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古)음악 전문 가수로 통한다. 고음악은 서양고전음악 가운데서도 바로크를 포함한 그 이전 시대의 음악을 지칭한다. 나의 레퍼토리는 주로 바로크 시대의 작품이다. 잘 알려진 바흐와 헨델은 물론, 가끔은 처음 들어보는 작곡가들의 음악도 연주한다.
처음 접한 건 대학교 4학년 때다. 우연히 수강한 ‘바로크와 종교음악 수업‘에서 쿠프랭의 작품을 부르게 되었다. 유려한 선율 끝에 미끄러지듯 꼬리를 내린 장식음은 레이스를 겹겹이 쌓은 속치마와 비단 드레스 아래로 슬쩍슬쩍 보이는 구두의 앞코 같았다. 그야말로 개안(開眼)의 순간이었다.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3년 전, 세계는 여전히 코로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나는 미래가 막막했다. 유학을 결심하긴 했지만 돈, 시간 나이 —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하는 공부는 찬성보다 반대해야 할 이유가 더 많아 보였다. 그럼에도 과감히 네덜란드로 떠났다. 마흔 넘어 후회하느니 지금 해 보자. 가서 정 힘들면 때려치우지 뭐. 이렇게 대책 없이 단순했다.
호기롭게 시작한 늦깎이 공부는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무엇보다 돈이 문제였다. 일할 기회가 마땅치 않아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온전히 감당해야 했다. 열 살도 넘게 어린 친구들과 부대끼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만두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지금 그만두면 어떻게 되나요, 행정실에 물어본 적도 있다. 그러나 포기하기에는 고음악이 너무 좋았다. 스스로 좋아서 시작한 공부는 인생 처음이었다. 그래, 끝까지 해 보자. 뒷일은 뒤에 감당하지 뭐. 다시 대책 없이 단순해지기로 했다. 1년 후, 나는 결국 졸업장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 음악을 하고 있다.
바로크 음악의 매력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라고 묻는다면 나는 정서(Affekt)에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바로크 음악은 작품마다 고유한 정서를 지닌다. 작곡가는 화성과 선율을 통해 그것을 형상화하고, 연주자는 해석하여 그 정서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작곡가가 음악으로 그린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연주자는 음표 사이를 상상력으로 잇는다. 과거의 개인적 감정들을 불러내야 할 때도 있다. 감정의 폭발과는 거리가 멀다. 악보 위의 기호들을 읽어 해석하고 언어처럼 소생시켜야 한다. 수사학적인 음악이다.
얼마 전 엄마와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단종이 죽는 장면에서 엄마는 눈물을 훔치셨다.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관객의 눈물을 이끌어내기 위해 감독과 촬영팀, 배우들이 기울였을 노력을 생각했다. 주요 관객층의 취향을 고려했을 때 훌륭한 설득력을 가진 작품이었다. 재미있게 보았다. 다만 머릿속이 바빠 눈물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바로크 음악을 공부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고민의 연속이다. 트레드밀 위를 달리면서도 축축 쳐지는 헨델의 음악을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가사에 반복되는 ‘고통’이란 단어에 음악적 당위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힌트를 얻기 위해 지금도 늦은 밤 피아노 앞에 앉아 장식음과 씨름 중이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이러고 있으니, 이 사랑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