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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빠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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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프로 Dec 16. 2024

45만 원에 침낭을 팔았다

당근으로 넘긴 나의 애정하는 제로그램 촐라체 침낭

<안나푸르나에서 사용하려고 구입했다가 국내 극동계/ 설산 백패킹에서 3회 사용했습니다. 보존 상태 좋습니다. 현재 품절로 구하기 어려운 제품입니다. Fill/Fill weight 95:5/ 1100g. 총중량 1600g 필파워 850. 폴란드산 구스입니다. 망사재질 보관용 백과 압축백 포함입니다.>


백패킹용품과 캠핑용품들을 주변사람들에게 일부는 나눠주고 돈이 될만한 것들은 당근에 팔아넘긴 지 꽤 시간이 흘러서 이제 나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들만 남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시작한 겨울철 휴양림 여행과 여름철 오토캠핑은 내가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제는 온 국민의 여가 활동이 되어버렸다. 한적함을 찾아 떠난  한대살이가 어느새 추첨에 뽑혀야 하거나 도시 보다도 많은 사람들 속에 묻혀서 소음속에 잠을 청하는 이상한 지경이 되어버리자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발길을 끊고 말았다. 


 내가  그동안 갖고 있던 장비들은 대부분 4인용의 오토캠핑용 장비들과 2인용의 백패킹용 장비들이었다. 풀사이즈 웨버 바비큐 그릴이나 포터블 그릴과 더치오븐 등은 한때 사용 빈도가 꽤 높고 만족도도 놓은 장비였지만 아이들이 커 가면서 아빠가 해주는 바비큐보다 치킨을 더 찾게 되고 나도 나이가 들어서 장작과 차콜을 이고 나르면서 불을 피워 레스팅을 거친 훈연 바비큐를 만드는 과정이 번거롭고 힘들게 느껴졌다. 그릴과 오븐에 딸린 각종 소품들을 탈탈 털어 처리하고 나니 꽉 차서 빈 공간이 보이지 않던 베란다 창고가 한결 가벼워졌다. 오랜동안 베란다 구석 한 모퉁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차콜과 히카리 훈연칩 등도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 동계용으로 사용하던 파세코 난로와 안전망 등도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갔다. 백패킹 장비들도 많이 처분했다. 전기와 배터리 없이하는 캠핑을 추구했었기 때문에 캐로신 랜턴과 버너가 덩지가 큰 편이었고 우모 바지와 우모양말 등 사용 빈도가 적은 물건들도 우선 처리 품목으로 해치웠다. 


3, 40대에는 번쩍번쩍 집어던질듯이 들어서 옮기던 캠핑 장비 박스들은 지금도 들어 나를 수는 있지만 무겁고 힘들다는 생각이 앞선다. 얼마 전에는 캠핑 사이트를 예약하고 차를 운전해 짐을 나르고 타프를 치고 전기를 연결하고 코펠을 씻어서 저녁을 준비하는 일이 귀찮아 캠핑은 캠핑장 내의 캬라반에서 묵고 밥때가 되자  근처 식당으로 나가서 저녁을 먹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 20kg에 육박하는 박배낭을 메고 백패킹을 올라가면 한적한 산에서 탁 트인 전망과 해가 지면 꿈처럼 펼쳐지는 야경에 매료되기는 했지만 저녁을 해 먹고 나면 잠들 때까지 마땅히 할 일이 없었고 다음날 텐트 접고 내려갈 일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오토캠핑도 백패킹도 늘 술과 함께 즐기던 여행이었는데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술이 빠져버리자 맹숭맹숭해지고 술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메워줄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웠다. 


보유하고 있는 침낭은 동계용, 하계용, 3 계절용, 침낭 라이너 등 여러 개이다. 영하 30도 이하에서도 견딜 수 있는 극동계용 침낭은 고가이고 부피도 엄청나게 컸지만 두 개씩이나 장만한 것은 언젠가 아내와 히말라야를 가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였다. 각각 사용 횟수가 몇 번 되지도 않지만 애지중지 아껴서 보관하고 있던 신품급 침낭 중 '몽벨 다운허거'를 킵하고 '제로그램 촐라체'를 팔려고 내놨다. 아내는 나를 따라 국내 산행은 여러 번 함께 했는데 동네 얕은 산에서 훈련을 몇 번 하면 대청봉이나 반야봉은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실력이었다. 하지만 네팔 고산의 열악한 화장실 환경과 고산병 얘기를 듣고는 갈 수 있을까를 망설이더니 몇 년 전 한국의 선생님들이 단체로 안나푸르나 산행을 갔다가 눈사태로 사고가 난 것을 보고는 완전히 네팔 산행에 대한 마음을 접어버렸다. 더 설득해 보았지만 '국내에도 안 가 본 멋진 산들이 있는데 굳이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있냐'며 나의 원정 산행까지도 반대하고 일어설 분위기라 나는 슬며시 물러서고 말았다. 


촐라체에 몇 번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있었지만 오랫동안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90만 원 가까이 주고 구입한 침낭인데 팔리지 않아서 점점 가격을 낮춰보다가 최종가로 50만 원에 내놓은 지 몇 달은 흐른 것 같은데 얼마 전 연락이 왔다. 


당근에서 온 구매 콜!


당근에서 거래하는 품목치고는 꽤 하이엔드 급이었고 나는 많이 깎은 금액이라고 했지만 당근에서 거래금액이 50만 원이라면 아마도 고가에 해당할 것이었다. 부피도 크고 현장에서 직접 확인해야 하는 품목이어서 만날 시간을 정하고 거래를 마쳤다. 구매자는 수일 안에 안나푸르나 서킷을 돌려고 계획 중인 중년 남자인데 히말라야가 처음이라면서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아서 내가 경험했던 안나푸르나와 쿰부 얘기를 해주고 포카라 '윈드폴' 사장님 얘기도 해 주었다. 



당근에 올린지 1년쯤 걸려서 팔린 내 침낭. 5만원 깎아서 45만원 받았다.

이로써 한때 네팔에서 아내와 함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다는 꿈을 접었다. 처음 백패킹에 입문하고 국내외 산을 섭렵할 때 나는 내가 '답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집에 설명했다. 

'나중에 당신과 갈 때 헤매지 않으려고 미리 가보고 숙소와 산을 올라보고 당신도 같이 오면 좋겠다고 판단한 산의 리스트를 만들어 두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아내는 아량 넓게 웃어주었고 5천 미터 설산 산행 준비를 하면서도 '나중에 당신과 함께 오려면...'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이제 달리기를 하느라, 그리고 나이가 들어 들판에서 한뎃잠을 자기에는 몸이 견뎌내기가 버거워져서 캠핑은 접고 백패킹도 계절 좋을 때 한두 번으로 횟수가 줄어들었다. 한때는 산에서 지낸 날로 계절을 채워버릴 지경이었으나 이제는 땅에서 안전하게 달리는 것으로 무대를 옮기려 한다. 그런데 히말라야에서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여겨왔던 침낭을 넘겨주면서 마음 한구석이 텅 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잘 가라, 침낭아. 새로운 주인의 몸을 식지 않게 잘 보호해 주거라. 네 몸값으로 나이키 알파플라이를 구입해서 네 희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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