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우유 아이스크림을 시키다
나는 자타공인 아이스크림 마니아다. 그 옛날, 국민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90년대 초반에도 나는 이미 배스킨라빈스를 드나들며 온갖 맛을 섭렵하고 있었다.
현대백화점 옆 아파트에 사셨던 외할머니의 영향이 컸다.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거의 의식처럼 백화점에 들르곤 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외갓집 식구들은 손주에게 인색하지 않았다. 쇼핑의 마지막은 늘건물 맨 꼭대기층 배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는 것으로 마무리 되곤 했다.
가장 좋아하는 맛은 ‘쿠키앤크림’. 진한 우유 아이스크림에 오레오 쿠키가 통째로 박혀 있어, 조각이 씹힐 때마다 달콤한 아이스크림 사이로 쌉사래한 초콜릿 맛이 올라왔다. 단맛과 쌉쌀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그 조합이 어린 나에게는 더없이 근사한 행복이었다. 어딘가 외국 같은 맛.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사대주의적 멜랑콜리의 달달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반 친구들이 스크류바나 빠삐코 같은 ‘빙과’에도 즐거워하던 모습을 나는 은근 멸시하고 있었다.
쿠키앤크림으로 시작된 배라를 향한 나의 탐미 여정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주로 무겁고 진하며 토핑이 듬뿍 들어간 맛들이 탐구 대상이었다. 자모카 아몬드 훠지, 아몬드 봉봉, 초콜릿 무스, 엄마는 외계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랑에 빠진 딸기 같은. 가벼운 과일 셔벗이나 단순한 맛들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습관처럼 딸기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동생을 나는 대놓고 비웃곤 했다.
그런 내가 오늘 ‘소금 우유’를 주문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믿을 수가 없다.
애써 합리화를 시작해 보려 한다. 그래. 오늘은 피곤했다. 대학교 강의를 하러 가는 도중 학생 두 명이 급하게 레슨을 취소했다. 결국 한 시간 레슨을 위해 왕복 네 시간을 넘게 이동해야 하는 셈이 되었다. 불쾌한 일이었다.
단순히 빵으로 해결될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맞다. 최근 여러 가지 일로 신경이 꽤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사와 함께 전세금을 상환하면서 반공식 빚쟁이가 되었고, 다가오는 공연들 때문에 마음 한켠이 계속 조급했다.
알코올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은 한 잔 마셔야 했다. 혼자 해장국집에 들어가 내장탕에 청하 한 병을 비웠다. 눈꺼풀과 볼이 빵빵해지며 취기가 올라오자 나를 옥죄던 긴장감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집으로 갈까 하다가, 양심상 연습실에 들르기로 했다. 마침 가는 길에 배스킨라빈스가 있는 것이 화근이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예전에 당근마켓에서 사 두었던 3만 원짜리 모바일 교환권도 떠올랐다.
키오스크에서 맛을 고르려는데, 아, 도저히 예전에 먹던 맛에 흥취가 돋지 않는다.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적은 없었다. 독감과 코로나에 걸렸을 때 빼고는 말이다. 내장탕과 청하로 달궈진 위장을 달달하게 달래고는 싶었지만, 예전에 먹던 맛을 먹자니 ’느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결국 화면에 보이는 아이스크림 아이콘 가운데 가장 희여멀건하고 무난해 보이는 소금 우유를 선택했다. 나머지 하나는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동생이 매번 시킬 때마다 그걸 왜 돈 주고 먹느냐며 비아냥거리곤 했던 그 맛이다. 사이즈도 더블 주니어로 다운그레이드했다.
여느 때처럼 컵을 순식간에 비우고 나자 공허함이 밀려왔다. 이렇게 하찮고 보잘것없는 맛에도 만족하고 있는 내 모습이 구슬퍼졌다. 배추김치 심 가까운 부분만 먹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라면에 이파리를 싸 먹게 된 나. 오늘 나의 소금 우유 아이스크림도 그 연장선쯤에 놓인 것일까.
인정하기는 싫지만, 취향이 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좋으련만 불혹을 앞두고 자꾸 과거와 이별하는 내가 생경하기만 하다. 그래도 아직 아이스크림 컵 바닥을 깨끗이 비워낼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니다. 이 순간도 언젠가 이별하게 되겠지. 문득, 이가 시리다며 배라에서 카푸치노를 시키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안 돼!
술이 깨고 있다. 연습이나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