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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윤 Oct 23. 2024

하와이의 그림자는 한국보다 짙다

2024. 10. 19.

하와이,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지 3일째다. 하와이는 처음이다 보니 제일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와이키키 해변 쪽에 숙소를 잡았다. 하와이엔 7일 동안 머무를 생각인데 숙소를 옮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7일 내내 같은 호텔에서 묵기로 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숙소 근처를 배회하며 산책하다 심심하면 바로 앞 해변에 몸을 담갔고, 셋째 날인 오늘은 근처 낮은 산에 등산을 다녀왔다. 서양권 여행이 처음인 아내는 온통 서양인들인 거리가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다 이제는 익숙해진 듯하다. 


3일 동안 가장 신기했던 건 날씨였다. 햇빛이 무척 강해 선글라스와 모자는 필수라는 사전조사를 통해 우양산까지 챙겨간 우리는 한국의 한여름과 같은 날씨를 생각했었다. 아침 8시 즈음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선선한 공기가 우리를 맞아주길래 아침이라서 선선한가 싶었지만 햇빛을 쬐자마자  깨달았다. 햇빛이 없는 곳만 선선하구나.




이곳은 햇빛을 직접 맞냐 안 맞냐의 차이가 굉장히 크다.


한국의 여름은 햇빛을 맞는 쪽이 물론 더 덥긴 하지만 그늘에 있다 한들 습도가 높아 땀이 잘 식지 않고 더위로 인한 불쾌감이 사라지진 않는다. 또한 덥다는 느낌이 찜질방 불가마에 들어가 있는 듯한 숨 막히는 더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와이는 햇빛을 받는 쪽은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냥 '덥다' 라기보단 '뜨겁다'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 습도가 높진 않아서 찜질방에 있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피부가 느끼는 온도는 더 높은 것 같은데 심리적 온도는 더 낮은 것 같다. 제일 신기한 점은 나무그늘이던 건물그늘이던 그늘로 들어가자마자 선선해진다. 바로 한 발자국 옆 차이인데도 체감온도가 무척 다르다. 습도가 낮고 바람도 잘 불어서 그런지 그냥 그늘에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잘 식는다.  




이곳의 사람들은 양산을 잘 쓰지 않는다. 이 뜨거운 햇빛을 그저 온전히 받아들이며 걸어 다닌다. 싼 호텔값을 지불하고 놀러 온 사람들, 현지에 사는 직원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신기한 유형의 노숙자들(왜인지 노숙자들이 꽤나 많았다) 모두 같은 거리의 햇빛 속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닌다.


나는 다 안 쓰는 걸 보니 쓰지 않는 문화가 있는 게 아닐까 했고, 아내는 더우니까 그냥 쓰자고 했다. 솔직히 양산을 쓰면 나약한 동양인처럼 보일 것 같았다. 아내는 그럼 혼자 쓰겠다고 양산을 펼쳤다.


한 다섯 발자국 버텼다. 바로 옆 이동식 그늘 밑에서 움직이는 아내가 너무 부러워 보였고 나도 모르게 양산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양산은 정말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특히 직사광선을 받냐 안 받냐로 체감온도가 크게 달라지는 하와이에선 한국보다 훨씬 다이내믹한 온도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양산을 쓰고 가다 보니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햇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어질까? 양산이 만들어주는 그림자의 효과가 한국보다 좋아서 그런지 눈앞 바닥을 자세히 보다 보니 한국보다 림자의 색이 더 짙은 것 같기도 하다. 


고개를 들어 하와이 거리를 바라보니 강한 햇빛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진한 그림자들 덕분에 명암 대비가 커져 도시가 더욱 선명해 보인다. 하와이가 다른 휴양지들보다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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