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의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
선물지수가 낳는 고민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 중 하나는 지난 뉴욕선물거래소 및 런던선물거래소에서 장 마감 후의 커피 선물지수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분석자료를 보는 일이다. 물론 내 가장 친한 친구인 세븐 카페 한 잔과 함께.
장의 변화에 따라서 그 날의 무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대책 마련을 해야 하는 경우 머리가 아파오기도 한다.
뉴욕선물거래소가 휴장 하는 경우, 그 바로 이후의 장 가격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예상했던 바와는 달리 정말 오랜만에 하락장이어서 내심 기뻤다.
이 기쁜 마음에서 오늘의 단상이 시작되었다.
기본적으로 장이 하락하면 기분이 좋다.
먼저, 장이 하락하면 왜 나는 기분이 좋은가. 내 고객들이 기뻐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 고객들은 나 보다 더 선물 지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작 선물지수에 따라 계약단가(매입 가격)가 변하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고객들의 당연한 심리를 알기 때문에 나는 장이 하락할 때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특히 나와 계약을 differential로만 진행을 한 고객들이 GTC(Good Till Cancel) 오더를 설정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으며, 나는 매일 밤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하락장만을 바라게 된다. 고객이 원하는 수준까지 지수가 내려가서 내 고객들이 보다 좋은(경쟁력 있는) 가격에 커피를 매입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나에게 좋은 가격에 커피를 계약할 수 있다면 나에게도 보람이 있는 일이고, 고객에게도 기분 좋은 일이다. 이성을 조금이라도 갖춘 사람이라면 굳이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에 대하여 과한 지출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을 안다. 이러한 냉철한 이성의 판단은 한 회사가 발전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며, 이러한 역량 있는 회사들이 늘어날 때에 사회도 함께 발전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이 하락한다고 반드시 모두가 저렴하게 커피를 구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항상 타이밍이 중요하며 그 타이밍을 잘 아느 고객들만이 좋은 가격에 계약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고객이 기분 좋게 계약을 할 수 있다면 내 입장에서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장이 하락하면 마음이 답답해진다.
모든 산지에 있는 작은 단위의 소농들이 힘들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커피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각 산지별로 투입되는 시간, 자원, 인건비, 노력 등의 요소가 있다. 이외에도 예측할 수 없는 천재지변에 대한 리스크에 그저 무방비하게 노출되어있는 농가들이 많다.
선물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급격히 하락하게 되면(이 이유에 대해서는 차후 다뤄보면 좋을 것 같다) 생산자들이 투입한 모든 비용에 대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기 십상이다. 아무리 산지 프리미엄(D 혹은 differential)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산업과 시장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어려운 개별 생산자들 입장에서는 middlemen들과 marketing agent, 혹은 miller들에게 한 해 동안 고생한 수확물을 어쩔 수 없이 낮은 시장 가격에 맞추어 맡겨 팔 수밖에 없다. 산지마다 다르겠지만, 이미 판매된 체리 혹은 파치먼트 등에 대한 대금은 때로느 6개월 후에나 받을 수도 있으며, 그동안 선물지수가 상승했다 하더라도, 이 산업의 하이에나들은 결코 상승한 만큼에 대한 보상을 농가들에 하지 않는다.
이는 일반화해서 말해도 될 만큼 정말 많은 커피 산지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며,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공정무역(Fair Trade)의 프리미엄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고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이 된다. 공정무역 프리미엄은 생산자들에게 버퍼를 제공해주어서 기후/수확량 등이 급변하더라도 수요공급의 밸런스를 지켜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농가들이 커피 재배와 농법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하고, 관심 부족에서 오는 비효율성으로 인한 문제도 분명 크게 존재한다. 이러한 문제는 자본과 노하우가 있는 기업들이 조금씩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거대한 시장의 swing에 의한 타격을 방지하기에는 미미한 효과라고 보는 것이 아직은 적절한 것 같다.
이놈의 이중성, 어떻게 봐야 할까?
나 스스로가 봐도 참 이중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 이중성이 잘못된 것일까?
옳고 그름의 기준의 영역으로 이 문제를 옮겨보면, 이 문제가 딱히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다.
고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농민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나 딱히 잘못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위치에 놓이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쪽이 잘 됐으면 좋겠지만, 또 다른 한쪽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로는 우리 주변에서 겪는 많은 일들이 한쪽이 무조건 옳다고 믿기 쉽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을 알게 되는 경우들도 있는 것 같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이중적이더라도 양쪽이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랄 수는 없을까?
이중성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과 나
사실 이중성에 대하여 어릴 때는 맹목적인 반감이 있었지만 나이가 먹어갈수록 내 안에 있는 이중성을 보며 긍정적인 이중성과 부정적인 이중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긍정적인 이중성은 때로 나의 발전과 나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발전을 도울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도 경험하게 된다.
오늘도 내 안에 있는 이중성을 통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