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황금 명언 1일 차

르네 데카르트

by 채널김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르네 데카르트-



당신은 죽기 전에 몇 명의 천재와 대화해 봤는가?

혹시 소크라테스와 저녁 식사를 해 봤는지?

물론 못 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기원전 399년에 독배를 마셨으니까. 헤밍웨이는 1961년에 생을 마감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서기 180년에 전쟁터에서 눈을 감았다. 시간이라는 장벽은 생각보다 두껍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

우리에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랑스 철학가이다.




당신의 서재엔 누가 살고 있을까?

지금 우리가 보는 책 한 권, 사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것이다.


2,400년 전 아테네의 철학자가 당신의 침대 머리맡에서 인간의 본질을 이야기한다. 19세기 러시아의 백작이 전쟁과 사랑에 대해 80만 단어를 쏟아내기도 한다. 20세기 미국의 소설가가 파리 카페에서 마시던 와인의 냄새를 글로 재현한다.


이들은 죽었지만 그들의 생각은 지금까지 인쇄되고 제본되어 당신 손에 들려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이들이 과거와 연결되어 지나온 길이다. 책은 단순한 저장 매체가 아니다. 그것은 인류가 수천 년 동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압축한 캡슐이다.


누군가 평생 고민하고, 실패하고 깨달은 것을 당신은 고작 몇 시간 만에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 놀랍지 않은가?



책을 읽는 현실적인 이유

인류가 수 백, 수 천년 전부터 책을 읽는 이유는 장점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나 역시 꽤 오랜 시간 동안 책을 멀리하고 살았지만, 요즘 다시 책을 펼쳐보니 유튜브 같은 건 이제 재미없어졌다.


첫째, 넓어지는 생각의 지도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의 범위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일하면, 세계관의 반경은 자연스럽게 서울로 한정된다. 하지만 당신이 빅토르 프랑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는 순간, 당신의 뇌는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 한 인간의 내면을 볼 수 있다. 그 경험은 진짜는 아니지만, 뇌에 남긴 흔적은 진짜라고 느낀다.


다양한 책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은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내릴 수 있는 판단의 폭이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둘째, 정교해지는 언어

생각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언어가 빈곤하면 생각도 빈곤하다.

단순히 "기분이 나빠"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과 "억울하다, 서럽다, 참담하다, 허탈하다"를 구분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독서는 단지 어휘를 늘리는 게 아니라, 세계를 더 세밀하게 감지하는 능력을 키우는 훈련이다.


셋째, 근육처럼 단련되는 집중력

내가 지하철을 타고 주변 사람들을 보면 10명 중 8명은 숏츠를 보는 듯했다.

5초에서 10초마다 새로운 정보를 주는 환경에 익숙해진 뇌는 점점 긴 호흡의 사고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이 집중력이 짧아지고 긴 글을 읽기 힘들어하는 이유다.


반면 책은 기본적으로 당신에게 50페이지, 100페이지, 300페이지 동안 같은 세계에 머물 것을 요구한다. 이 불편함이 바로 훈련이다. 몸도 편한 자세로만 있으면 오히려 망가진다. 힘들지만 운동을 하는 이유다. 뇌도 독서를 통해 오래 생각하는 능력, 복잡한 맥락을 추적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넷째,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경험

창업을 해본 적 없어도 창업에 관한 책을 읽으면 사장님의 마인드를 미리 장착할 수 있다. 이혼을 경험하지 않아도 관계의 균열에 대한 소설을 읽으면 타인의 고통에 더 섬세하게 반응할 수 있다. 책은 실제로 겪지 않아도 '맥락'을 심어주는 장치다. 실패는 직접 해야 배우는 것들이 많지만, 독서는 일부 실패를 우회할 수 있게 해 준다.


읽지 않는 삶이라고 무너지진 않는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당장 뭔가가 무너지진 않는다. 밥은 먹을 수 있고, 월급이 나오고, 유튜브는 재밌다. 딱히 위기감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는 있다.


생각이 얕아진다. 정확히는 깊이 생각하려는 동기 자체가 희미해진다. 복잡한 것은 단순하게 하는 게 편해지고, 자극적인 요약본만 찾고, 짧은 영상 클립이 우리의 세계관을 채우기 사작한다. 이건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다. 두뇌가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의 문제다.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좁아진다. 독서, 특히 소설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는' 훈련이다. 이 훈련 없이는 나와 다른 배경, 다른 가치관, 다른 결핍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책을 안 읽는 사람이 모두 다 이런 것은 아니지만, 분명 책을 읽게 되면 더 넓은 이해의 능력이 생기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가장 조용하고 치명적인 결과, 바로 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잃기 시작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저자의 생각을 충돌시키는 과정이다. 동의하고, 반박하고, 흔들리고, 다시 정착하는 과정. 이 과정이 없으면 '내 생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점점 주변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


책을 안 읽는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그냥 좀 더 작은 사람이 된다고 본다. 시야의 반경이 좁고, 어휘의 색이 적고, 생각의 결이 성긴 사람이다. 그게 꼭 비극은 아니지만, 충분히 아쉬운 일임은 분명하다.




과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은 이미 당신에게 줄 것을 다 써놨다.


소크라테스는 무엇이 옳은 삶인지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지를, 버지니아 울프는 내면의 강물을 어떻게 흘려보낼지를, 파인만은 이 세계가 얼마나 아름답고 이상한지를. 그들은 모두 책 속에 살아 있다. 그들이 초대한 파티에 당신은 응하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첫 페이지를 여는 것뿐이다.

혹시 책장에 방치해 뒀던 책에 눈이 가진 않는지? 아니면 독서 앱 속에 끌리는 책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 속엔 누군가 당신을 수백 년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