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새로운 회사에서 6개월이 지났다. 아직까지는 입사 초기라서 회사의 좋은 점만 보이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딱히, 어떤 압박이 대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내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약간 더 무리하며 일을 해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입사당일부터 딱히 환영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입사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매니저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그냥 온보딩 절차를 따라가면 된다는 퉁명한 대답뿐이었다. 팀원도 모르고 내 팀의 코드를 어디서 봐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원래 문화가 이런가 보다 하고, 그냥 전반적인 새로운 시스템들을 배우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는데, 3일 후에 그 이유를 알았다. 조직개편이었다.
기존 팀이 둘로 나누어지고, 내가 있던 지역 오피스에 새로운 매니저가 합류하면서 새로운 팀이 만들어졌다. 사실, 크게 나쁘진 않았다. 기존 매니저는 캘리포니아에 있기도 했고, 은은하게 쿨내 나는 텐션과 무표정으로 말 한마디 한마디에 농담을 집어넣어 대화하는 것에 따라가기가 좀 버겁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다만, 기존 매니저만이 내 경력을 완전히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점은 아쉬웠다.
문제는, 조직개편은 아직 예고일 뿐이었고 당장 서류상으로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양쪽 매니저와 딱히 대화도 하지 않았고, 팀 채널에도 초대받지 못한 채, 그냥 온보딩 트레이닝만 따라가며 심심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다행히, 멘토는 붙여줘서 팀의 전반적인 상황은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멘토도 내가 들어온다는 사실을 그 당일에 알아서 딱히 준비된 것이 없긴 했다. 이전에 뽑았던 사람이 입사 직전에 다른 곳으로 가버려서, 특히 조용했던 나도 다른 쪽으로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영부영 한 두 달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 들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내 멘토를 중심으로 한 작은 서브팀이 만들어지기로 했고, 그 팀의 신입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그즈음에 새로운 신입을 한 명 더 뽑으면서 총 4명의 작은 팀이 되었다. 다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팀이라니, 다 좋았는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내가 전혀 모르는 도메인을 다루는 팀이었다.
새로운 회사에 시니어라는 타이틀로 조인을 하는 것 자체도 부담이었다. 시니어정도가 되면 도메인 지식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기술뿐만이 아닌 다른 협업 능력들도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이, 협업 능력은 약간 부족해도 기술이 조금 더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도 내 경력과 최대한 겹치는 곳으로 이직하고 싶었었다. 원래, 이 팀은 절반 정도는 내가 하던 것과 겹쳐서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왔었다. 근데, 조직개편이 되면서 내가 잘 알던 일은 다른 쪽 팀이 전부 가져가고, 이 팀에서는 내가 아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멘토와 처음 서로를 소개하며 했던 말을 듣고 좀 큰일났구나 싶었다. 멘토가 "우린 A와 B 기술을 위주로 하는 팀이야. A에 대해서 좀 알아?" 하길래, 자신 있게 내 경력의 반은 A라고 대답했더니, "좋네, 근데 사실 몰라도 되긴 해." 라며 약간 당황해하는 기색이었다. B에 대해서는 아냐고 묻길래, 전혀 모른다고 했더니, 오히려 B는 좀 많이 알아야 한다고 한다. 사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나와는 정반대의 케이스인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 그 레퍼토리로 준비한 질문인가 싶다가도, 내 도메인지식이 전혀 쓸모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압박감이 느껴졌다.
새로운 도메인에 가게 되었을 때, 부가적으로 찾아오는 문제는 영어다. 영어의 문법, 단어, 뉘앙스, 혹은 그냥 같은 단어조차도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영어로 한정 짓지 않아도, 무언가 주제를 꺼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의 방향도 전부 다르다. 대화의 흐름을 예측하지 못하니, 그냥 영어 자체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첫 3개월은 정말 듣기 모드였고, 이제 6개월이 지난 요즘에서야 슬슬 말을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상하게, 정말 대부분이 영어를 상당히 잘했다. 이민자로만 가득 채워져 있던 대기업에서 넘어와서 그런지, 더욱더 그렇게 느껴졌다. 팀원이 열 명 넘게 있었는데, 외국 엑센트가 강하게 느껴지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그 중 한명이 나와 비슷하게 조용조용히 일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 사람을 보며 "그래도 나랑 비슷한 사람이 일 년 넘게 생존해 있네" 하며 나름 위안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퍼포먼스가 저조하면 잘릴 수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그럼 나를 왜 뽑았는지 궁금해졌다. 요즘 블라인드를 보면 "hire to fire"라는 말이 유행하던데, 그게 난가? 싶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사람을 뽑을 때 너무 커트라인이 높은 것 같았다. 메타처럼 사람을 훨씬 더 많이 뽑아야 그런 시스템이 유지 가능하다.
그래서, 그냥 매니저에게 물어봤다. 내 매니저가 나를 뽑은 건 아니지만, 내 다음으로 조인한 사람도 도메인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어서, 정말 궁금했다.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도메인 지식이 있는 시니어를 찾을 수가 없어서." 그냥 이 정도 레벨에, 인터뷰도 통과하면서, 이런 도메인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뽑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냥 배울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을 뽑고 키우기로 전략을 바꿨다고 한다.
어느정도 안심은 됐다. 내가 처음부터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 일 년 정도의 시간은 주겠지 하는 마음은 들었다. 그래도 모두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해 누가 누가 더 빠르게 전문가가 되는지 경쟁해야하고 증명해야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게 미국 기업에서 성과가 저조해 잘린 사람들을 보고 있어서 그런건지, 그냥 요즘 잡마켓이 안 좋아서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모르겠다.
인재 밀도가 높은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잘 한다 싶은 사람들이, 대학 시절에는 열 명 중 한명 꼴로 보였고, 이전 회사들에서는 다섯 명 중 한 명 꼴로 보였던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다섯 명 중 네 명은 잘해 보인다. 조금만 정신줄 놓으면 하위 10% 찍고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6개월차가 되면서 매니저에게 내 퍼포먼스에 대한 피드백을 요구했다. 사실, 매니저는 내가 무슨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나를 최종적으로 평가해야 할 사람이기에 물어봤다. 예상외로 깔끔한 "on track" 이었다. 생각보다 내 멘토이자 현재 테크리드를 통해 내 상황들이 보고가 되고 있었고, 내가 말보다는 코드를 더 많이 짜는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그 쪽으로 더 강화하기를 바랬다. 내가 원하던 바이다. 물론, 리더십에게 더 어필할 수 있도록 나서기도 바랬다. 내가 끔찍히 하기 싫어하던 일이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게 임포스터 신드롬인지, 그냥 내 실력이 정말 부족한 것인지는 일 년 후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즐기며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도 내 영어실력이나 커뮤니케이션은 위축된 게 회복될 기미가 아직까지 안보이긴 한다. 전형적인 소극적인 아시안들보다 더 소극적인 아시안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