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그거 하러 왔는데 그거

그 저 문자로 뭐 하는거 있던데요

by 찬놀

당신이 만약 공무원이 되어 상담창구에 앉았다. 6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아저씨가 업무용 조끼와 편한 바지를 입고 오셔서 말씀하신다.


“근로소득세 신고하러 왔는데요.”


근로소득세는 사업자가 근로자를 고용하고 월급을 주었을 때 거기서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먼저 떼어서 세무서에 납부하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이 아저씨의 말대로 근로소득세를 얼마나 원천징수 했는지 신고하는 서류를 작성하게끔 양식을 드린다.


“이거 어떻게 쓰는 거에요?”

“원천징수 하신 부분에 대해서 작성하시면 됩니다.”

“원천...징수?”

“사람 쓰시고 세금 떼신 거요.”

“사람 안 썼는데? 이 아가씨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대화는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아저씨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근로소득세를 신고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장려금을 신청하거나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공무원이라면 민원인이 호박을 달라고 말해도 알아서 이해하고 수박을 건네어 만족시키는 스킬이 필요한 것이다. 애초에 근로소득세는 세무대리인이 알아서 신고를 하지 사장이 직접 와서 신고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거니와 업무용 조끼와 편한 바지를 입고 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민원인이 사용한 언어 보다는 그의 인상착의, 말투이다.


조금 앉아있었더니 파마머리에 안경을 쓴 50대쯤 되어보이는 아주머니가 오셔서 말씀하신다.


“저 그거 하러 왔는데.”

“어떤 일로 오셨어요?”

“저 그거... 뭐라고 하지? 환급나오는거.”


‘환급 나오는 거는 종합소득세 환급, 부가가치세 환급, 장려금 환급, 농어업용기자재 부가가치세 환급, 원클릭환급 서비스 신청 등이 있는데 정확히 어떤 걸 신청하러 오신 건가요?’라고 말을 하기엔 입이 아프고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여 다시 말해달라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알아서 이것 저것 조회해보고 ‘그거’가 무엇인지 캐치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조회를 해 보아도 이 분이 환급을 받아갈 만한 이유가 없다.


“환급 나갈 게 없으신데... 어디서 환급을 해 드린다고 했나요?”

“뭐 문자가 자꾸 오던데. 27만원 환급이 있대요.”

“문자좀 보여주시겠어요?”


확인해 보았더니 어떤 업체에서 광고문자를 일괄적으로 보낸 것을 정부 기관에서 보낸 것으로 잘못 알고 찾아오신 것이다. 또는 광고문자인 것을 알지만 혹시나 해서 환급 받을 게 있나 모른척 방문하신 것이다.


세무 용어는 일단 한자어가 많이 쓰이고 어렵기 때문에 민원인들은 혼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공무원이 할 일은 그가 원하는 것을 눈치만으로 빠르게 알아내서 적절히 처리해 주는 것이고, 이 스킬이 늘어갈수록 민원인이 천사같은 미소로 웃어주시는 모습을 많이 목격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미처 캐치하지 못한 점을 알아채고 도와주는 직원이 있다면 저절로 존경심이 들기까지 한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경력과 관심에서만 파생되는 업무능력이다. 만약 당신이 말이 통하는 세계에서 합리적인 대화가 하고 싶다면 공무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아닌 업계 관계자를 만나서 소통하는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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