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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halo Nov 25. 2021

오래된 미래로 향하는 길

7.4 PM 23 : 13 Delhi


 매캐하다. 새벽의 어둠으로도 다 가리지 못한 택시 창 밖의 무시무시한 전조들을 보고 예상은 했지만 직접 부대끼는 실상은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눈, 코, 입, 귀까지 밖으로 향하는 모든 창구에서 매캐함을 감지한다. 그 매캐함의 성질은 너무도 애매하다. 온 사방을 둘러 봐도 항상 보이는 오토 릭샤는 문명의 혜택을 입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해가 더 커 보인다. 거리에 늘어져 있는 주인 모를 분비물들은(길에 자주 보이는 소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자연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조화롭지 못하다. 흙먼지 자욱한 길거리 노점 위 그네들의 음식, 코를 찌르는 향신료 역시 당황스러운 첫인상 때문인지 그리 끌리지 않는다. 그들 고유의 문화인지 아니면 어디서나 밀려드는 서구화의 홍수에 젖어든 것인지 말 못할 애매함으로 가득하다. 문명의 이름을 앞세운 현대 문명의 이기도, 자연의 포용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네들의 문화도 모두 애매하게 뒤얽힌 이 나라 수도의 모습은 혼잡하기 그지 없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껏해야 여행자 거리나 좀 걸어보고, 그리고 택시 밖으로 바라본 모습이 전부인 미숙한 초행자의 섣부른 오판일지 모르지만 애매하고 머리가 ‘띵’한 첫 인상이다. 



7.5 PM 23 : 43 Bus to McLeod Ganj.


 건물 밖을 나설 때의 매캐함은 여전히 완벽하게 적응이 힘들다. 평소 청결을 추구하는 데 전혀 부지런한 편이 아니고, 더위에도 쉽게 지치는 편이 아니었지만, 여기서는 그 장점 아닌 장점들이 우스울 정도로 무시당한다. 이 곳에 발을 다다른 이후에는 무엇이든 다른 세상의 것들을 접하는 느낌이다. 저녁에 출발할 버스를 타기 위해 시외 정류장으로 향한다. 도시의 중심가에만 머물다 외곽으로 나아가다 보니 그네들의 일상이 더 자세히 보인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 보는 동안 긍정적인 기운을 얻기 힘들다. 누구에게 이로울 것 하나 없는 동정과 연민부터 앞선다. 살고 있던 곳에 적응해 버린,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에 기대어 나오는 반응이라고 되뇌어 본다. 그 모습이 어떻든, 보이는 모든 장면들은 그저 살아가는 이들이 보내는 하루들의 일상 중 하나일 것이라고 계속 되뇌어 본다. 무엇을 해결하거나 누군가를 구하려는 의지나 혹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더 그러는지도 모르지만 마음이 답답해진다.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큰 숫자를 외치며 구걸을 하는 꼬마들이나 헛배가 부푼 갓난 아기를 업고 역시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엄마들을 보아 하면 같은 하늘 아래 살던 곳과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늘어지는 그들의 손길을 겨우 헤치고 안락한 버스 의자에 앉는다. 가장 팔자 좋은 ‘이방인’일 줄 알았지만 머리가 아파온다.



 창 밖으로 보이는 스님들이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펄럭거리는 승복 아래로는 커다란 나이키 로고가 박힌 유난히도 붉은 운동화가 보인다. 반짝이는 시계를 찬 손에는 출시 된지 얼마 안 된 것이 분명한 아이폰이 들려 있다. 이번엔 또 다르게 머리가 아파온다.



 시내를 벗어나 속도를 올려 빠르게 달리는 버스가 이제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나 싶어 창 밖을 바라보니 바로 옆 차선에 자전거가 보인다. 앞뒤로는 소들도 몇 마리씩 느릿느릿 걸어 다닌다. 또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짐을 한껏 싣고 비틀거리는 자전거나 느긋하게 꼬리로 파리를 쫓으며 걷는 소들과 함께 달리느라 버스 기사는 계속 브레이크를 밟았다 뗐다 한다. 아직 고속도로가 아닌가 보구나 싶었지만 꽤 오랜 시간 동안 도로의 풍경은 바뀌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도착하겠지 싶어 눈을 감아본다.


 다시 눈을 떠 보니 한밤중에 버스는 산길을 달리고 있다. 달리는 산길은 여지껏 알던 산길과는 난이도가 완전히 다르다. 히말라야가 연상되는 머리가 하얀 산 속의 길 아래로는 커다란 괴물이 큰 입을 쩌억하고 벌린 듯 심연만이 한 가득이다. 기사 아저씨는 그 심연이 보이지 않는지 아니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인지 속도를 줄이지도 않고 급한 낭떠러지 커브길을 빠르게 돌아나간다. 신나게 핸들을 돌리는 기사 아저씨를 보아하니 머릿속을 괴롭히던 생각들이 참 부질없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다시 한 번 오지도 않는 잠을 청해본다. 아니면 청하는 척이라도 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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