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음악가에겐 동굴이 필요하다

by 고음가수

대학교 졸업 후 유학을 떠나기 전, 합창단 생활을 잠깐 했었다. 인생 첫 직장이었다. 먼 통근길에 보수도 적었지만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내 음악의 토양이 되어주었다. 바흐의 모테트를 처음 읽어 보았고, 모차르트의 레퀴엠, 미사곡도 공연해 봤다. 무교였던 나는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경험도 해 보았다. 연습실 근처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노래했던 일 역시 잊히지 않는다.


지휘자 선생님께서는 평소 말씀이 조금 많은 편이었다. 나는 즐겨 들었다. 신앙심이 깊고 여러 방면으로 해박한 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음악에 대한 철학이 뚜렷했다. 음대에서 4년을 보내고도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은커녕 왜 노래하는지도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내겐 신비로운 분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음악만을 생각하는 모습이 존경스럽기도 했다.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동굴로 들어가야 돼요.” — 그 말씀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다. 왜 동굴로 들어가야 할까.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기본적으로 표현의 수단으로 여겨진다. 특히 연주자는 작곡가가 쓴 악보를 읽고 해석하여 작품의 가치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 전달의 과정을 “표현”이라고 단순화해 보자. 그렇다면 이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은 무엇일까. 표현은 밖을 향한다. 드러나는 에너지이기에 소리, 테크닉, 강약 조절 같은 외향적인 요소들만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것은 안쪽을 향하는 시선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굴로 들어가는 일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고독의 시간이며, 나만의 목소리를 발견하는 여정이다.

나는 그 말씀을 지금까지도 연습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음악을 하는 시간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욱 그렇다. 동굴이라니, 비유부터가 근사하지 않은가. 산속 깊은 곳 바위 사이를 비집고 생긴 동굴을 생각해 보라. 적당한 고립과 폐쇠를 지니되, 문이 없어 언제든 나갈 수 있다. 밖은 햇빛이 있고 바람이 불며 비도 내린다. 밤이면 달이 뜨고 별빛이 흘러와 사유의 강을 적신다. 다른 공간과 비교해 보면 무릎을 치게 된다. 밀실은 집요하게 닫힌 공간이라 고집스러운 느낌을 준다. 서재는 이론적이고 딱딱하다. 비밀의 방은 너무 은밀해서 공감하지 못할 것 같다. 동굴 — 아무리 생각해도 딱이다.

물론 동굴에 머무는 일은 쉽지 않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카톡과 왓츠앱 알림은 나를 자꾸 속세로 끌어들인다. 잘 나가는 동료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소셜 미디어에 일상을 드러내는 일도 해야 한다. 피아노 앞에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집중하지 못하고 음표만 더듬다 집에 오는 날도 많다. 연습실 가는 일은 매일이 작은 드라마다. 어제는 기침으로 인한 컨디션 저하, 다가오는 공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기분이 가라앉지 않아 연습실 건물 1층 빵집에서 빵을 두 개나 사 먹었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신승리 모드를 가동한다 — 집에 누워 있는 것보단 낫지 뭐.


흔들리지만 여전히, 매일 동굴로 간다. 사실 연습하는 건 꽤 좋아하는 편이다. 짧은 시간 안에 일취월장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초조할 뿐, 연습 자체가 싫었던 적은 없다. 일단 피아노 앞에 앉아 음악과 마주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가끔 작곡가의 목소리도 듣는다. 대개는 “야, 그거 아니거든” 하고 꾸짖는 소리지만, 그들과 시간과 공간을 넘어 소통하는 상상을 한다. 연습실을 나올 땐 언제나 행복하다. 드디어 세상을 살아도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동굴은 “쓸모 있는 나”를 돌려보내기 위해 나를 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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