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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 MeMo Apr 12. 2019

매번 실패하는 옷 정리



 옷을 참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특이하고 남들하고 다른 옷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간간히 너무 튀었던 날도 있었다. 아직도 몇 년 만에 대학 후배들을 만나면 ‘오빠 그 빨간 바지’를 언급할 때가 있으니까. 참 낯이 두꺼웠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나이를 들어가니 몸에 잘 맞고 무난한 디자인의 옷에 눈이 더 간다. 지금 내 옷장에는 검정, 하양, 회색, 남색, 진청 이렇게 다섯 가지 색에 아무 무늬 없는 옷들만 남았다.


 재작년부터 옷을 잘 사지 않다. 환경적인 삶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면서부터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패션산업에 작게라도 거들고 싶지 않아서다. 그리고 옷으로 내 특성을 표현한다   표피적인 인간이 되는 느낌이 들. 그러다 보니 몇 년간 유행과는 거리가 있는 무던한 스타일로 바뀌었고 소위 ‘신상’들이 필요 없게 되었다. 신던 데로 신고 입던 대로 입는다.


더우면 벗고 추우면 겹쳐 입는다. 그러다 보니 항상 같은 모습으로 다니게 되는데 그게 아주 마음을 편하게 한다. 어렸을 때였으면 계속 난 빌딩 유리창에 비추어보며 오늘 괜찮은지 불안해했겠지(사실은 지금도 구부정한 자세를 교정한다는 핑계로 가끔 그런다).


 작은 방에 비해서 가진 옷이 너무 많다는 생각에 주기적으로 옷 정리를 하는데 생각보다 효율이 좋지 않다. 좀처럼 버리질 못한다. 살아온 시간들이 쌓일수록 애착이 가는 오래된 옷들이 꽤 많다. 군 휴가 때 누나가 선물해 준 옷, 생애 첫 아르바이트할 때 입었던 유니폼, 제대하고 어머니가 처음 사주신 코트, 재단을 배우시면서 연습 삼아 만들어주신 셔츠, 뭐 이것저것들.


 추억이 주머니 속 처럼 남아있는 것들 항상 버리려고 집어 들었다가 결국 다시 걸게 된다. 자주 입었는데도 신기하게 아직 구멍 난 데가 하나도 없다. 입을 때마다 ‘그때 안목도 없으면서 꽤 좋은 물건을 샀었구나’하고 나 자신을 조금 대견스럽게 생각한다. 다시 이런 옷 못 찾을 거야, 망가질 때까지 그냥 입자 하면서 다시 반닫이 문갑에 접혀 들어간다.

아무리 정리해도 줄기는 커녕 늘어나는 느낌. 번식이라도 하는 지


 사람도 오래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당한 품으로 맞춰져 있는, 서로 부대껴도 해지지 않는 그런 사이의 사람들이 조금씩 생긴다. 보기보다 인간관계가 서툴고 느린 나로서는 퍽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아무리 긴 시간 노력해도 안 맞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억지로 끼워 입다가 결국 등이 터져버린 셔츠처럼 돼버린, 슬프고 아쉬운 그런 사람들.


 그때는 멋 만 사이즈 작은 구두를 꾸역꾸역 신고 다니는 사람같이 아파 죽겠는데도 괜찮다고  었다.    틀어졌단 걸  .  누군가에게 마음이 상했을 때 제 때 말하지 못하는 것도 그때의 나쁜 버릇이 남아있어서 그런가 싶다. 참는 게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내가 참는 것도 모르던 지경이었으니까.


 사람은 옷과는 다른데 어떻게든 고쳐서 지내려고 시간을 쏟았었다. 덕분에 내 안에 작게나마 뭔가는 남았지만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버릴 건 어서 버려서 마음의 공간을 찾아야 된다. 정리의 대가가 말하길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물건도, 관계도.'를 마음속에 되뇌어 보지만은 이 망할 마음은 아직도 고등학교 때 산 무스탕을 보면서 설렌다. 젠장, 다른 건 다 버려도 아마 저건 못 버릴 거다. 지금은 예전보다 조금 더 날 잘 아니까, 장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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