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지중해-십자군' 역사책 읽기

by 이프로


오늘 드디어 <십자군 이야기> 3권을 다 읽었다.


5년 이상 걸린 나의 유럽사 독서가 일단락된 것이다. 참 재밌고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맨 처음 나는 우리 아이들 보라고 사다 준 이원복의 <먼 나라 이웃나라>를 보면서 세계 각국의 역사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마침 내가 첫 연구 년을 맞아 스페인의 산티아고 콤포 스텔라를 도보로 여행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다녀왔을 무렵이었다. 스페인 북부 지역 800km를 횡단하며 "성지순례"를 경험했는데 이때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고대 로마 유적을 보고 놀라웠다. 이때는 정말 유럽사에 무지할 때라 로마에서 이토록 멀리 떨어진 스페인에 2천 년 전 로마의 유적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궁금해졌고 고대 유럽사와 로마제국 역사를 읽으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먼저 <곰브리치 세계사>와 J.M. 로버츠와 O.A. 베스타가 지은 <세계사 1, 2>를 읽었다. 곰브리치는 쉽게 쓰여서 읽기에 편했지만 큰 흐름만 파악하는 정도였고 곰브리치보다 네다섯 배 정도의 넉넉한 분량의 <세계사 1, 2>를 읽으니 세계 역사라는 흐름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졌다. 여기까지가 사전 공부였고 내가 정말로 흥미를 느끼고 있었던 로마사의 갈증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충분하고 즐겁게 해결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그녀의 역사관과 저술 방법은 여러 곳에서 못마땅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로마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공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의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은 작가는 호주 출신의 콜린 맥컬로 여사로 집필에 전념한 그녀가 실명하도록 열과 성을 다해 완성한 <마스터즈 오브 로마>시리즈이다.

<로마의 일인자1, 2, 3권>, <포르투나의 선택 1, 2, 3권>, <풀잎관1, 2, 3권>, <카이사르 1, 2, 3>, <카이사르의 여자들 1, 2, 3>, <시월의 말 1, 2, 3>,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1, 2, 3> 이렇게 무려 21권이고 각 권은 500페이지 이상의 두꺼운 분량이다. 역시 21권으로 권수는 엇비슷한 박경리 여사의 대하소설 <토지> 보다 원고의 분량은 네 배쯤 되는 것 같고 <토지>의 경우와 같이 출판 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별도로 <가이드북>이 출간되었다. 그 밖에도 고대 로마 당시의 로마 시가 지도와 배경이 되는 이탈리아반도와 지중해 지역의 다양한 지도가 첨부되어 있다. 특히 맥컬로 여사는 발굴된 유적을 참고하여 자신이 직접 고대 로마의 주인공이랄 수 있는 여러 황제와 귀족사회의 중심인물들을 상상해서 그린 초상화를 주요 챕터가 시작될 때 표지로 사용했는데 막연한 2천 년 전 인물이 아니라 실존했던 인물들 간의 암투와 책략들을 다루고 있는 내용을 읽을 때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시오노 나나미와 콜린 맥컬로 여사는 모두 여성이라는 점과 집요하게 로마사를 공부하고 비교 검증하여 역사책이라는 어렵고 딱딱한 방식이 아니라 '이야기'와 '소설'이라는 창의적인 형식으로 풀어썼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역사'라는 틀을 벗은 두 사람은 고증과 사료 또는 중론이 되어버린 학술적 결론들을 자유롭게 뛰어넘으면서 개인적인 감상과 추측, 상상력을 펼치면서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로마제국의 흥망성쇠와 제국이 키워낸 영웅호걸과 패륜아들을 재미나게 그려냈다. 두 여성 모두 매력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카이사르에게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쏟았다는 것도 공통점이랄 수 있겠다.


역사에 한창 흥미를 느끼고 그동안 모르고 지냈던 지중해 세계에 재미를 알게 되었는데 로마가 망해버렸다. 눈부시고 경이로워서 영원할 것만 같았던 로마가 서서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로마가 멸망하면서 한때 로마의 땅이었던 지역들도 같이 쇠락했는데 특히 지중해 남쪽과 면해있어서 유럽 세계의 일부처럼 느껴지던 북아프리카의 몰락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로마가 관리해 주던 시절이 지나자 독점적 우위를 지녔던 농업이 망하게 되고 생계가 막막해진 원주민들은 고수익을 올려주는 해적이 돼버렸다. 로마 멸망 이후 무려 19세기까지 이어지던 북아프리카 해적의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다. 해적은 고대부터 이 지역의 특별한 돈벌이었는데 그 대단한 카이사르도 해적에게 잡혀서 몸값을 주고 풀려났으며 공화정 시대에는 크라수스가 제정시대 초기에는 안토니우스가 대대적인 해적 토벌작전을 벌여서 잠시나마 지중해를 안정시키기도 했다. 이 당시의 해적과 지중해에 면한 나라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세계> 1, 2권은 시오노 나나미가 튀니지와 알제리를 중심으로 한 해적들과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남부 지역이 처했던 곤경을 다룬 내용인데 나중에 이슬람이 번창하게 되면서 해군력이 약했던 이슬람 왕가는 해적을 이슬람의 해군으로 스카우트해서 기독교 국가들과 겨루는데 사용하는 놀라운 용병술을 보여준다.

tempImageqK6GXs.heic

10세기 후반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촉발한 십자군 전쟁의 지난한 200년간의 기록을 이야기로 풀어낸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2, 3권을 그다음으로 읽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편협한 시각과 중요한 대목에서는 자신이 집필한 책의 홍보로 얼렁뚱땅 넘어가버리는 집필 스타일로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작가에게 실망과 혐오를 느끼게 한 책이지만 무엇보다도 십자군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군대와 전쟁을 만들어 교황 자신과 로마카톨릭의 입지를 굳히는데 사용한 당시의 유럽 기독교 사회에 대한 환멸이 크게 다가왔다. 하나님은 세상을 이토록 사랑하시어서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와 우리 죄를 대속하며 십자가에 박혀 숨을 거두었는데 기독교 지도자와 귀족들은 숭고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기는커녕 그릇된 발상과 자기 편한 식대로의 해석으로 사랑 대신 증오와 피를 부르는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자기 재산과 목숨을 바치면서 머나먼 동방까지 나아가서 전쟁을 일으킨 제후들과 기사들, 병사들은 모두 나름의 신앙관으로 자신의 행동이 정의롭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오해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과정에서 다른 크리스천을 죽이거나 부정부패한 세력들과 결탁하는 것도 불사하면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신다는 비뚤어진 종교관. 이 모든 것을 조종하고 도발하는 교황을 비롯한 로마 카톨릭. 이들은 지금 우리가 사이비라고 부르는 광신도 단체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다른 생각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면서 '신의 뜻'이라고 확신한 그 집단적인 광기가 현재의 이스라엘 지도자와 미국 정부와 겹쳐 보이는 것 같아서 두렵기만 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방학이 좋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