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여름 한 잎

여름의 시작

by 찬희

내가 베를린을 가게 된 것은 작년 여름 이맘때였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이번에도 우연이었다. 나는 주사위를 던졌을 뿐이었고, 지극히 많은 것들이 운 좋게 맞물렸을 뿐이었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는 S-Bahn을 타기 위해 구글 맵에 코를 박고 길을 찾았다. 독일에는 지상을 달리는 열차인 S-Bahn과 지하를 달리는 지하철 U-Bahn이 있다. S-Bahn을 타면 차창 너머로 베를린의 맑은 여름을 볼 수 있으리라.


아까 발급한 티켓은 탑승 전에 티켓 펀칭을 해야 했다. 펀칭 기계에 표를 밀어 넣자 티켓 위에 연월일시 마크가 아날로그틱한 스탬프 소리를 울리며 찍힌다. 사소한 티켓 펀칭 하나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한국의 일상을 벗어던지게 한다. 여행자의 기분을 내어준다.


여행을 할 때마다 나는 그 나라의 국철을 꼭 타보곤 한다. 나에게 기차는 미술관이다. 너른 차창에는 그 나라 특유의 정경과 계절이 미술작품처럼 담겨 지나간다. 기차 바퀴가 철로와 부딪혀 덜컹이는 잔잔한 소리도, 기차칸 안에서 작게 울려 퍼지는 낯선 언어의 잡담소리도 멋진 배경음악이 된다. 기차는 결코 고요하지 않지만 고요함을 자아낸다. 이것이 내가 기차를 좋아하는 이유다.

베를린 여름 속으로


기분 탓인지 뭔지, 베를린은 구름도 다르다. 창가 구석에 몸을 기대어 베를린의 구름을 찍는다. 여름스러운 풀밭들이 이제 나를 화려한 도시 속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