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공룡둘리와 선명상

by 현안 XianAn 스님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아기공룡 둘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제일 좋아했던 만화이기도 합니다. 최근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추천 영상으로 떠서 잠깐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얼음 속에 있다가 갑자기 서울로 흘러온 아기 공룡. 겉으로 보면 늘 장난을 치고 떠들썩하고 명랑한 캐릭터입니다. 친구들과 사고를 치고, 고길동 아저씨와 실랑이를 벌이며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둘리는 감정의 기복이 꽤 큰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즐겁게 웃다가도 금방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심심하다며 투덜거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둘리는 자주 엄마를 찾습니다. 이야기 속에서 "엄마 보고 싶다"고 말하며 떠돌아다니는 장면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고길동 아저씨에게 꽤 수동적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장난을 치거나 일을 벌여 결국 길동 씨를 곤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재미있는 장면으로 보였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둘리는 어딘가 외롭고 불안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의 마지막입니다.
대부분 아기공룡 둘리의 결말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마지막에 둘리는 엄마를 찾기 위해 남극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결국 엄마를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고길동 아저씨의 집으로 거지꼴이 되어 돌아옵니다. 갈 데가 없다며 울면서 집에 들여보내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둘리는 다시 그 집에서 살게 됩니다.

이 장면을 떠올리다 보니 묘하게 불교적인 느낌이 듭니다.
사람들은 종종 어딘가에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장소, 다른 환경, 다른 사람을 만나면 지금의 괴로움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계속 밖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바깥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무리 다른 곳으로 가도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괴로움은 그대로 따라옵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신비한 현상이 있다고 하면 곧바로 그 사람이 깨달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둘리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둘리는 "호이, 호이" 하며 특별한 능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엄마를 그리워하며 늘 외로워합니다. 초능력이 있어도 마음의 괴로움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해서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신통과 깨달음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수행을 하다 보면 때로는 특별한 능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있다고 해서 마음의 번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능력에 마음을 빼앗기면 자신의 마음을 직면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는 그저 재미있는 만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떠올려 보면 묘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밖에서 무엇인가를 계속 찾아다니는 동안에도 결국 우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선명상을 배우고 마음을 다스리고 싶다면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문제의 뿌리를 찾아 해결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가 바로 우리가 수행하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