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는 잊어도, 매일의 안녕은 지켜냈던 시간

2021년 치매 아빠의 하루

by 채널김

아버지는 늘 바쁜 분이셨다.

누군가를 만나고 일을 해내느라 집은 언제나 휴식보다 잠시 머무는 곳에 가까웠다. 그런 아버지의 삶이 치매라는 불청객을 맞이하며 돌연 단조로워졌다. 변화의 핵심은 '소통'에 있었다.


5년 전, 2021년의 아버지는 여전히 세상과 대화를 나누셨지만,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하나둘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거 있잖아, 노란 거..." 명확한 명사 대신 모호한 대명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문장은 파편화되었고, 하고 싶은 말과 입 밖으로 나오는 말 사이의 간극은 아버지와 지켜보는 가족 모두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망상으로 고통받기도 한다지만, 아버지는 언어 능력을 조금씩 상실하며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슬픈 과정을 겪고 계셨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덕분에 아버지의 하루는 이전보다 훨씬 심플하고 명확해졌다.




부지런히 '출근'하는 아침

당시 아버지는 동생과 함께 지내셨다.

다행히 스스로 씻고 옷을 입는 일상적인 동작은 가능하던 시절이었다. 노년의 잠은 짧았고, 아버지는 늘 동생보다 먼저 깨어 새벽을 여셨다. 조용히 TV를 보거나 세수를 하며 시간을 보내셨지만, 너무 이른 새벽의 물소리는 단잠을 자야 하는 동생에겐 때로 고단한 알람이 되기도 했다.


"너무 일찍 씻으시면 저도 잠을 못 자요, 조금만 천천히 하세요."

동생의 당부에 아버지는 매번 고개를 끄덕이셨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병세 탓에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새벽부터 부지런을 떠셨다. 결국 동생은 아버지의 리듬에 맞춰 강제로 새벽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하는 아침 풍경이었다.


해가 뜨면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동생이 출근하면 아버지는 당신만의 '출근' 준비를 시작하셨다. 옷을 갈아입고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 보면 주간보호센터에서 데리러 왔다는 전화가 울린다. 아버지는 익숙하게 1층으로 내려가 차에 몸을 싣는다. 이렇게 동생도 아빠도 각자의 자리로 출근을 한다.


보호센터에서의 오후

주간보호센터에서의 시간은 사진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체조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듣는 아버지의 얼굴은 집에서보다 훨씬 활기차 보였다. 규칙적인 식단표 덕분에 아버지가 무엇을 드시는지 훤히 알 수 있었다.


"오늘 뭐 드셨어요?"라고 물으면 아버지는 한참을 헤매며 답을 찾지 못하셨지만, 이미 메뉴를 알고 있는 우리는 적절한 힌트를 던지며 대화를 이어갔다.


점심 식사 후 이어지는 아버지만의 산책 시간은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주변 편의점과 빵집, 과일 가게는 아버지의 단골 코스였다.


손에 쥐여드린 카드 사용 내역과 위치추적 앱을 통해 아버지의 동선을 살피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만의 방식이었다. 때로는 집으로 곧장 발길을 돌리기도 하셨지만, 대개는 다시 센터로 돌아가 오후 프로그램을 성실히 마치셨다.



평범한 저녁

오후 5시 무렵, 센터 차량이 아버지를 집 앞에 내려준다.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친구들과 하루 종일 즐겁게 놀고 헤어지는 아이처럼 환하게 "안녕!" 하고 인사하며 내리는 아버지의 뒷모습. 그 평범한 귀가 장면이 왜 그렇게 흐뭇하고 가슴 뭉클했는지 모른다.


동생이 퇴근하기 전, 아버지는 혼자 씻으며 저녁을 기다리신다. 동생이 돌아오면 마주 앉아 밥을 먹고, 동생이 늦는 날엔 미리 차려진 반찬과 국으로 홀로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셨다. 복잡한 말은 사라졌지만,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씻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 고요한 질서.


그때는 그저 평범하고 단조롭게만 느껴졌던 그 하루가,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얼마나 소중하고 그리운 풍경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비록 단어는 부족했을지언정, 우리에겐 서로의 안녕을 확인할 수 있는 매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화려하거나 바쁜 삶은 아니지만, 나름의 리듬과 안정 속에서 이어지던 시간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평범한 하루들이 오히려 더 소중하고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