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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oad Mar 12. 2022

밀레니얼의귀향

매일신문 22년 2월 22

2021년 한 해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 중 하나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를 강타한 '오징어 게임' 열풍일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참가자 숫자와 일치하는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생사를 가르는 서바이벌 게임을 다룬 드라마다. 단 17일 만에 1억1천100만 유료 가입 가구가 시청, 넷플릭스 역사상 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가구가 시청한 드라마가 되었다. 드라마의 성공과는 상관없이 개인적으로는 영화 기생충에 이어 불편한 심정이 있었다. 물론 두 스토리의 큰 줄기는 부의 양극화이기는 하지만 그 저변에 깔린 우리 사회의 물질주의에 대한 과도한 숭배가 마치 우리 집의 치부를 온 동네에 보여준 것 같아서였던 것 같다.


2021년 12월 이 불편함에 대해 공식적인 숫자가 나왔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 센터가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전 세계 17개국 성인 1만8천8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온라인 설문조사 결과가 그것이다. 전 세계 17개 선진국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한 결과, 한국만 유일하게 '물질적 행복'(material well-being)을 1위로 꼽았다. 이어 건강(17%), 가족(16%), 일반적 만족감(12%), 사회·자유(각각 5%) 순이었다. 대부분 국가에서도 '물질적 행복'은 5위 이내였지만 1위는 한국이 유일했다. 17개국 중 절대다수인 14개국에서 '가족'이 1위를 차지한 것과 대조적이다. 가족(38%), 직업(25%), 물질적 행복(19%) 순이었다.


우리나라 지방 소멸의 문제는 돈도 사람도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데 있다. 수도권으로의 집중 이유는 우리의 물질주의적 가치관과 관련이 있다. 수도권 집중은 우리가 선택한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라이프 스타일을 한 개인의 가치관이 관통하는 삶의 양식이라면,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관통한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은 아마도 성공, 명성, 부, 희소한 것들의 추구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로 올라가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데 목을 매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조직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데 일생을 허비했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모든 것은 집중된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인한 서울로의 과도한 집중은 한쪽에서는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소외의 문제를 다른 한쪽에서는 소멸의 문제를 야기한다.


힙스터의 성지 포틀랜드, 히피의 고장 오스틴 등 미국의 활기찬 지방 도시를 보면 가치관의 다양성이,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이 많이 보인다. 이것이 뉴욕이나 LA가 아닌 지방 도시를 활기차게 만들고, 결국에는 나라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들을 많이 본다. 조심스러울 수도 있지만 지방 소멸은 지방에 문화가 없어서,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서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고 본질적 문제는 우리의 가치관의 문제이다.                    


그러나 변화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2015년 한겨레 사회경제연구원이 19~34세 1천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이들 청년들은 물질주의적 가치관보다 삶의 질, 자아 실현, 행복 추구로의 가치 변화가 뚜렷하다고 조사 결과는 밝히고 있다. 6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바로 밀레니얼들의 중심이다. 퓨리서치 조사 결과는 전체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결과지만 우리의 청년들은 이미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의성에 가면 유명 요리학교를 나온 친구가 버려진 우체국 자리에 식당을 하는 안사 우정국이라는 곳이 있고, 문경에는 화수헌이라는 카페 및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부산에서 온 청년들이 있고, 영천에는 산과 보롬이라고 빈투바 초콜릿 가게를 운영하는 대구와 서울에서 온 청년들이 있다. 이미 지방 곳곳에는 밀레니얼 청년들이 내려와서 그들만의 속도로 오롯이 자기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자기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개척하고 있는데, 어쩌면 우리 사회는 이런 청년들의 가치관의 변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인식 못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가 바꾼 것은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속도라고 한다. 얼마 전 설에 우리는 귀향하지 못했지만, 밀레니얼들의 귀향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현실화될 것이다. 김춘수 시인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했다. 이 청년들의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의 변화에 이제는 이름을 붙여 보자. '밀레니얼의 귀향'이라고.


#퓨리서치#로컬크리에이터#화수헌#산과보롬#밀레니얼의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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