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회복의 시작은 후회에서부터

후회에 대한 에세이

by 기록의 상사맨


“그만 좀 하라고! 이럴 거면 진작에 이혼하지 왜 아직도 붙어 사는 거야!?”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해 소리쳤고, 옆에 있던 의자를 집어 던져 부수었다. 나의 20대 중반 어느 날,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가장 크게 화를 낸 날이었다. 그렇게 그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은 내가 화를 토해내는 것으로 파단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지더니 부도가 났고 가세가 기울었다. 그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렇게 언성을 높여 다투는 날이 많아졌고 한번은 작정한 듯 서로의 끝을 보이더니, 집기가 남아나지 않고 부서졌다. 그날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장 심하게 다툰 날이었고 나에게 큰 충격과 상처로 남았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울음을 삼키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 것에 대해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더욱 원망했다.


그때는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 싸움을 말리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렸을 때 그 생각이 불쑥 올라왔다. 너무 화가나 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집어 던졌던 것이다.


며칠 뒤 아버지에게 문자가 왔다. 미안하다는 내용과 함께. 저도 죄송했다는 형식적인 답장을 보냈다. 그 사건 이후 아버지와 나는 더욱 멀어졌다. 아버지와 같이 있을 때면 그 상황과 자리는 나에게 불편한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무언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해주실 때가 있었지만 나는 듣고 싶지도 않았고 내 생각을 얘기하지도 않았다.


“아들, 퇴근하고 아빠랑 맥주 한잔 할래?”

‘저 오늘 약속 있어요.’


“오늘 날 좋은데 등산 같이 갈까?”

‘오늘 피곤해서 쉴래요’


“여기서는 미리 1차선으로 빠져야지”

‘아 진짜… 저도 알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때도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역시나 변함없이 멀고 먼 사이였다. 그렇게 아버지도 나도 한 해 한 해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나에게 큰 사고가 일어났다. 나와 거래 업체 담당자 간의 오해로 인해 큰 손실로 이어졌고 그 일로 회사에 시말서도 제출했다. 학교 다니는 동안 반성문 한번 써 본적 없던 나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미 일어난 사고의 손실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그 어느때보다 고군분투했고 그 기간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문득 예전에 나에게 무언가를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아버지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고 싶으셨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결국 나는 아버지를 찾게 되었다.


“아빠, 오늘 술 한잔 하실까요?”


이 한 말씀을 드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아버지께서는 흔쾌히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는 근래에 힘든 일에 대해 털어 놓았다. 일찍이 사업을 시작하셔서 산전수전 겪으셨기에 아버지의 경험과 조언은 나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대화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회사 문제로 시작된 대화는 나의 일상 얘기로 이어졌다. 아버지와 나 사이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고, 아버지에 대한 나의 생각은 점점 바뀌기 시작했다. 왜 진작에 아버지와 이런 시간을 갖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날 아버지와 대화를 멈추고 내 스스로를 고립시켰다는 사실에 후회가 들기도 했다.


지금은 나에게 기쁜 일이 생기거나 고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상의하는 사이가 되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존재가 커 보이기만 했는데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나 자신도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다 보니 아버지도 결국 완벽한 존재가 아닌, 한 명의 인간이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봐야 안다고 했나 혼인성사를 하고 딸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아버지의 마음이 더욱 이해가 되는 요즘이다.


KakaoTalk_20250824_134559680.jpg 혼술하는 아빠 앞에 마주 앉아주는 딸아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형 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