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외국에 살더라도 가만히 있으면 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익숙해질 뿐이다. 대학생 시절 영어수업을 듣다 보니 영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멍 때리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 습관만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안 들리는 영어에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던 때에, 도저히 안 되겠어서 화상 영어를 신청해 공부하기도 했다.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어서, 매니저에게 내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문제인 것 같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랬더니 갑자기 발성을 어떻게 하면 자신감 있게 잘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거다. 말할 때 등을 피고 말하면 더 잘 들린다나..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내 영어실력이 문제인 것 같아."라고 말하니, 그제야 "아 그렇지, 이민자라면 다 누구나 갖고 있는 고민이야. 우리 팀의 누구도 그렇고 다른 누구도 그렇고..." 하며 위로를 해주는데, 응? 그 사람들은 내가 생각할 때 영어를 너무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나에게는 너무 잘하고 너무 빨리 말해서 알아듣기가 힘든 사람들이었다. 원어민이 듣기에는 다 비슷비슷해 보이나 보다 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미팅을 하다가 실제로 두 팀원이 의사소통에 문제를 겪는 상황을 발견했다. 미팅 중에 그 팀원들이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계속 서로 못 알아듣는 거다. 그러다가 매니저가 답답했는지, 끼어들어서 말을 해설해 주기 시작했다. 원어민은 개떡같이 말해도 대충 다 알아들으니, 영어를 다시 영어로 통역해주고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걸 보고 나니, "아 사실은 다들 영어 때문에 불편을 겪지만 그동안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매니저가 다른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다른 팀원이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영어를 얼마나 못 했는지를 알려줬다. 그 팀원은 입사하기 전에 영어로 말을 정말 전혀 못 하는 수준이었는데, 그래도 어찌어찌 영어 블로그 글을 써가며 온라인상에서 팀장 눈에 들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팀장이 채용하기 위해서 면접을 제안했을 때,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일단 면접을 3개월 미뤘다고 한다. 그리고 그 3개월 동안 딱 면접에 쓸 정도로만 영어공부를 엄청나게 해서 결국 합격을 했다. 하지만, 당연히 면접영어와 실제 업무영어에는 차이가 있었고, 입사 후 첫 1년간은 정말 말을 전혀 안 하고 조용히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성격이 조용한 줄 알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팀원은 지금 팀에서 가장 말이 많은 사람이다.
3년이 지난 지금 나의 영어도 엉망이다. 아직도 동문서답을 할 때가 많고, 영어의 필요성을 더더욱 느끼고 있다. 최근에는 팀을 옮기고나니 영어 패턴이나 엑센트도 다 달라져서, 다시 리셋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의사소통 자체야 어찌어찌한다 하더라도, 미묘한 문화적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고, 깊은 대화는 하기 힘들다. 업무적인 대화를 할 때는 패턴이 있으니 그럭저럭 잘 넘길 수 있지만, 평소 안 하던 대화 주제로 넘어가면 알아듣기가 너무 힘들다. 그럼에도, 해외에서 일하기 위해서 꼭 완벽한 영어가 필요한 건 아닌지 꾸역꾸역 버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