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가 된 예비교사

우리는 언제든 벌레가 될 수 있다

by 찬난

한참 SNS에서 유행했던 말이 있다.


'ㅇㅇ는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할 거야?'


이 질문을 가족, 연인 등 자신의 가까운 사람에게 던지고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보는 게 포인트다. 대답은 다양하지만 내가 제일 많이 본 반응은 죽이거나 버리는 것이다.



사실, 바퀴벌레가 된 사람이 실제로 있다.


바로 길동이라는 이름의 사내이다.

대기업을 다니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훌륭한 아들이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바퀴벌레가 되어버렸다.


가족들은 바퀴벌레의 모습을 한 길동을 차마 버리진 못했다.

아무리 모습이 변했어도 사람으로서 어떻게 가족이었던 그를 버릴 수 있겠는가.

길동에게 음식을 챙겨주고 방 하나도 쓸 수 있게 해 줬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그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족들은 표면적으론 그를 버리지 않았을지 몰라도, 마음으로는 버린 지 오래였다.

아니, 사실 짐덩어리인 바퀴벌레가 하루빨리 죽거나 집에서 나가길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길동, 그 혐오스러운 바퀴벌레가 죽은 것이다.

가족들은 가엾은 길동을 위해 눈물을 흘렸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을 뿐, 사실 모두가 해방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미 책을 읽거나 내용을 대강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프란츠 카프라의 소설 <변신>의 내용이다.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 그레고르(길동)에게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나도 바퀴벌레이기 때문이다.


내가 벌레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교대를 졸업했지만 초등교사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그래서 임용고시를 보지 않고 군대에 입대했지만,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문제가 몰려오며 어려움을 겪었다.


나라가 요구하는 의무, 사회에서 말하는 능력, 일을 할 수 있는 육체/정신적 건강. 이 중 내가 가진 것이 단 하나도 없다. 사실, 제일 중요한 건 위 3가지가 없는 내가 자본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결국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사람의 능력을 대변한다.


생각해 보라. 어떠한 유의미한 것도 생산하지 못하고 음식만 소비하는 바퀴벌레와 내가 다른 게 무엇인가? 그러므로 나는 바퀴벌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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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벌레가 된다는 허구적 요소를 가졌음에도 <변신>이 인간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잘 담아냈다고 극찬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변신>은 굉장히 다양한 해석이 있는 소설이지만, 나는 작중 그레고르가 진짜 바퀴벌레로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모종의 이유로 더 이상 을 벌지 못하게 됐고, 그런 주인공을 주변에서 점점 벌레처럼 대하게 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든 바퀴벌레가 될 수 있다


나도 <변신>의 주인공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 임용에 통과해 교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님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교사가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당장 다른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상황도, 능력도 안된다. 물론, 부모님이 그렇다고 나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사랑하실 것이다.


하지만 내가 평생을 지금과 같은 상태로 부모님께 도움만 받으면서 산다고 한다면 어떨까?



돈이 곧 능력이고, 능력이 곧 사람의 가치라면, 당신이 벌레가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우리는 언제라도 능력을 잃을 수 있다. 꼭 병이나 사고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나이를 먹어 능력을 잃을 것이다.


물론, 인생에 있어 돈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인생의 전부가 돈이 되어서는 안된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바퀴벌레로 만들다보면 언젠가는 자기 자신도 그렇게 만들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