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냐 헨델이냐 물으신다면

by 고음가수

올해 첫 솔로 연주를 앞두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열리는 마티네 콘서트다. ‘바흐와 헨델’을 주제로 한 공연이라 프로그램도 두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엮었다. 나는 바흐와 헨델의 칸타타 아리아 몇 곡을 부를 예정이다.


바흐와 헨델, a.k.a.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을 따라 세뇌처럼 외우던 그들의 교육적 별칭은 아직도 유효한 모양이다.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일부에서만 통용되는 표현인데도, 공연 기사나 블로그를 읽다 보면 여전히 그들을 부모님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 장난기 많은 삼촌이 짓궂게 묻는다면, 나는 아빠가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바흐와 헨델의 곡들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확신했다. 나는 ‘바흐파’다. 바흐의 음악은 인간의 온갖 감정—희로애락은 물론 신심, 탐욕, 평안, 번뇌까지—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깊이 두드린다. 그의 악보를 읽다 보면 내면이 조용히 열리고, 두 눈은 어느새 영혼과 마주한다. 어떤 마음 상태에 있든, 설령 그것이 깊은 어둠 속에 있다고 해도, 바흐의 음악은 어둠을 직시할 수 있는 등불을 밝혀준다.


헨델의 음악은 조금 다르다. 그의 음악은 종종 시각적인 자극을 동반한다. 자주색 자카드 드레스, 하얀 귓불에 걸린 에메랄드 귀걸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빼곡히 꿰어진 진주 목걸이, 그 뒤로 은은히 비치는 금 촛대 — 헨델의 음악은 이런 빛깔과 질감을 지니고 있다. 전하는 메시지의 결 또한 다르다. 발신자는 대개 헨델 그 자신이다. 그는 말한다. 어때, 내 멜로디 죽이지. 나 천재지. 나 이번에도 성공하겠지.


이전에 헨델의 작품을 준비하며 그의 평전을 읽은 적이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살았던 바흐와 달리, 헨델은 국제적인 음악가였다.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1710년대부터는 영국 런던에 정착해 시민권까지 취득했다.


기차는커녕 마차도 신통치 않았던 18세기 초, 헨델은 독일과 이탈리아, 영국을 누비며 수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는 천재 음악가일 뿐만 아니라 타고난 사업가이기도 했다. 런던에서 오페라 사업을 운영하며 귀족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 공연 기획과 흥행 관리까지 도맡았다. 공적인 일 외에는 편지를 거의 남기지 않을 만큼 자기 관리 또한 철저했다. 정말 지독한 워커홀릭이었다.


그래서인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인물은 단연 헨델이다. 어떤 마인드로 세상을 살아간 사람인지 궁금하다. 콧대 높은 귀족, 변덕스러운 성악가, 갈대 같은 관객, 절대 권력을 쥔 왕까지 — 이토록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 그토록 바쁜 와중에도 무슨 정신으로 작곡을 해냈는지도 알고 싶다.


막상 만나게 된다면 두렵기도 하다. 그의 천상계적인 능력에 비해 나는 너무 초라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훗, 애송이에게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겠군.” — 문턱을 넘기도 전에 헨델은 나를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쩌면 조수를 불러 끌어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Ach, 암쏘, 쏘리 — 외마디 비명 같은 한 마디를 남긴 채 신속히 자리를 뜰 것이다. 아니, 죄송하다는 말조차 할 용기가 있을지 모르겠다. 깡이라면 어디 가서 밀리지 않는 나도, 위대한 헨델 앞에서는 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 덧붙이기

고국에서, 그것도 서울이 아닌 곳에서 바로크 음악으로 프로그램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시대악기로 연주한다는 점 또한 매우 뜻깊다. 이 무대 역시 훌륭한 선생님들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음악을 하다 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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