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마지막 주를 앞둔 오늘, 봄은 이미 문지방을 넘어선 듯하다. 아직 밤공기는 차지만, 바람에는 분명 봄 내음이 스몄다. 계절의 변화처럼 음악 활동도 다시 기지개를 켰다. 이미 몇 번의 공연을 마쳤고, 이번 주 금요일에는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다.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중요한 바흐 칸타타 공연을 앞두고 있다.
유럽 연주 여행 — 꽤 로맨틱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전사로 변신한다. 장거리 비행과 여덟 시간의 시차쯤은 뉴런 깊숙한 곳에 밀어 넣어 둔다. 생계형 뚜벅이 여행자 모드로 전환한 뒤 근육을 풀가동한다. 어깨와 승모근도 바짝 세운다. 그리고 기차역까지 뛴다. 20kg이 넘는 여행가방을 들고.
유럽에서는 줄곧 뚜벅이였다. 걸어서 20분 내외는 두 다리를 쓰고, 그보다 먼 거리는 자전거나 트램을 탔다.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 사이를 이동할 땐 기차를 이용했다. 굳이 자동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유럽의 도시는 오래된 구조를 간직하고 있어 사람 중심으로 짜여 있고, 대중교통 또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국에서도 뚜벅이로 살았다. 물론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자차에 대한 욕망을 일찌감치 접어야 했지만 큰 불만은 없었다. 모든 공연과 리허설, 강의가 있을 때마다 교통카드 한 장과 튼튼한 두 다리로 전국을 누볐다. 짐이 적을 땐 배낭, 많을 땐 여행용 캐리어에 악보, 드레스, 구두, 화장품, 심지어 스팀다리미까지 넣고 씩씩하게 다녔다.
한번은 춘천에서 연주를 마치고 다음 날 공연을 위해 바로 경기도 화성으로 이동해야 했다. 춘천역에서 기차를 타고 용산역으로 간 뒤, 그곳에서 최종 목적지인 성당까지 두 번의 버스를 더 갈아탔다. 차로 가면 두 시간이면 될 거리를 세 시간 반 넘게 이동한 셈이었다.
연주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었다. 혹시 몰라 중간에 택시를 탈 생각으로 정류장 앞에 섰다. 해는 벌써 아스팔트 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가벼운 클락션 소리와 함께 까만 세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동료였다.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내게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일단 타라고 했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듯 허겁지겁 차문을 열었다.
그냥 버스 타고 가도 되는데. 나 때문에 돌아가는 건 아닌지 괜히 미안하고 민망해져, 빈말로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다. 내 의중을 간파한 그녀는 특유의 애교 있는 콧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화답했다 — “누구한테 좀 태워달라고 하지. 아이고, 선생님! 여기는 유럽이 아니에요!”
연주 스케줄이 바빠진 지금은 가끔 엄마 차를 훔쳐 탄다. 운전을 하면 확실히 몸이 편하다. 그래도 여전히 뚜벅이가 좋다.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나만큼 살뜰하게 시간을 쓰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밀린 일정을 정리하고 이메일에 답장을 보낸다.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외운다. 가끔 소설책에 푹 빠져 내려야 할 곳을 놓칠 때도 있다.
대중교통은 흥미로운 사회 공간이다. 다른 우주를 짊어진 사람들이 한 칸에 모여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한다.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엽다. 내가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듯, 그들 역시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다가오는 유럽 솔로 무대의 압박감 때문에 잠을 설쳤다는 것도, 그 와중에 프랑스 동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듀오링고 프랑스어 연속 학습 144일을 달성했다는 것도.
익명의 우리는 그렇게 매일 각자의 전투를 준비하며 같은 칸의 공기를 나눠 마신다. 빈자리를 탐색할 때 빼고는 서로에게 무관심하지만, 타인을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의 우주는 계속 순환하고 있다. 언제 예기치 못한 파편이 날아들지 모르는 나의 소행성도 열심히 궤도를 따라 도는 중이다. 참으로 귀여운 우리들. 어여삐 여기소서. 나는 약간의 연민, 그리고 많은 사랑을 담아 모두의 우주를 응원한다.
* 덧붙이기
대학 강의하는 날이면 학생들과 같은 버스를 탄다. ‘스무 살’의 음소와 음절 사이에는 녹음 같은 청량함이 배어 있다. 그들과 뒤섞여 버스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나 역시 그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물론 그냥 착각일 뿐이다. 레슨 중 거울 앞에 아이들과 나란히 서면 나는 내가 아닌, 냉장고에 유물처럼 박아 둔 웬 오이 하나를 마주하기 때문이다.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