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항공편은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밴쿠버로 향합니다

캐나다엔 뭐가 없을까

by 찬희


많은 사람들이 여행 가기 전날의 설렘을 이야기하곤 하지만, 나는 여행 전에 설렘을 느끼는 타입은 아니다. '내일 드디어 여행을 가는구나.'와 같은 생각보다는 '내가 내일 여행을 간다고?'와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일상을 멍하니 보내다 보면, 낯선 곳으로 멀리 떠나는 ‘여행’이라는 내일의 격변은 실감이 잘 나지를 않는다.


여행 전날 텅 빈 캐리어를 거실에 펼쳐놓고는 캐리어를 빤히 응시한다. 고민해야 할 것은 단 한 가지다.


'캐나다엔 뭐가 없을까.'


당연히 캐나다에는 한국 돈이 통용되지 않는다. 어느 가게에 들러 한국 지폐를 건네면 점원은 우리를 경찰에 신고할 것이 분명하다. 예전에는 외화를 모두 현찰로 바꿔서 돈뭉텅이를 쥐고 갔지만, 요즘은 온라인 뱅킹으로 곧바로 환전되는 카드 하나만 있으면 된다.


전자기기

타지에서 지갑이나 여권은 도둑맞아도, 스마트폰은 도둑맞으면 굉장히 무력해진다. 지갑은 카드를 정지시키면 되고, 여권은 재발급을 받으면 되지만, 이 모든 것을 해내는 데는 스마트폰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은 여행지에서 가장 중요한 대처수단이다. 나는 그 외에도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북과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이어폰, 전자기기들을 충전하는데 필요한 보조배터리와 충전기를 챙겼다.


아, 그리고 전압이 다른 탓에 돼지코도 몇 개 던져 넣었다.


여권과 비자

캐나다 공항 바닥만 밟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캐나다 여행에는 비자(eTA)가 필요하다. 며칠 전 캐나다 정부 공식 홈페이지에서 비자를 발급받았다. 신청 절차가 몽땅 영어로 쓰여 있으나 한국어 번역판 pdf를 다운받을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2년 전 새로 갱신한 파란 여권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생활용품

기내 수하물과 위탁 수하물을 구분해서 리스트로 정리해 놓은 걸 보고 누나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생활용품은 캐나다에 다 있기 때문에 사서 쓰면 된다. 그렇지만 경제성과 편의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옷가지와 여타 생활용품들을 간단히 챙겨야만 한다. 짐은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만큼만 적당히 챙겨 넣었다.


일상

캐나다에는 일상의 상흔도 없다. 이건 굳이 갖고 가지 않았다.



붉은색 위탁 캐리어 하나와 작은 청록색 기내 캐리어 하나. 여기에 짐을 잘 욱여넣어도 뭔가 찝찝함이 남아있는 것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누나와 짐을 분산해서 넣었지만, 공간이 남은 덕에 검정색 뉴발란스 러닝화 한 켤레를 덤으로 챙겨갔다.



어쩌다 보니 매년 여름마다 갈색 공항버스를 타게 된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7월이 넘어갈 때쯤이면 나는 어김없이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누나의 배웅을 받으며 버스에 올라타곤 했었는데, 올해는 누나도 같이 공항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해외를 간다기보다는 외할머니댁에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버스는 느리게 달렸다. 창문으로 그간 다녀왔던 여행의 출발자로서의 내 모습들이 겹쳐 보였다. 2 터미널까지는 두 시간 사십 분이 걸렸다. 퇴근시간이라 우리는 예상보다 늦게 공항에 도착했지만, 그래도 이륙까지 세 시간이 넘게 남아있었다. 우리 가족은 이층 라운지에서 만났다. 엄마와 아빠는 상하의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고, 나와 누나는 같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누나는 우리 가족을 이끌고 스카이라운지로 향했다. 누나 덕에 이번에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는데, 라운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 가족은 뷔페에서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라운지에 쉬러 온 것이 아니었다. 먹으러 온 거지. 누나에게 라운지는 유튜브 콘텐츠였다. 누나는 선물 받은 '오즈모 3'라는 카메라를 손에 쥐고 종알거리며 촬영을 하고 있었다. 목덜미에 솜방울 같은 마이크까지 단 채로.


비가 조용히 내리는 어둑한 밤 속, 우리는 비행기에 올라탔다. 아빠는 창가에서 미리 다운받은 ‘미지의 서울’을 보기 바빴고, 그 옆에 쪼르르 앉은 우리는 괜히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앞으로 가족 여행을 몇 번이나 더 갈 수 있을까. 일부러라도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엄마는 질색을 했지만.


본 항공편은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캐나다 밴쿠버로 향합니다


활주로를 따라 비행기가 적막한 밤하늘로 날아오르자 동그란 창가 밖으로 빗방울에 번진 인천의 야경이 비틀비틀 구부러진다. 이륙은 내가 타 본 비행기 중에서 가장 부드러웠다. 비행기 좌석 앞에 놓인 모니터는 새 항공기라 그런지 화질도 좋았고, 콘텐츠도 훨씬 다양했다.


비행기가 적정 고도에 다다르자 승무원들은 바로 기내식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기내식 메뉴는 묵밥과 소고기 덮밥, 마파두부 덮밥, 소고기 스튜가 있었다. 나만 마파두부를 고르고 나머지는 묵밥과 소고기 덮밥을 골랐는데, 옆자리 앉은 엄마의 묵밥을 한 숟가락 떠먹어보니 정말 맛있었다. 이건 기내식의 퀄리티를 뛰어넘었달까. 반면, 내가 선택한 마파두부는 식감이 단단해서 부드럽지도 않고 양념도 잘 배어들지 않았다. 그래도 뭐, 라운지에서 뷔페로 먹을 만큼 배를 채운 상태였다.


기내식


기내의 백색소음 속 가만히 잠을 설치며 시간을 보내다 두 번째 기내식으로 에그 스크램블이 나왔고, 얼마 뒤 기장은 착륙 준비를 알렸다. 아홉 시간의 비행시간은 생각보다 짧게 느껴졌다. 항상 기내에서 열 시간은 거뜬히 넘겨야 했는데, 비행기도 좋았던 덕에 금방이었다. 비행기 유리창은 최신식이라 창 덮개가 없었는데, 버튼으로 창의 불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아빠는 버튼을 눌러 검고 흐린 유리를 밝혀 파란 하늘을 비추게 했다. 드디어 창 밖으로 캐나다 밴쿠버의 모습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비행기를 탈 때면 항상 해리포터를 보는 나


시간대를 뒤틀어낸 비행기가 랜딩 기어를 내려 낯선 활주로 위에 착륙했다. 우리는 하루를 번 셈이었다. 물론 한국으로 돌아갈 때 하루를 다시 반납할 예정이지만. 밴쿠버 공항에 발을 딛고, 키오스크를 이용해 입국심사를 간단히 했다. 공항 직원은 우리 가족 네 명 중 나만 잡았다. 다른 사람 잡는 거 보니까 질문도 간단히 한두 개만 하던데, 왜 나만 꼬치꼬치 캐물어 보이는 걸까. 직원이 우리 가족을 가리키며 '패밀리'냐고 묻자, 저쪽에서 셋이 손을 흔들며 환히 웃어 보였다.


ATM기를 찾아 환전을 400달러 정도만 했다. 이는 회당 최대 출금 한도였다. 게다가 수수료는 3.5달러. 나머지 금액은 시내에서 수수료가 없는 은행을 찾아 인출해 보기로 했다. 새 지폐를 집어 들고 우리는 스카이트레인을 타러 걸음을 옮겼다. 플랫폼 1에서 탄 기차는 꽤나 덜컹였다. 중심을 잡기가 힘들 정도였다. 문제는 버스도 마찬가지였다. 성미가 급한 운전기사 탓에 버스는 끊임없이 앞뒤로 승객들을 이리저리 쏠리게 했다.


스카이트레인 /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캐나다의 버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노스벤쿠버에 위치한 숙소는 나름 쾌적한 편이었다. 샤워 부스의 물 온도와 수압을 조절하는 시스템이 특이하긴 했지만 말이다. 숙소를 옮길 때마다 샤워 부스 시스템이 다 달랐다. 어떤 샤워 부스는 기능을 알 수 없는 두 개의 핸들이 위아래로 달려 있었다. '이번엔 또 뭘까.' 새로운 숙소에서 샤워를 시작할 때다 마치 두뇌 퀴즈를 푸는 것 같다.


밴쿠버 숙소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를 가려면 15분을 걸어가야 했다. 그리 가깝지만은 않은 마트까지 걸어가서 내가 집어 든 것은 단 하나,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지만, 한국에서 먹기엔 값이 아주 비싸다. 그래서 나는 해외에 나갈 때면 다람쥐가 도토리를 쟁여두듯이 항상 이 아이스크림을 왕창 먹어둔다. 쿠키앤크림 맛이 불어로 다르게 표기되어 있었지만, 맛은 독일에서 먹었던 '쿠키 스위치 업'이나 한국에서 먹었던 '스위트 쿠키앤크림'이나 똑같이 달콤하고 꾸덕한 맛이었다.


여행에서 장보기는 늘 새롭고 특별하다


캐나다의 밤은 10시가 넘어서야 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숙소 앞에서 산책을 하던 중, 어느새 검어진 나무들과 푸르스름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밤공기가 내려앉은 우리 숙소는 반지하에 가까웠다. 우리 숙소를 보고 아빠가 기생충이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키친도 넓고 햇볕도 잘 들어왔다. 물론 커튼이 말썽여 한참을 헤매기도 했지만, 아빠는 뚝딱 커튼을 고쳐냈다. 커튼은 밤을 드리우게 했고, 뒤틀린 시차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잠이 오지 않아도 눈을 감아야 했다. 나는 아빠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낯선 밤을 맞이했다. 아빠의 대각선 취침과 코골이, 그리고 시끄러운 기지개에도 깊은 잠을 잘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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