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요
어찌어찌 졸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라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긴 것도 좋은 것 같다.
문제는 내 인생이 내가 설계한 대로 흘러가느냐, 에 있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졸업했다. 졸업 후 명확한 계획은 없었으나 글은 계속 쓰고 싶었다. 아무리 글 전공이라도 졸업 후 전공을 살리는 사람은 몇 없다는 교수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그 말에 큰 두려움을 갖지는 않았다. 왠지 나는 글로 돈벌이를 하지 못하더라도 글을 조금씩이나마 쓸 것 같다는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졸업 후 원래의 계획은 터무니없었다. 그러나 그런 계획을 가진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터무니없는 계획을 가진 사람이 또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고, 나와 똑같은 계획을 가진 동기가 있었다. 그 동기가 그때 이야기 해준 계획대로 살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나는 졸업과 동시에 계획과는 완전히 틀어졌다.
어쩌다 보니 생각도 못 한 분야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 면접을 보게 되었고, 대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결론적으로는 그 분야에 발을 들이지는 않았지만, 그 덕분에 터무니없는 계획을 실행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러저러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이전에도 취업에 대한 생각은 있었으나… 안정적인 수입, 경력 등 인생을 살아갈 때 필요한 ‘요소’로써만 취업을 생각했기 때문인지 큰 동기부여가 되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충분히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결론적으로 내가 궁극적으로 살고 싶은 ‘삶’의 방식과 직장은 맞지 않았다. 그러니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취업을 ‘해야겠다’가 아닌 ‘하고 싶다’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취업과 직장이 일상을 유지하는 것에 단순 필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넘어 자아실현의 수단이 될 수도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을 빠르게 이룰 수 있고, 경력도 채울 수 있고, 안정적인 수입도 챙길 수 있다니! 안 하면 손해인 것이다.
… 사실 졸업을 한 지 시간이 꽤 지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시간들도 많았다. 어른들의 ‘이 정도는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라는 말을 들은 지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때만 해도 1주, 2주, 아니… 한 달만 지나면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뭔가 해둔 것도, 보여줄 것도 없다 보니 취업이라는 결과물에 더욱 매달리게 되는 것 같다.
‘쉬었음 청년’에 대한 기사를 보았다.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사실 청년들의 취업난이 그저 그런 수준이 아니라서인지, ‘쉬었음’이라는 단어로 그 모든 슬픔과 고난이 통칭되는 것을 보고 단어 창시자를 향해 분노를 불태우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쉬었음 청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더 이상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좋은 환경, 좋은 연봉, 자아실현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규칙적인 직장 생활이 어쩌면 체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아침을 먹고, 열심히 근무를 하다 점심을 먹은 후 간단한 산책을 하고. 그리고 다시 집중을 하다 보면 즐거운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생활이 신체에도 정신에도 매우 좋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집에서는 정신 상태가 너무 불안정한 데다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출근해서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결국 취업 지원을 했다. 원하는 직군에서는 나처럼 신입인 사람을 뽑는 곳이 거의 없었다. 포트폴리오 하나를 다듬고, 열심히 늘렸다. 할 수 있는 것, 해 본 것은 몽땅 집어넣은 것 같다. 그럼에도 내세울 것이 없어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작성하는 와중에도 얼굴을 붉혔다. 빈칸이 너무나 많았다. 조금만 더 해둘걸, 시간을 그렇게 버리지 말걸… 후회가 밀려들었다.
어디서든 ‘일 잘한다’ 소리를 못 들은 적이 없었으나, 직장 생활은 또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할 자신은 있다.
어릴 적 회장 선거에서 큰 목소리로 말했던 것처럼, 채용 담당자분의 마음에 내 진심이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를 뽑아주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