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 관공서에서 소리지르기

공무원의 특기 : 아무한테나 고개숙이기

by 찬놀

그 날은 서에서 운영하는 민원창구에 유독 사람이 몰렸다. 민원창구에는 매일 각 과에서 한 사람씩 차출되어 업무를 보기 때문에 우리 과 민원에 대해서는 내가 혈혈단신으로 다 커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날의 우리과 32번 손님이 볼 일을 마치고 나니 자연스럽게 한 부부가 와서 환급금이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했다, 나는 그 분들이 당연히 33번 손님인 줄 알고 응대를 하고 있었다. 출입문 바로 앞에 번호표가 있으며 직원들 머리 바로 위에 번호가 쓰인 전광판이 있었기 때문에 번호표의 존재를 모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에 열중해서 설명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진정하세요! 제가 대신 사과드릴게요.”

“으아아아아! 이건 대체 왜 있어! 부숴버려야지! 부숴버릴거야!”


남루한 차림의 왜소한 아저씨가 번호표 기계를 부숴버리겠다고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아차 싶어 앞에 있는 민원인에게 번호표를 뽑으셨냐고 물어봤더니 그제서야 몰랐던 척하며 가서 번호표를 한 장 뽑아온다. 나는 난동꾼 아저씨가 우리 과에 볼일을 보러 온 손님이며 먼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앉아있던 걸 모르고 새치기 한 부부의 일을 먼저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야속하게도 새치기꾼들은 미안한 기색이 1도 없이 계속 나를 잡고 광고 문자를 보여주면서 환급금이 정말 없냐고 물고늘어지고 있다. 빨리 저 난동꾼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데 주변 직원들은 열심히 말리고 있고 난동꾼은 복도로 나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다. 누가 보면 내가 그의 부모라도 죽인걸로 오해할 울부짖음이다. 그와중에 새치기꾼이 보여준 문자에는 ‘(광고)전 국민에게 환급금 29만원을 드립니다’와 같은 허위 사실이 쓰여져 있고 나는 그 문자메시지의 정체에 대해서 억지로 웃어가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드리고 돌려보냈다. ‘당신이 새치기를 해서 저 사람이 난리치고 있지 않소’라는 말이 비겁하게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사실 번호표를 제대로 확인을 하지 않은 내 잘못이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기가 원인이 된 사건에 대해서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고 끝까지 본인 일에 대해서 되묻고 되묻는 그 부부의 태도가 야속하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마치 자신의 전 재산을 강탈해간 사기꾼인 것처럼 원망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아저씨한테 복도로 나가 큰 소리로 말했다.

“어떤 일로 오셨어요?”

“어떤 일은 무슨, 때려 쳐! 저 기계를 때려 뿌셔버려야지! 저게 왜 있는건데!”

“제가 실수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업무 도와드릴 테니 이쪽으로 오세요.”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이 무너진 듯이 발악을 했고 나는 계속 사과를 반복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행동이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되어, 그리고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는 변명을 해 피해의식을 달래줄 생각으로 말실수를 해버리고 말았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그럴 수도 있죠! 화 푸세요.”

“그럴 수도 있다니, 그게 할 말이야? 이 아가씨가 아주 어이없는 아줌마네!”

아줌마라고 하면 내가 화가 날 것이라는 착각을 한 왜소한 아저씨는 이제는 아줌마 아줌마 하는 것으로 정책을 바꿔 나를 자극하려고 애썼다.

“서장 나오라 그래!”

“제가 실수했으니 죄송하지만 제가 해결을 해 드리면 안될까요?”

“서장 나오라 그래!”

여기까지 오면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서장실로 모시고 가는 엘리베이터에서도 계속 나의 말실수에 대해서 손짓 발짓을 하며 일장연설을 토해내는데 밀폐된 공간에 함께 있으니 솔직히 CCTV가 있는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서장실 바로 앞까지 가니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나신 총무과 팀장님이 민원인을 달래면서 데려간다. 갑자기 민원인의 목소리가 누그러지면서 이성적으로 바뀐다, 정확히는 이성적인 척을 하는 것일 테지. 진짜로 화가 나기는 했던 걸까? 혹시 이렇게 사무실에서 대접을 받고 싶어서 일부러 난동을 부린 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팀장님께 죄송해서 조금 자리를 지키다가 민원대에 사람이 또 몰려있을 것을 생각하니 오래 있을 수가 없어 다시 내려갔다. 고맙게도 다른 직원이 눈치채고 와서 일을 봐주고 있다. 후에 들은 바로는 그 아저씨는 결국 내가 머얼거니 본인을 쳐다봤다느니(난동을 피우니까), 태도가 도도하고(이 표현은 옛날 노래 가사 이후 참 오랜만에 듣는다) 버릇없다느니 한참 욕을 하다가 위로받고 만족하면서 떠났다고 한다. 오늘 애초에 어떤 일로 관공서를 방문했는 지는 여러번 물었으나 끝까지 듣지 못했고 추후 다시 오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관공서에서 난동을 부리는 것은 혹시 그 아저씨의 취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번호표를 확인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본인의 번호가 먼저라는 한 마디를 했으면 먼저 일을 봐드렸을 텐데, 그 한마디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새치기를 한 민원인에게는 한 마디 하지 못하면서 공무원들에게 그렇게 소리 소리를 지르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던 걸까? 만약 내가 번호표를 제대로 확인하고 먼저 일을 봐 주었으면 난동을 안 부렸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고 이런 사람을 어르고 달래서 치켜세워주고 돌려보내는 공직 사회의 오래된 관행이 그 날도 전형적인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추후에 총무과 팀장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웃으면서 해주시는 말씀이 “큰 소리 나서 좋을 거 없으니까”셨다. 아마도 큰 소리를 방지하기 위해 뒤에서 내 욕에 대해 맞장구라도 쳐주셨을 것 같은 뉘앙스였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한다. 큰 소리 나서 좋을 것은 물론 없다. 하지만 그 민원인은 앞으로도 다른 관공서나 약자한테 접근해서 더 큰소리를 내고 더 막 행동할 것이고 우리 서에 와서도 또 그럴 것이다. 강약약강 아저씨는 하위직 공무원이란 얼마든지 소리치고 꼬투리잡아 스트레스 풀어도 되는 존재라는 걸 또다시 확인하고 돌아갔다. 세상이 희망찬 곳이라고 믿으며 열심히 공부했던 과거의 나를 혼내주고 싶은 날이 이렇게 또 하루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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