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취미인 장기 여행자의 난제를 해결하다

신통방통 e북 리더기 경험!

by 이프로


여행을 자주 그리고 길게 다니는 걸 선호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관광객이 붐비는 곳은 마다하고 한적한 곳, 한산한 곳, 불편을 감수해도 좋을 매력이 숨겨진 곳을 찾아내며 여러 날, 심지어 한 달 이상의 여행을 즐긴다. 그런 여행에서 나의 일과는 아침에 달리고, 쉬고, 낯선 음식을 찾는 모험을 하고,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이다. 달리는 일과를 위해서 러닝화를 세 켤레를 챙기는데 이게 가방 한가득이다. 여기에 소형 폼롤러와 마사지 봉과 라텍스 밴드를 챙겨서 뭉친 종아리와 허벅지를 풀어준다.


문제는 책들이다. 여유 있게 가져간다고 챙기지만 현지에서의 일상이 익숙해져 버리고 나면 여유 시간은 점점 많아져서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져간 책이 바닥난다. 책이 모자라겠다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책을 아껴 읽느라 중요하다 싶은 부분을 되풀이 읽고, 비슷한 내용을 다룬 유튜브 콘텐츠를 보는 식으로 남은 분량을 아낀다. 지난 여행에서는 그래서 큰 마음먹고 두꺼운 분량의 벽돌 책을 다섯 권이나 챙겼더니 부피와 무게가 상당해서 대형 여행 가방을 가져갔지만 나머지 물건들을 적은 공간에 구겨 넣고 빼느라 숙소를 바꿀 때마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작년부터 대안으로 e북 리더기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접해보진 못했지만 신박한 아이디어였다. 대부분의 책들이 이제 출간될 때부터 종이책과 e북으로 시판되고 있어서 리더기만 있으면 언제든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동안 내가 낸 책들도 대부분 e북으로 판매 중이어서 인세를 정산해 줄 때 출판사는 종이책보다 후한 e북 인세를 보내주곤 했었다. 마침 내게는 평소에 사용하던 아이패드 태블릿이 있어서 당장 학교 도서관에 접속 후 읽고 있던 책을 e북으로 다운로드해서 읽어보았다.

tempImageGlTtg2.heic 그러고보니 나는 이미 신문도 데스크탑 PC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느낌은 정말로 생경했다. 터치로 책장을 넘기고 태블릿 액정에 뜬 활자들을 읽는 행위가 기존의 내 독서 활동과 너무 다르고 큰 이질감을 갖게 해서 내용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바로 옆에 손만 뻗으면 읽고 있던 기존의 책이 있는데 굳이 이걸 새로운 방식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처음이니까 그럴 거야, 좀 더 e북을 읽어보았는데 이번에는 터치할 때 한 번에 페이지가 두 장이 넘어가버리거나 한번 터치로 작동하지 않아서 두 번 터치를 할 때도 있고 그러다 보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페이지가 좀 전에 읽었던 페이지의 다음 페이지가 확실한 것인지에 대한 의심도 생기니 책에 집중하기보다는 이 기기가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해야 하는 데에 신경이 쓰여서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30여 분간 태블릿에 뜬 활자와 씨름하고 있자니 이번엔 눈이 아팠다. 환한 액정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집중을 하고 있자니 눈의 피로도가 책을 읽을 때보다 심하게 느껴졌다.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책을 주문하고 도서관에 가서 종이 책을 대출하겠는가. e북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웹툰, 웹 소설 같은 휘발성 강한 인쇄물을 빠르게 볼 때나 제 역할을 하는 문물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쉬운 e북과의 첫 대면을 마치고 다시 종래의 종이책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 여행을 떠났고 이번에도 역시 가져간 책이 동이 난 채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별로 내키지 않는 다운로드한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죽였다.


나의 이런 고민을 보고 있던 아내가 태블릿과 e북 리더기는 전혀 다른 환경이라며 직접 e북을 체험해 볼 것을 권했다. 그때까지 나는 e북 리더기가 크기가 좀 작은 태블릿이라고 생각했는데 e북 리더기는 아이패드 미니보다도 작았고 무게는 훨씬 가벼워서 한 손으로 들고 오랫동안 들고 읽어도 별로 부담이 없었다. 특히 전자잉크라는 방식의 화면은 태블릿을 볼 때보다 눈의 피로도가 덜해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 매장에는 사이즈가 좀 큰 편의 e북부터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세로 바 형태까지 다양했는데 나는 내 손바닥만 한 6인치를 골랐다. 처음엔 반응 속도가 너무 느려서 답답했고 내가 사용하는 학교 도서관과 인터넷 서점의 앱을 설치하고 세팅하느라 잠시 애를 먹이기도 했지만 한나절만에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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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이제 또 하나의 신문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집안에 있는 책들과 학교의 연구실에 있는 책들을 볼 때마다 또 책을 사 모으고 그 책들이 차지할 공간을 보게 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책을 더 이상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e북을 대출해서 읽고 반납하면 그만이고 내가 소장해서 여러 번 읽고 싶은 책들은 e북 형태로 구입해서 데이터로 보관하면 될 일이다. 여행을 떠날 때는 가벼운 리더기만 챙기면 아무리 오랜 여행이라도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 여행이더라도 두려울 게 없다. 무한정 책이 쌓여있는 도서관과 서점이 내 손바닥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시험 삼아 젊은 작가 정세랑의 장편을 읽어봤는데 재미나고 편리하다. 누워서도 읽고 스탠드에 올려두고도 읽고 손에 들고도 읽어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책을 읽어주는 기능도 있어서 음성으로 들을 수도 있었다. 시중에는 밀리의 서재 같은 류의 구독형 도서 포탈 앱들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각 포탈들의 책들을 검색해 보니 내가 읽고 싶어 하는 역사와 문학, 예술, 고전 등 인문학 책들은 없는 경우가 많았다. 베스트셀러나 신간 위주로 보유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 구독형 도서 포털 사이트보다는 도서관 대출이나 e북 구입 방법이 나에게 맞는 것 같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하루 중 자투리 시간이 날 때 의미 없는 유튜브 콘텐츠에 시간을 보내거나 잠깐 본다고 열었던 동영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정작 하려던 일에 지장을 준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동영상 콘텐츠를 보는 대신 독서에 시간을 더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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