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죽이는 마법사

기존 가치와의 대립(니체의 철학)

by 찬난

요즘, '달을 죽이는 마법사'라는 소설을 쓰고 있다.


마법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주인공은, 마법을 쓸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났다. 마치 능력 없이 태어난 우리 지구의 사람처럼. 소설 설정 상 마법의 힘은 달로부터 출발하는데,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주인공이 달에게 버림받았다고 손가락질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달의 축복을 받지 못한 주인공은 달처럼 빛나는 은발을 가졌다. 이는 이 소설의 핵심을 관통하는 부분이다.


'달을 죽이는 마법사'라는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마법사가 최고인 세계에서 마법을 못쓰는 주인공이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문득 생겨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글을 끄적이던 중, 유튜브에서 우연히 니체를 접하게 되었다.




니체

신은 죽었다(Gott ist tot)


니체는 '망치를 든 철학가'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기존 가치관을 부수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참고로 이 말은 단순히 무신론을 주장하고자 한 것이 아닌, 이란 존재가 과학이나 자본 같은 다른 가치에 밀려나는 현상에 대해 말하고자 한 것이다.


니체는 세상의 부조리, 인생의 허무함, 권태, 공허함은 당연한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진리—그러니까 플라톤이 말했던 이데아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허무주의에 빠지라고 권고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인생의 무의미함을 온전히 인정하고, 나아가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강한 사람이 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시시포스 형벌 = 인간의 삶


이런 니체의 말에 따르면 우리의 삶이 시시포스의 형벌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뾰족한 산 꼭대기에 둥근 돌을 계속해서 올려야하는 시시포스 처럼, 인간도 진리가 없는 세상에서 가치를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실제로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지 못한다면 인생은 그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우리가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될까? 사실, 사후세계가 있는지, 영혼이 있는지, 신이 있는지 등은 그 누구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만약 누군가 그 사실을 안다고 해도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있을 만큼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진 못할 것이다. 근데 만약 불교의 윤회처럼 우리의 삶을 계속해서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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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하지 않은가? 고통의 연속인 삶을 끊임없이 반복하라니. 어떻게 보면 시시포스가 받은 형벌보다 더 잔혹하다. 하지만 니체는, 우리에게 이런 벌이 주어지더라도, 난 오히려 좋은데?—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말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수용과 힘 빼기 같은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일단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 나는 니체의 철학이 굉장히 인상깊었고, 그것을 내 소설에 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런저런 설정을 추가해 보며 이야기를 조율했다. 그리고 추가하게 된 것이 '달'이다.


중세 시대의 종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정하는 진리였다. 신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까지 정해주었기에 사람들은 그저 따르면 됐다. 교황같이 진리인 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큰 권력을 가졌었다.


소설 속에서의 진리는 이다. 마법을 잘 쓸수록 힘도, 재산도, 권력도 갖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요한 마법이 '달'로부터 얻는 것이라고 하니, 달이 곧 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마법을 쓸 수 없다. 달(신)에게 버림받은 사람이다. 저주받았다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이 어떻게 이를 극복하는지, 기존 가치와 진리에 어떻게 대항하고 결국에는 어떤 결론을 짓는지―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이야기를 마치며..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아 내 소설의 재미를 장담하진 못하겠다.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 있기에 나 스스로도 정말 잘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하지만, 의미 없는 이야기를 그려내진 않을 것이다. 나 스스로에게, 더 나아가 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당신에게— 조금이나마 좋은 영향을 주고 싶기에 좋은 가치를 담은 글을 써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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