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첫 이직

by Chan

이 회사를 다닌 지 5주년이 되기 이틀 전, 매니저에게 퇴사를 통보했다. 설렘과 걱정, 미안함과 아쉬움, 별의별 생각이 매 시간 바뀌며 떠오른다.


당연하게도 이직에 대한 생각은 영주권을 받을 무렵 처음 시작했다. 드디어, 이직을 할 수 있는 신분이 되면서 이곳에 계속 남아있는 것이 좋은 생각인지 고민이 되었다. 보통 이 동네 엔지니어들은 2-4년 주기로 이직을 하는데, 입사할 때 주어지는 주식 보너스가 4년 동안 나눠서 지급되기 때문이다. 4년이 지나면 연봉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전에 미리미리 이직을 하는 편이다.


마침 영주권을 받을 무렵이 4주년이 지나던 시점이라 나에게도 자극이 되긴 했지만, 나한테는 딱히 관련이 없는 이야기이긴 했다. 해외에서 바로 입사해 연봉 협상에서 완전히 말렸던 나에게는 애초에 연봉을 급격히 떨어트릴 만한 보너스를 받은 적이 없었다 하하. 처음에는 비자 값이고 영주권 값이다 생각하며 그냥 지나갔지만, 그동안 나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는 동료들이나 큰 연봉을 받으며 이직을 하는 동료들을 보며 속을 부글부글 끓어왔다.


그렇게 영주권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던 와중에, 현재 팀에서 큰 방향 전환을 선언했다. 앞으로 우리 팀은 우리 회사만의 이익을 위한 개발보다는 전체적인 개발 생태계를 위한 오픈소스에 전념하기로 선언했다. 딱 내가 10년 전 꿈꿔왔던 바로 그 일이었다. 게다가 동시에 승진도 했다. 정말 돈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많은 고민이 들었다. 지금 회사는 연봉이 적기로 유명한 편이라, 이직하면 당장 연봉을 두배로 올리는 일도 가능했다. 물론, 잡 마켓은 딱히 좋지 않았다. 이직 후 적응을 잘하지 못하거나 정리해고를 당하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꿈에 그리던 바로 그 일을 하게 될 기회가 내 인생에 다시 올 수 있을까 하는 아쉬움도 컸다. 다만, 지금 회사도 가끔씩 정리해고를 진행하기에 이곳도 더 이상 안정적이라는 보장이 없어지고 있었고, 다른 곳에서 받을 수 있는 연봉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오래 시간을 보낼수록 그 시간들을 다 낭비하고 있는 기분 또한 들었다. 어릴 때는, 돈은 실력이 있으면 알아서 자연히 따라올 거라는 믿음으로 신경 쓰지 않고 살았지만, 그게 꼭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직에 대한 생각이 크지 않을 때 천천히 알아보는 게 심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잡마켓이 아무리 안 좋다 한들, 미국에 처음 넘어올 때보다는 쉽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어떤 포지션들이 있는지 구경하고, 가끔 리쿠르터한테 마음에 드는 포지션에 대해 먼저 연락이 오면 하이어링 매니저와 간단한 인터뷰를 보기도 했다. 근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않았다. 정말 경력도 일치하고 인터뷰도 완벽했다고 생각했을 때도 떨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경력이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에 인터뷰라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5년 전에는 신분 문제만 해결되면 어디든 무조건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신분 문제가 해결된 지금이 그 당시보다 이직하기가 더 어려운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너무 많아서, 뭐가 문제인지도 알기가 힘들었다. 내가 잘하는 기술이 더 이상 시장에서 중요해지지 않은 걸까? 이제 연차가 높아졌기 때문에 요구하는 능력이 달라진 걸까? 그냥 단순히 잡마켓이 안 좋아서 그런 걸까?


확실히 이전보다는 서류를 통과하기가 훨씬 어려워졌고, 내 경력을 필요로 하는 포지션은 거의 없다는 것을 느꼈을 때 위기감이 슬슬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집도 구매했다. 오르기만 하는 집값에 지금이라도 사지 않으면 영영 못 살 것 같아 조금 무리해서 구매했다. 하필 금리가 상당히 높은 시점에 구매를 했는데, 금리는 앞으로 내릴 거라고 모두가 기대하고 있던 터라 큰 걱정은 안 하고 나중에 대출을 다시 받을 계획이었다. 금리가 떨어지면 또다시 집값이 어마무시하게 오를 테니, 리스크가 조금 있더라도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사는 것에 대한 합리화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당연하게도 금리는 떨어지지 않았고, 집에는 돈 쓸 일이 많았다.


매달 나가는 모기지가 조금 부담이 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이렇게 살면 언제 서야 모기지를 갚을 수 있는지, 은퇴자금은 충분히 모을 수 있는지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 그래도 와이프와 함께 더블인컴으로 돈을 벌고 있어서 그런지, 앞으로 한 5년 정도만 고생하면 최소한 50살까지 일한다는 가정하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근데, 그래도 나름 유명한 대기업의 더블인컴인데, 그냥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그냥 무난한 삶을 살기 위해서 먼 나라 땅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는 걸까.




꿈의 직장에서 꿈꾸던 일을 하고 있었지만, 직장은 직장일 뿐, 언젠가는 스트레스가 가득한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꿈꾸던 일은 복잡하고 멋있어 보이던 기술을 깊게 배우고 싶던 열망이었지만, 현실은 정치 또한 잘해야 한다. 다른 부서 또는 다른 회사와의 협업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막히기도 하고, 설득이나 반박을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다양한 의견을 모두 반영하려다가 진행이 안 되기도 하고, 어느 한 중간에 끼어서 이도저도 못하기도 한다. 일이 숙련될수록 점점 더 일은 많아지지만, 그에 따른 보상이 크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결국 직장은 직장일 뿐이고,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다는 생각이 점점 들면서, 이직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잡마켓도 안 좋은데 안 좋은 결과에 상심하거나 지금 직장이 싫어지는 마음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본격적으로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시작은 친구에게 레퍼럴을 받고 빅테크 회사의 인터뷰를 보았다. 모두가 채용을 줄여가며 신중해하고 있을 때, 거의 유일하게 사람을 왕창 뽑고 있는 회사였고, 연봉도 최고 수준이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꿈꾸던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조금 특수한 직군으로 지원했다.


나름 인터뷰 준비도 몇 달간 했고 처음 스크리닝 인터뷰를 워낙 잘 봐서 자신감에 차 있었는데, 온사이트 인터뷰에서 결과가 최악이었다. 특수한 직군으로 지원했다 보니 인터뷰 형태가 약간 달랐는데, 그 부분에 대한 준비를 아예 하지 못 했고, 어떤 한 인터뷰는 인터뷰어가 잘못 걸린 것인지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것인지 최악의 방향으로 흘렀다. 화가 너무 나서 몇 주 동안 기분이 안 좋을 정도였다.


그렇게 본격적인 첫 이직 시도가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회사일에서도 점점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조금씩 더 많은 회사들에 지원해 봤다. 처음에는 정말 내가 꼭 가고 싶은 포지션만 골라서 지원했지만, 대부분은 연락조차 없거나, 리쿠르터와 연결이 돼도 이력서를 좀 더 자세히 확인하고 나서 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하니까 갑자기 내부 사정으로 포지션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현실을 깨닫고, 조금씩 다른 직군이라도 내 경력과 겹치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도 면접에 합격할 때쯤이면 생각이 바뀌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혹시 지금 회사에서 카운터 오퍼를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물론 회사에서 카운터 오퍼를 주지 않으면 그대로 퇴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 끔찍이 하기 싫은 곳들은 그래도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계속 몇 개월간 이력서를 뿌리고 있던 중에, 세 곳에서 드디어 연락이 왔다. 첫 번째 포지션은 재택근무 폐지와 힘든 기업문화로 아는 사람들은 다 피한다는 곳이었고, 두 번째 포지션은 내가 잘하는 분야이고 안정적인 회사에 돈도 적당히 잘 주지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세 번째 포지션은 돈은 많이 주지만 대부분 주식으로 주고 아직 상장이 되지 않은 회사라서 위험부담이 좀 있는 곳이었다.


첫 번째 회사는 정말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요즘 거의 유일하게 뽑는 곳이어서 연습 겸 지원했다. 그래도, 이곳에서 일했을 때 좋은 이유를 만들기 위해서, 좋은 팀이나 분야라도 맞춰보기 위해서 노력했는데, 리쿠르터는 일단 붙고 나서 생각하자며 인터뷰를 진행하기를 권유했다. 그래서, 막상 진행을 하기는 했는데 터무니없이 높은 인터뷰 난이도에 내가 굳이 가고 싶지도 않은 회사를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나 하는 현타가 들어서 인터뷰를 보는 도중 그냥 중단했다.


두 번째 회사는 하도 서류 통과를 못하다 보니, 너무 답답해서 내가 잘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분야에 지원해 봤다가 덜컥 서류 합격한 곳이다.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다니긴 하지만, 막상 일을 하기 시작하면 나름 재미있게 하기 때문에 붙더라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끝까지 고민이 되었던 곳이었다. 그게 너무 티가 났는지, 기술 면접들은 완벽히 봤지만 매니저들과의 면접에서는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고, 세 번째 회사의 오퍼를 받고 나서 최종 결과가 언제쯤 나올지 물어봤으나, 끝내 결국 합격/불합격 소식은 듣지 못했다.


세 번째 회사는 나름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스타트업이고, 보상도 상당히 많이 주는 편이라 이야기는 좀 들어봤는데, 언제 상장할지를 알 수가 없는 회사여서, 당장 돈이 필요한 나한테는 별로 매력적인 선택지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그 회사가 이번에 투자를 받고 직원들의 주식을 사 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상장은 좀 멀었더라도, 일부분은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 소식을 듣고 그 회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봤는데 대체로 좋아 보였다. 창립자가 유명한 오픈소스를 만든 사람이었고, 스타트업 치고 기술에 대한 중요도나 비중이 꽤나 높아 보였다.


그렇게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인터뷰 난이도는 꽤 높았지만 다섯 개의 인터뷰 중 하나를 제외하고는 잘 본 것 같았다. 리쿠르터에게 며칠 후 연락이 와 인터뷰 결과가 좋은 것 같으니, 팀 매칭을 진행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하이어링 매니저의 팀이 마음에 들지 않냐며 어떤 팀을 가고 싶냐고 물어봤다. 그땐 무슨 말인가 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내가 인터뷰 도중 관심 있는 분야를 얘기를 했는데, 그 부분이 그 팀과 맞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인지, 그 하이어링 매니저는 나를 다른 팀에 보낼 것을 추천했고, 리쿠르터는 팀을 찾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딱히 기술에 대한 선호도가 없었다. 오히려, 내 경력이 너무 특수하고 그 회사에서 쓰는 기술들과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내 경력을 좋아할 하이어링 매니저가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초조하게 일주일 정도가 지나가던 무렵, 어떤 한 팀에서 관심이 있다며 연락이 왔다. 팀에서 하는 일 자체는 나와 전혀 무관하지만, 그 매니저의 경력이 내 경력과 상당히 비슷한 사람이었다. 이번에는 그 사람의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예스맨이 될 각오로 열심히 준비해서 미팅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그 사람이 꼭 자기 팀에 오라며 설득하는 시간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고마웠고, 그렇게 허무하게 그 팀으로 가게 되었다.


팀매칭이 끝은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의외로 가장 어려웠던 관문은 레퍼런스 체크 단계였다. 나와 전에 같이 일했던 매니저나 시니어의 연락처를 전달하고, 하이어링 매니저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깊은 질문들을 한다고 한다. 미국 서부 IT기업에서는 흔하지 않은 단계였다. 이직 경험이 많이 없어서 충분한 레퍼런스를 제공할 수 없는 딱 내 정도의 레벨에서는 실제로 이 단계에서 많이 탈락한다고 한다. 나는 다행히도 전 매니저가 다른 팀으로 트랜스퍼를 해 간 경우여서 겨우겨우 3명의 레퍼런스를 제공했다. 그렇게 몇 주 간 소식이 없더니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드디어 가장 중요한 연봉 협상 단계다. 이직 사유중 가장 큰 이유가 돈이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잡 마켓은 안 좋았고, 내 현재 회사의 연봉이 낮다는 사실은 업계 사람 모두가 알고 있으며, 내 경력 또한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지라 자신감이 그다지 없었다. 그나마 있던 보험은 다른 회사의 인터뷰를 보았고 느낌이 좋아 오퍼가 나올 것 같다는 상황이었다. 리쿠르터한테 다른 회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지만, 연봉 제안이 좋으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수락할 것이라고 전달하긴 했다.


내 현재 연봉이 상당히 낮다고 생각해서 원하는 금액이나 내 현재 연봉을 알려주지 않고 연봉 협상을 시작했더니,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금액의 제안을 받았다. 엄밀히 말하면, 이미 내 기존 연봉보다는 훨씬 많았지만, 인터넷에 알려진 연봉보다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순간 욱해서 이건 너무 적은 게 아니냐고 따졌더니, 한 20분 정도 있다가 좋은 소식이 있다며 기본급을 올려왔다며 바로 새로운 제안을 알려줬다. 그래도 여전히 알려진 금액보다는 훨씬 적어서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내일 결정해 알려준다고 하고 일단 끊었다.


자신감은 여전히 부족했고 연봉 또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냥 제안을 받을까 밤까지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호구가 되는 듯한 느낌이 너무 강해서, 마지막으로 정말 내가 최소한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금액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그날 오후 새로운 제안을 가져왔는데, 내가 최소한으로 말한 금액보다도 오히려 더 올려왔다. 대신,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할 것을 요구했다. 여전히 알려진 금액보다는 적었지만, 그래도 내가 말했던 금액보다도 높여서 왔다는 사실에 오히려 기분이 괜찮아져서 바로 수락했다.




오퍼를 사인하고 나서, 퇴사 날짜를 정하기 위해 현재 매니저와 콜을 했다. 당연하게도, 매니저는 충격을 먹었다. 지난 몇 년 간 팀에서 나가는 사람이 없던 상황이라, 누군가가 나가는 상황에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백업 없이 사람 한 명이 모든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경우도 많았고, 특히나 내가 맡고 있던 프로젝트는 상당히 복잡한 것에 비해, 그동안 고객이 별로 없어서 혼자서만 담당하고 있었는데, 지난 2년간 조용하더니 갑자기 관심을 가지는 고객들이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며칠 전 같은 팀의 다른 시니어도 나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팀의 시니어가 세 명뿐인데, 그중 갑자기 두 명이 나가게 되면서 매니저가 엄청 겁을 먹고 좌절해 있는 상태였다. 나가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고 하니, 최대한 돈을 맞춰 줄 테니 남아달라고 기다려달라고 했다. 나도 남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어서 그렇게 일주일을 기다렸지만, 결국 회사는 그 돈을 맞춰줄 방법이 없다며 포기했다. 혹시나 애매한 카운터 오퍼를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으로 깔끔히 최종적으로 퇴사를 통보했다.




뭔가 드디어 진정한 직장인의 삶이 시작되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은 재미있는 것만 찾아다니던 삶이었다면, 이제는 월급을 바라보며 사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의 시작이다. 하기 싫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 주어지더라도, "그래도 돈을 벌기 위해선 해야지" 같은 합리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이상한 기대감이 있다. 꿈을 접는 느낌이 들어서 아쉽기도 하지만, 후회 없을 정도로는 경험해 본 것 같다. 너무 돈만 보고 나와 맞지 않는 분야로 가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지만, 사실 이런 선택은 이미 한국에서 직장을 다닐 때도 비슷하게 살짝 해봤고, 오히려 생각보다 재밌고 살만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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