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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비 Nov 22. 2024

타인의 죽음이라는 경험을 회피하는 서비스

타인의 죽음은 경험이다

장례식은 죽음과 관련된 가장 핵심적인 서비스다. 죽은 이를 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이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장치다. 그런데 만약, 장례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죽음의 슬픔을 다룰 수 있는 서비스가 생긴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고인의 인격, 행동, 말투를 인공지능으로 복사해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그리고 이 복제된 고인과 계속 대화하고 교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더 이상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더 이상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 세상. 이런 서비스가 만들어졌을 때, 우리의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까?


[죽음은 어떻게 실감되는가?]


누군가의 죽음은 단순히 그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실감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의 실감은 그 부재가 내 삶에 가져오는 파편적인 변화들에서 온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고, 함께 했던 장소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특정 순간에 느꼈던 친밀함이 공허함으로 변할 때, 우리는 그 죽음을 “느낀다.”


그런데 만약, 인공지능을 통해 고인의 인격이 복제되어 계속 나와 교류할 수 있다면? 그가 살아 있을 때처럼 말하고, 반응하며, 마치 여전히 곁에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이런 기술은 죽음으로 인해 생기는 부재의 흔적들을 완전히 차단해버릴 것이다. 찬물결처럼 퍼져야 할 죽음의 여파가 인공지능이라는 장벽에 막혀버린다면, 우리는 그 죽음을 실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할 것이다.


[슬픔을 회피하는 인간, 그것을 돕는 기술]


인간은 본능적으로 고통을 피하려 한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가장 큰 고통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한 이 슬픔을 마주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복제된 고인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그는 여전히 나와 대화하고, 웃고, 내가 원할 때마다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다. 우리는 그를 통해 죽음의 슬픔과 공허함을 우회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슬픔을 피할수록, 우리는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죽음을 회피하는 세상이 될 때]


만약 이런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죽음은 더 이상 삶의 끝을 의미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문제로 축소될 것이다. 고인의 죽음은 “기억”이 아니라, “재현된 존재”로 대체된다.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인간 경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슬픔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상실을 통해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이러한 과정을 방해한다면, 우리는 죽음과 함께 관계와 감정의 깊이를 잃어가게 될 것이다.


죽음을 회피하는 사회는 인간 관계의 본질을 변형시킬 것이다. 죽음으로 인해 끝맺어져야 할 관계는 끝나지 않고, 기술에 의해 연장된다. 그리고 그 연장된 관계 속에서 우리는 진짜 상실의 의미를 경험하지 못한 채, 얕고 가벼운 연결 속에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


[죽음을 대체하는 기술의의 의미]


인공지능 장례식은 표면적으로는 인간에게 위안을 준다. 하지만 그 위안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본질적 경험을 차단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고, 그 상실을 통해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 과정이 사라질 때, 우리는 죽음이 가진 의미 자체를 잃게 된다.


더 나아가, 이런 기술은 죽음을 단순히 “데이터 보존” 문제로 축소시킨다.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기술로 해결 가능한 문제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죽음을 “기술로 해결”하려는 순간, 우리는 삶의 본질적 깊이와 관계의 유한성을 함께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남은 질문]


우리는 슬픔을 회피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그 욕망을 완벽히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인간 경험의 중요한 일부다. 그것은 관계를 되새기고, 사랑의 깊이를 느끼고, 삶의 가치를 깨닫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보편화된다면, 우리는 그런 과정에서 벗어나기 쉬워질 것이다.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 선택의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 슬픔 없는 삶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되는가?


더 나아가서, 무언가 잃게 되었다는것을 인지는 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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