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겨울, 진짜 캐나다 이민 이야기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반드시 외국인으로 살아봐야 한다.

by 제이든 박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캐나다에 온다.

자녀 교육, 커리어 전환, 새로운 삶.


나의 경우는 아내의 설득이 계기가 되었고, 그 길이 결국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0대 후반, 한국에서 매일 쏟아지는 부정적인 뉴스를 보며 고민했다. “이 땅에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선뜻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마침 찾아온 캐나다 이민 기회는 내게 새로운 가능성처럼 보였다. 그래서 주저 없이 2021년 5월 캐나다로 향했고, 세 번의 겨울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3년이 넘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나는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덕분에 이제는 한국에서 캐나다 이민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조언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1. 한국인은 알 수 없는 레벨의 친절

처음 몇 달은 생존이 전부였다.

집을 구하고, 은행 계좌를 만들고, 휴대폰을 개통하는 일들조차 낯설고 버거웠다. 그때의 나는 ‘친절’이라는 단어가 너무 한가롭게만 들렸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친절을 마주했다.

어느 날 동네 산책을 하는데 처음 본 이웃이 다가와 “어제 올림픽 개막식 봤냐, 정말 멋지지 않았냐”고 말을 건넸다. 그 순간, 나는 ‘이 사람이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국에서라면 모르는 사람과 이런 대화를 나눌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 번은 같은 아파트 층에 사는 아저씨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 그가 먼저 “캐나다 생활은 어때요?”라고 묻더니, 이내 캐네디언인 본인도 너무 힘들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잠깐의 만남이었는데도 서로의 고충을 나누는 게 당연한 듯 이어졌다.


낯선 땅에서 이런 대화를 경험하며 깨달았다. 한국에서 내가 맺어온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경직돼 있었고, 때로는 가짜 웃음과 체면에 묶여 있었다는 걸. 캐나다 사람들의 친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필요 없는 대화 같지만, 오히려 그런 가벼운 소통이 내 영혼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2. 미친듯이 유연한 나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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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커피 브레이크 시간에 본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20대 초반 동료와 50대 후반 동료가 사장님이 직장에서 나가자마자 나란히 앉아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다. 세대 차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오랜 친구처럼 가식없이 시끄럽게 고래고래 떠들며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30살이상 차이나는 친구, 이게 진짜 가능한가?”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우리는 흔히 ‘위아래’라는 관계에 익숙하다. 나이와 직급이 먼저 정해지고, 대화는 그 틀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세대 간의 벽이 상상 이상으로 훨씬 낮았다.


동료에게서 들은 이야기 역시 놀라웠다. 컬리지를 다닐 때 60대 아주머니와 같은 반에서 수업을 듣고, 팀 프로젝트까지 함께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웃으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런 건 한국 같으면 신문 기사에 나올 일 아닌가?”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배우고 도전하는 모습은 ‘인생 2막’이라는 말이 결코 허투루 쓰이는 게 아님을 보여줬다.


이제 하나의 직업으로 평생을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다. 커리어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하지만 한국의 나이 문화와 직급 문화는 오히려 중년들의 재취업과 도전을 가로막는다. 모든 세대가 친구처럼 가볍게 소통할 수 있을 때, 중년들도 다시 기회를 얻고 살아갈 힘을 갖게 된다. 나이는 인생의 스테이지일 뿐이지, 위아래를 나누는 계급이 되어서는 안 된다.



3. 영어: 게으름을 감출 수 없는 시험대



이민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역시 언어였다. 1960~70년대에 미국이나 캐나다로 건너간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지에서 제대로 된 취업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단순한 지시조차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었고, 그러니 직장에서 효율을 내기는커녕 늘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이 의지할 수 있었던 건 ‘부지런함’뿐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유일한 어필 포인트였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 이민자들은 다르다. 영어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고, 게다가 AI, 온라인 강의, 각종 자료가 쏟아진다. 예전보다 이민의 난이도는 확실히 낮아졌다. 솔직히 말해서 1년 반에서 2년만 리스닝과 스피킹에 집중한다면, 이민자 집단 안에서 영어 TOP 10% 안에 드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핑계다. 20~30대가 학창 시절 영어 공부를 안 했다는 이유로, 영주권 신청에 필요한 점수를 맞추지 못하거나, 기본적인 행정·은행·병원 업무조차 혼자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건 단순히 준비 부족이 아니라, 이민자로서의 최소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그런 사람들은 게으른 것이다.


캐나다 정부는 그런 외국인까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오구오구’ 챙겨주지 않는다. 영어 실력은 단순한 언어 능력이 아니라, 그 사람의 근면성과 자기 관리 수준을 드러낸다. 실제로 교민 사회만 봐도 영어와 생활 태도는 거의 95%가 일치한다. 성실한 사람은 영어도 된다. 게으른 사람은 늘 변명부터 찾는다. 그것이 현실이다.



결론: 세 번의 겨울이 남긴 것

최근 읽은 소설에서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짧게라도 외국인으로 살아봐야 한다.

돌아보면 캐나다에서 보낸 3년은 바로 그 경험이었다. 이민은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낯선 사람의 친절에 마음을 여는 법을 가르쳐줬다. 세대의 벽을 넘어보는 기회를 주었고, 언어라는 장벽이 더 이상 두려움이 될 수 없음을 알려줬다.


세 번의 겨울 동안 나는 배웠다.
이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불편함과 불확실함을 견딘 사람만이, 인생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인생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할 대담한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