서 한혜진

시즌5의 <Live Today, 삶의 끝에서 바라본 오늘> 주제가 정해지고 레퍼런서 살롱의 연사로 혜진님이 떠올랐어요. 시즌 2부터 레퍼런서 멤버로 참여하며 소모임 등에서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셨지만, 상실과 애도를 통과한 혜진 님의 서사를 좀 더 깊게 들어보고 싶었어요. 어버이 주간이 있던 5/8 수요일 <엄마의 마침표. 나의 쉼표,>라는 주제로 한혜진님의  레퍼런서 살롱이 열렸어요.

Ⓒ창고살롱

혜진님은 레퍼런서 살롱 연사를 제안받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엄마의 죽음을 소재로 이야기하는 것이 고민되셨다고 해요. 하지만 “Live Today! 삶의 끝에서 보는 오늘”이라는 주제를 보고 수락하기로 결정하셨다고 했어요. 시즌4 레퍼런서 살롱 연사였던 레퍼런서 성애님의 “두려움을 부를 수도, 물리칠 수도 있는 당신”이라는 문장을 품고 준비하셨어요.



# 슬픔을 온몸으로 통과한 자


혜진님을 가장 잘 소개할 수 있는 말은 #슬픔을 온몸으로 통과한 자에요.

슬픔이 사라지면 엄마가 사라질 것 같은 두려운 마음으로 주변에서 걱정할 만큼 슬픔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시간을 보냈어요. 20대 때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던 혜진님은 문과에서 디자인으로도 전공을 바꿔 패션 디자이너로 취업을 했어요. 그런데 패션 분야는 타고난 예술가가 많아 평범한 자신을 보며 위축된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성실함과 열정으로 재능을 메꾸듯이 일이 삶이 되는 삶을 살았어요.

Ⓒ창고살롱

20대 후반에 결혼해 30대 초반에 엄마가 되었지만, 우선순위가 뒤바뀐 삶을 살았어요. 아이는 친정에 맡기고 주말에 만나는 ‘위켄드 맘’을 하며 여전히 일에만 몰두했어요. 회사에서 인정받는 상황이 만족스럽고 타인의 기준에 맞춰진 우선순위가 뒤바뀐 삶이 어느 순간부터 공허해졌다고 해요.



# 오늘이 나의 마지막일 수도 있겠구나


어느 날 행사준비를 하던 중에 철제 구조가 혜진님을 덮치며 넘어오는 사고가 있었다고 해요. 척추와 머리를 부딪히고 쓰러지는 일이 벌어졌어요. 쓰러지는 순간, 가장 미안했던 친정엄마와 엄마 품이 그리운 6개월  아이,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고 해요. 4개월간 척추 깁스와 통원 치료로 산재와 육아 휴직으로 1년을  쉬고 복직했대요. 하지만 여전히 공백의 시간을 메꿔야 한다는 마음으로 또다시 일에 매몰된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해요. 주말이 되면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느라 급급하고 분주한 일상을 보냈고요.

 

어느 날 몸에 쥐가 나는 현상이 계속되어 MRI를 찍었는데, 가족 여행을 떠나는 날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더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해요. 여행 후, 뇌종양 진단을 받으셨대요.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 동의서를 보면서 신경 이상 후유증과 죽음에 대한 깊은 두려움을 느꼈어요. 엄마께서 수술 당일 날 머리를 땋아 주셨는데 엄마의 울음을 참는 소리에 힘들었지만, 이 또한 잘 지나가셨다고 해요.

이후 가족들과 삶을 돌아보며 평범한 일상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고 해요. 매일 새벽 예배를 나가시는 엄마는 혜진님의 회복을 보며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셨고요.


#그리고 6개월 후

Ⓒ창고살롱


“엄마 생신 일주일을 앞둔  가족이 모여있는 어느 날, 임신 중이던 여동생이 제부를 데리러 가는 길에 요리하시던 엄마가 동행하셨어요. 급히 나가시느라고 얇은 옷차림이셨는데, 차 안에서 급성 심정지로 쓰러지셨어요. 119를 기다리며 아스팔트 위에서 호흡을 잃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먼 여행을 떠나셨어요."


이때까지 혜진님께 죽음은 먼 타인의 이야기였다고 해요. 슬픔과 죽음에 있어 취약 계층인 가족에게 죽음은 어떤 노크도 없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해요.


#엄마를 소개합니다

Ⓒ창고살롱

혜진 님 어머니는 학창 시절 문학소녀라는 별명이 있으실 정도로 글과 일기 쓰기를 좋아하셨다고 해요. 

온유하지만 강단도 있으신 가족 중심의 삶을 사시는 숨은 리더셨다고요.

엄마의 심폐 소생술을 지켜보며 마지막을 함께 한 여동생은 엄마의 뺨을 타고 흐른 눈물을 전해주었는데, 그 눈물이 꼭 삶에 대한 미련 같아서 많이 생각이 났다고 해요. 

혜진님은 엄마 책장에서 <인생 수업> 책을 발견하는데요. 몇 년 동안 수도 없이 죽음(슬픔)의 5단계인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을 반복하다가 결국은 엄마의 부재와 죽음이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셨어요. 

내가 인정하고 잊어버리면 엄마의 삶도 마침표를 찍는 것 같았어요. 마음을 부여잡고 있던 시간이었어요.

슬픔의 터널을 지나며 많은 사람들과 가족과 ‘함께’ 이겨냈다는 혜진님은 충분히 이야기하고 복기하고 표현하며 더욱 단단해지셨어요.


“엄마의 죽음은 나의 성장과 가족의 행복에만 집중하며 살던 제가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하고 싶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했어요. 
이 시간을 지나며 제가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기를 소망하고 있는 지금입니다.”

Ⓒ창고살롱

#삶을 아름답게 하는 안내자


“무섭기만 했던 죽음이 이제는 무섭지 않고 보이지 않는 삶의 좌표처럼 세워져 있어요. 죽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스며들어 안내자가 되더라고요. 엄마는 여전히 저에게 안내자 같아요.” 

이별을 겪고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며 삶의 유한함을 깨닫게 되었다는 혜진님. 

그 힘이  하루를 더 잘 살아내게 안내해 준다고 하셨어요. 이제는 기준에 맞춰 달려가는 삶이 아니라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



# 다시, 삶을 살아가는 태도


1. 엄마와의 이별을 통해 가장 큰 변화는 삶의 우선순위의 회복이었다고 해요.

 “죽음 앞에 대고 보면 어떤 것도 쨉이 되지 않더라고요. “

가족의 존재가 당연하지 않고 오늘 이 순간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해요. 살아가는 데는 2가지 방법이 있다고 해요.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다’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인데요. 이제 인생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해요.


2. 두려움에서 멀어지다

불안이 높은 성향이라 두려움이 많았는데 엄마의 부재를 수용하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이 ‘나 역시 언제 어떤 상황에서 죽을지 모르겠다’라고 생각한다고 해요. 삶의 유한함 앞에 있으면, 많은 일이 두렵지 않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진다고요. 

죽고 난 이후에는 엄마가 계시니까요.” 

두려움의 뿌리에는 ‘죽음과 생존과 연결된 본질적인 두려움’이 있다고 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니 생존하고,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이 옅어지는 시간이 되어간다고 해요.

Ⓒ창고살롱


3. 삶의 시선이 확장되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타인의 아픔과 슬픔에 대한 공감이 커졌다고 해요. 슬픔을 겪은 혜진님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 닿을 수 있다는 것이 귀하게 느껴진다고 했어요. 일에서도 관계가 화합되면 좋은 결과는 따라온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사람보다 일이 우선되지 않도록 ‘1도씩 전환하는 힘’을 기대하며 나아가고 있다고 해요.


확장을 이야기하며 창고살롱 이야기도 해주셨어요. 

“보이는 것이 중요한 패션 분야의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오던 때였어요. ‘지속 가능한 일과 삶’이란 창고살롱 문장을 보고 공감되는 마음에 이끌리듯 창고살롱 멤버가 되었어요. 새로운 커리어 방향을 고민하며 커뮤니티에 들어왔는데 이상하게도 다른 부분들이 채워져 나갔어요.”

 

저널링 소모임을 통해 신앙의 영역이 회복되고, 글쓰기 소모임을 통해 엄마의 흔적과 추억을 기록하기 시작했어요. 사라질 것 같은, 마음속에만 고여있던 엄마 이야기를 쓰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어요. 글쓰기를 통해 엄마는 부재하지만, 함께 하는 방법을 배우고 엄마와의 세계로 삶이 확장되어 가는 시간을 경험했다고 해요.

Ⓒ창고살롱

# 기일콘서트


엄마의 첫 기일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일상에서 함께 하는 엄마’를 집중해서 기억하고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나누며 보내자고 가족들에게 제안하셨다고 해요.

“아빠는 처음으로 갈비찜을 하시면서 못하는 음식이 없는 셰프가 되셨어요. 아빠에게는 색소폰 공연을, 아이들에게는 할머니를 위한 노래를 부탁했어요. 남동생과 저는 엄마의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어린 시절부터의 엄마의 사진과 서사가 담긴 영상을, 여동생은 앨범을 만들었어요. 목소리가 좋은 남편에게는 예배와 콘서트의 진행을 부탁했어요. 미처 전하지 못한 편지를 준비하고 하얀 꽃다발과 소품으로 메모리얼 테이블을 만들고, 가족들이 엄마를 위한, 서로를 위한 공연을 시작했어요. 참을 수 없는 그리움에 눈물바다가 되었는데, 온기와 사랑을 깊게 느낄 수 있었어요. 엄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추모하는 시간이었어요.”


혜진님은 매년 다른 형식으로 마음이 하나 되어 엄마를 기리는 기일을 소개해 주셨어요. 최근에는 친구의 지인 어머니의 첫 기일에 함께 꽃을 고르고, 편지를 쓰며 울컥하는 마음이 차오르기도 하셨다고 해요. 가족의 상실을 경험하고 첫 기일에 막막한 마음이 들 때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무조건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다고도 전했어요. 혜진님의 경험과 위로의 마음이 어떻게 넥스트 콜링으로 연결되어 갈지 기대되는 밤이었습니다. 

Ⓒ창고살롱

엄마가 책을 좋아했다는 사실에 사라져 버린 엄마와 함께 스며드는 느낌이 드는 책과 자연이 좋아졌다고 해요. 애도의 시간 동안 힘이 된  책과 영화도 소개해 주셨어요. 

Ⓒ창고살롱


 “창고살롱은 왜 시즌 5의 주제를 죽음으로 잡았을까? 삶을 이야기하려면 죽음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는 죽음을 앞에 두고서만 가능한 것 같아요. 답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그 해답은 창고살롱 시즌 5 주제인 Live Today라고 생각하고요.”  


조금은 불편하고 어려운 주제인 죽음을 나누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며, 혜진님의 새로운 여정의 첫 번째 발걸음이 레퍼런서 살롱이 된 것 같다고 감사하는 마음도 전해주었어요. 



애도의 상실과 슬픔을 통과한 사람만이 나눠줄 수 있는 이야기에 모두 공감하며 

마음을 나누는 레퍼런서 살롱이었어요. 


미국 시애틀에 살고 있는 혜진님 여동생, 유진님도 스페셜 게스트로 함께 참여해 주셨는데요. 혜진님이 창고살롱을 통해 말로, 글로 엄마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가족들에게도 힘이 많이 되었다고 전해주셨어요. 레퍼런서 살롱에 참여해 보니 건강하게 애도하는 언니의 모습이 멋지고 감사하다고 말했어요.


시즌4 레퍼런서 살롱 연사였던 성애님도 물어보기 쉽지 않은 주제를 나눠주신 혜진님께 감사하다고 했어요. ‘기일’과 ‘콘서트’라는 단어가 같이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혜진님 가족의 기일이 어머니 보시기에 기쁘셨을 것 같다는 마음도 나눠주셨어요.


지금 애도의 시간을 보내는 중인 레퍼런서 미경님은 슬픔을 견디고 경험하신 분들의 위로가 다르다고, 오늘 레퍼런서 살롱이 그런 품이라고 말해 주셨어요. 혜진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가장 큰 위로라고 전해 주셨어요.


레퍼런서 쏘냐님은 가족을 갑자기 아이를 잃은 친구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여쭤보았는데요. 혜진님은 특별한 위로보다 이야기를 계속 나누고 꺼낼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하셨어요.


레퍼런서 민경님은 몇 년 전 어머님의 임종을 보고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려 주셨어요. 내가 옳다고 생각한 그 어떤 일도 ‘죽음 앞에서는 쨉이 안 된다는’ 혜진님 말에 깊이 공감을 해주셨고요. ‘그럴 수도 있지’라는 태도와 주변에 대한 시선이 따뜻해진 경험을 나눠주셨어요. 


레퍼런서 소네님은 최근 할머니와 외삼촌의 장례를 떠올리며 간접 경험을 나눌 수 있는 레퍼런서 살롱에 감사하다고 전해주셨어요. 


레퍼런서 두란님은 ’많이 슬프다는 건 그만큼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라며, 매일을 부지런히 사랑하며 살아야겠다고 하셨어요. 어떤 질문과 태도로 살아갈지 끊임없이 고민해야겠다는 바람도 나눠주셨고요. 


레퍼런서 은애님은 죽음, 아픔, 슬픔에 자주 공감하고 얘기하는 엄마를 이 시간을 통해 조금 이해할 것 같다고 전해주셨고요. 


레퍼런서 고운님은 인간의 물리적인 죽음 외에도 사회적 죽음, 관계적 죽음, 자아 존재적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셨다고 해요. 


레퍼런서 수진님은 ‘웃음이 아름다운 문학소녀’ DNA를 물려 받아 엄마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고 있는 혜진님이 계셔서 어머니는 다른 모습으로 여전히 함께하고 계신다는 생각도 전해주셨어요. 



마지막으로 혜진님은 이번 레퍼런서 살롱이 사적인 엄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 애도의 시간이 된 것 같다고 하셨어요.
이런 방식이 아니라면 삶에 대한 소중함을 알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을 알게 되셨다는 말과 함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창고살롱이라는 안전한 판에서 나눌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마무리 인사를 전했어요. 


레퍼런서 살롱을 통해, 죽음이 무거운 주제가 아니라 삶의 지표와 같은 이정표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밤이었습니다. 어머님의 상실과 애도의 솔직한 여정을 진심을 다해 전해주신 혜진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창고살롱 시즌5 한혜진님의 레퍼런서 살롱 인스타그램 후기는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레퍼런서 살롱은 레퍼런서 김종은님의 <기억이 이끄는 실천의 삶> 입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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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와 편집: 창고살롱지기 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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