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가 반쪽이야? 왜 반말이야!
꼰대는 학교에 정을 붙이지 못한 학생들이 선생님을 부를 때나 자기 부모를 비하해서 부를 때 사용했던 단어였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나이나 계급, 신분 등으로 가당찮은 권위주의를 앞세우며 자기보다 아래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연장자와 어른을 일컬어 부르는 말이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쿨 해 보인다고 믿는 것인지 스스로 자신이 꼰대임을 인정하는 덜 떨어진 꼰대도 있지만 대부분의 꼰대는 자신이 꼰대임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꼰대는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라 특정인 앞에서만 꼰대가 되거나 1:1 상황 같은 특정한 경우에서만 꼰대가 되었다가 평상시에는 일반인이 되는, 혹은 일반인인 척하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꼰대를 판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 앞에 서면 재수가 없고 밥맛이 떨어지며 불쾌감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는 등 매우 인상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꼰대는 대체로 '갑질'을 즐겨하기 때문에 꼰대를 꼭 나이로만 판별할 수는 없다. 얼마든지 나이 어린 꼰대도 가능하고 심지어 취학 전 꼰대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꼰대들은 부모에게서 유전된 것이거나 유년기에 최근거리의 가족들을 관찰하면서 학습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꼰대의 특징 중 하나는 반말이다.
동년배나 연하로 보이는 사람에게의 거침없는 반말은 원래부터 싸가지가 없이 컸구나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만 각종 서비스업장의 직원이나 여성에게 말끝이 짧아지거나 상대에 대한 파악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 자신이 '갑'이라는 판단 뒤 내려지는 무시성 반말도 있다. 점잖고 교양 있게 살아온 분들에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이럴 때의 대응은 같이 능청스럽게 반말을 해주는 것이다.
내가 실제로 해 본 경우를 예로 들면 피부과 의사와의 문진 대화 때의 일인데 처음 방문한 그 병원 원장인 중년 남자 의사는 첫인사 정도만 '요'자를 붙이더니 트러블이 일어난 다리 상처 부위를 보여주자 친근함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의사인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약점을 드러내 보이는 나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편하게' 말을 했다.
'에이, 이거 샤워 후에는 보습을 해줬어야지. 요즘 나오는 바디로션들 있잖아. 그런 걸 쓰면 돼.'
'이 허벅지 안 쪽에 빨갛게 되고 번지는 것도 다 건조해서 그렇게 된 건가요?'
'그럼, 피부는 보습 안 해주면 다 그렇게 돼. 근데 환자들 내가 아무리 얘길 해도 안 들어. 아, 피곤해 증말...'
나는 의사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내 나이쯤 돼 보였다. 이 병원 위층의 내과에 다니면서 아래층에 피부과가 있는 걸 알고 있었으니 나름 오랫동안 영업을 하고 있는 병원이었다.
'아, 보습을 해줬어야 하는구나.'
'그럼, 처방약 먹고 바르는 약도 줄 테니까 샤워하고 나면 그 약 먼저 바르고 바디 로션 꼭 바르고.'
아, 이 새끼는 개새끼로구나. 나는 한껏 부드럽게 정말 궁금한 듯 그의 눈을 보면서 물었다.
'근데, 왜 반말이야?'
잠시 멈칫, 뭔가를 생각하는 듯.
'내가 언제 반말을 했다고 그러세요. 의사가 환자에게 진찰하는 중인데!'
이 자는 이제 '의사'를 권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나한테 이리 앉으세요, 하고 말한 뒤에 한 말이 전부 다 반말이었잖아. 의사는 환자에게 반말해도 되는 거야?'
이때 톤을 좀 더 낮췄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의사는 불안한 눈빛으로 모니터로 시선을 옮기는 것이 내 생년을 확인하는 듯했다. 기세가 오르지 못하는 걸 보니 나보다 연하였나 보다.
'내가 환자가 많아서 짧은 시간에 말을 많이 하다 보니까 그렇게 들렸나 본데 반말을 하지는 않아요.'
'이제 나아졌네요. 서로 존대하니까 좋잖아요. 의사 선생님, 반말하지 마세요. 몸 아파서 왔는데 기분까지 잡치게 만들면 그게 병원이에요?'
나는 그 자식이 처방을 쓰기 전에 일어나서 문을 쾅 닫고 나왔다. 대화가 들렸을 간호사 둘이 쩔쩔매며 나를 바라봤다.
'수고가 많으시네요.' 죄 없는 간호사들에게 깍듯하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와서 다른 피부과를 갔다.
피부과 의사의 경우는 다른 피부과를 찾아가면 되니까 내가 아쉬울 게 없는 상황이고 다시 안 볼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소심한 나도 '맞짱' 뜰 수 있는 상대였지만 상대가 직장 동료이거나 같은 사회 집단의 구성원일 경우 쉽지 않다. 특히 의미 없는 유교의식에 젖어있는 노친네 꼰대라면 대개 "예의범절"이나 "가정교육", "싸가지"를 자신의 안하무인 반말지거리의 타당함으로 여기고 있어서 섣불리 응대하면 곤욕을 치르기 십상이다.
내가 즐겁게 활동하는 소모임에 노익장을 자랑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는 어르신이 있는데 밝고 명랑한 것까진 좋은데 경우 없는 대화 시도나 반말 때문에 민망한 적이 있었다. 이제 70줄에 들어선 그는 내 동년배 몇이 60대 중반인 다른 선배와 대화 중인 자리에 불쑥 끼어들었다. 그는 대화중이었던 60대 선배가 목례를 하자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네가 올해 몇이냐?"
60대 선배는 마침 초등학생 손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데 다짜고짜 나이를 묻는 것이었다. 60대 선배는 빙긋이 웃으며 답을 피했는데 70대는 눈치도 없었다.
"올해 나이가 몇이냐고?"
대답하지 않으면 계속 물을 기세여서 선배가 답을 했다.
"62년 생이예요."
"62년이면 가만있자, 몇인가? 예순둘이야, 셋이야?"
우리는 더 험한 꼴을 당하기 싫어서 슬그머니 뒷걸음쳐서 자리를 피했고 60대 선배도 화장실을 가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이가 훈장이냐, 나이 먹은 게 자랑이냐, 나이가 많으면 적은 사람에게 반말을 해도 좋다는 근거는 무엇이냐? 예를 아는 집에서는 부모도 자식이 머리가 커지고 가정을 꾸리면 반존대를 해서 어른 대접을 해주고 존중을 표한다. 하물며 사회에서 만난 관계에서 자신이 연상이라는 이유로 야, 자 해버리는 건 자신의 몰상식과 꼰대임을 자인하는 것과 같다.
내가 꼰대인지 아닌지 확신이 안 설 때, 나는 누구에게 반말을 하는지 곰곰이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아, 나는 반말을 하지 않았네, 다행이다라고 섣불리 판단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존대라고 다 같은 존대는 아니다. 호칭과 대화의 톤 역시 예의와 상대에 대한 존중을 갖춘 것이어야 비로소 존대는 완성된다. 진심을 담은 존대여야 존대인 것이다.
오늘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을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