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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안 XianAn 스님 Nov 03. 2024

조신의 꿈 이야기 (송광사 법당 내 벽화)

조신의 꿈이야기가 송광사 큰법당 벽화로 그려져 있다.

주인공은 세달사의 승려 조신이다.


명주 태수 김흔이 딸을 데리고 불공을 다녀갔다.조신은 태수의 딸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낙산사를 찾아가 빌었다.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그 여인과 인연이 맺어지게 해주십시오. 하고 남몰래 기도하였다.

기도는 열심히 했지만 연분이 맺어지기는커녕 다른 남자와 혼사가 정해졌다는 소문이 들릴 뿐이었다.

조신은 새벽기도시간에 법당의 종을 치며 염불을 하다가 졸음이 몰려와 잠깐사이에 깊은 잠에 빠졌다.

그는 꿈속에서도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 관세음보살을 원망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웬일인가, 사모하던 낭자가 제 발로 절에 나타나 불당 문을 열고 조신을 찾아 들어오지 않는가.

낭자 또한 부모가 정한 혼처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우연히 만난 조신에게 연정을 품고 과감히 집을 나왔으니 거두어 달라는 것이었다..


두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신방을 차리고 살기로 약속하였다.

조신 부부는 40년간 같이 살면서 자식들 5명을 낳았다.


패물을 팔아 몇년간은 생활을 할수있었으나 돈도 바닥이 나고 앵벌이처럼 구걸해서 하루 하루를 지내야 되는 비참한 삶이 현실이 되었다.나중에는 그 보잘것없는 초막도 잃고 온 가족이 함께 떠돌아다니며 구걸로 먹고 살기를 10년간 했다. 어느 날 고갯길을 넘어가는데 15살 된 큰아이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죽었다.


부부는 대성통곡을 하며 시신을 길 옆에 묻었다. 그 뒤 남은 가족들이 풀을 엮어 짚신을 삼아 구걸로 먹고 살았다.

부부는 늙어서 움직이기도 힘든데, 어느 날 10살 된 딸이 마을에서 구걸을 하다가 개에게 발목을 물려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부부가 이 꼴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여 눈물을 흘리는데 아내가 침중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는 아름답고 젊었으며 의복도 깨끗했습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함께 살아온 세월이 벌써 50년이니 참으로 깊은 인연입니다.


그러나 병은 깊어가는데 굶주리며 추위에 떨기를 피할 수 없으니, 이제는 보잘것 없는 음식이라도 제대로 빌어먹지도 못하여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아이들이 이런 꼴을 당해도 돌보지도 못하는데 언제 부부의 즐거움을 즐길 수 있을까요? 아름다운 얼굴이며 밝은 웃음도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지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언약도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가지처럼 지나갔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예전의 기쁨이 바로 근심의 뿌리였습니다. 다 함께 굶어죽기보다는 서로 헤어져 상대방을 그리워함만 못할 것입니다. 좋다고 취하고 나쁘다고 버림은 사람 마음에 차마 할 짓이 못 되지만,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헤어지고 만남에도 명이 따르는 것이지요. 바라건대 이제 헤어집시다."


조신은 아내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각자 아이들을 둘씩 데리고 헤어지기로 하였다.떠나기 전에 아내가 말하였다.


"저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


두 사람이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조신이 꿈에서 깨어났다.

새벽빛이 뿌옇게 밝아오는데 종소리의 여운이 아직도 사라지기 전이었다.

마치 한평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겪은 듯 세상사에 뜻이 사라지고 재물에도 관심이 없어졌다. 또한 자기 앞에 있는 관세음보살을 바라보기가 부끄러웠다.

조신이 돌아가는 길에 꿈 속에서 큰아이를 묻은 곳에 들러 땅을 파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왔다.

조신은 미륵상을 물에 씻어 토굴에 봉안하고 정토사라고 하였다.

이후 조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출처. 현장스님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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