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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os 지니 Jul 18. 2016

브렉시트, 눈 앞의 경제논리가 세대를 갈랐다

브렉시트 본질을 읽다



재테크에 둔한 나 같은 사람들조차도 작은 자금이나마 어떻게 굴리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고민하게 하는 초저금리 시대다. 재미삼아 투자했던 차이나 펀드의 맛을 조금 보았던 나는 이어서 금 펀드에 아주 적은 돈을 베팅(?)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국제 금 시세가 떨어지면서 환매를 했고 계좌 유지를 위해 약간 남겨둔 잔고조차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팔아 치워야하지 않을까 잠시 고민을 했었다. 환매와 유지 사이에서 고려된 것은 브렉시트가 통과되면 안전자산 선호로 인해 금시세가 폭등할 것이고, 반대로 부결되면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되므로 이 경우 다소 내릴 수는 있어도 폭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당연히 부결(잔류) 쪽으로 무게를 두면서도 워낙 작은 규모라 유지를 택했다. 그런데 브렉시트 결정이라는 빗나간 의외의 결과와 함께 세계경제가 출렁이게 되었고 나의 금 펀드 역시 출렁였다. 도박심리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01  브렉시트 결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세계경제의 큰 축을 지탱하고 있는 영국이라는 나라, 그들의 브렉시트(Brexit) 결정은 세계경제를 출렁이게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고 영국 내에서도 실로 무서울 정도의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게다가 브렉시트 결정을 둘러싼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 갈등을 비롯해 모든 잠재된 문제들이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양상이다.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향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많은 숙제를 안고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인간이 사는 세상은 항상 변화의 과정 속에 있고 세상사 자체가 변화를 예측하고 미래를 준비해가는 과정의 연속이긴 하지만, 때로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 하나로 역사의 큰 물줄기가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리고 안정된 평화의 시기에는 드러나지 않던 많은 문제들이 불안정한 시기에 비로소 표면화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교훈과 함께.


이번 브렉시트 결정 과정에서의 큰 이슈는 이민자 문제, 자국 경제논리라는 양대 축이었고 이런 표면적 문제는 투표결과를 통해 상호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 갈등양상으로 나타났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상황이 어려워지게 되면 이해당사자들 사이 대립구도가 형성되곤 한다. 이번 브렉시트 결정에서도 이런 대립구도는 비슷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그 표면적 현상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갈라진 민심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된 원인이어야 할 것이다. ① 그들은 무엇을 위해 브렉시트 결정을 선택한 것인지, ② 그들이 생각하는 갈등관계의 당사자들이 과연 진정한 당사자들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과 함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02  브렉시트 결정의 본질은 신자유주의를 향한 저항이었


우리에게 브렉시트 결정은 그저 우연히 맞이하게 된(당사자 영국민들에겐 절실한 상황이었겠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사건일 수밖에 없을 뿐) 하나의 사건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사건을 바라보는 개인들에겐 다소 흥분을 동반한 흥미의 대상이었거나 나처럼 금융자산의 운용 정보로 바라보게 하는 신자유주의 가치체계의 속성 앞에 인간 중심의 가치를 지켜낸다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과제인지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땀 흘리는 노동의 진정한 대가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되고 요령과 요행, 조작과 교란을 통한 기회 포착 등이 능력이 되는 사회, 이는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름 뒤의 본 모습이었다. 인간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자본과 물질을 기반으로 가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서 모든 가치의 기준이 인간이 아닌 물질을 향하고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자유무역과 국제적 분업을 통해 자유경쟁체제의 무한한 확대를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적 시장개방의 최정점은 바로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형성하는 것이었다. EU(European Union: 유럽연합)를 창립한 목적이 유럽 내 단일시장을 구축하고 단일통화를 실현하여 유럽의 경제·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었으나 이 역시 신자유주의를 실현하는 좋은 토양이 되었다.


이러한 신자유주라는 무한경쟁 체제 하에서 불거진 양극화, 고용불안 등의 복잡한 주제가 브렉시트 여부에 대한 투표행위라는 지극히 표면적인 대결구도의 주제로 환기되면서 폭풍같이 몰려온 갈등 상황에 ‘내가 무얼 한 거지?’라는 반응과 함께 당황해했던 영국민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투표행위에 스스로 분명한 설명조차 할 수 없는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세계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하에 모든 경제구조가 소수의 이해관계자들만 알 수 있는 복잡한 그물망으로 얽혀 있고 그러한 정보로부터 소외된 일반 개인들이 당면한 문제 앞에서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캐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일반인들이 쉽게 판단하고 정리할 수 없는 그런 정치, 경제 시스템을 주도해 온 세력들에게 커다란 놀이판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고민이 깊어진다. 그렇다면 이런 한계상황을 그저 사회흐름에 맡기고 시류에 떠밀려 판단하고 살아야 할까?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브렉시트를 통해 지구촌의 수많은 눈들은 문제해결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되면서 드러난 갈등관계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았고 간접 경험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사회도 중요한 의사결정시마다 종종 본질은 왜곡되고 갈등구도만 부각되는 답답한 경험이 있다.  브렉시트라는 객관적 사건은 우리사회에서도 종종 경험하는 세대 간 격차, 경제논리(누구의 이익을 위할 것인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와 같은 복잡한 문제들을 냉철한 타인의 시각(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 사건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신자유주의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고 있고 갈수록 가속도를 내고 있다.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는 그 속도를 만들어내는 누군가를 알아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정체성을 망각하게 할 정도의 속도감을 이기지 못할 때 드러나는 많은 문제들이 항상 대결구도의 형태를 빌어 폭발하여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의도된 그 대결구도는 항상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즉 노년층과 젊은층, 지역간, 계층간 등 문제의 근원과 동떨어진 대결구도는 터져 나오는 불평등 문제의 화살을 사회적 약자간의 피해의식으로 몰아갔고 이렇게 형성된 약자들간 경쟁 구도는 지독하게 왜곡된 구조를 점점 심화시키고 있다.


민감하고도 복잡한 브렉시트 결정에 저학력자, 저소득층, 노령층이라는 대체로 약자들이 가담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런 표면적인 결정만 가지고서는 그들이 왜 브렉시트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이유이다. 어리석은 브렉시트 결정 뒤에 숨은 그들의 실제 표심은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잔혹함에 대한 본능적 저항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거대한 폭력적 체제하에 드러난 복잡한 문제들의 원인을 그들은 너무나 단순한 차원에서 이해하고 말았다는데 있다. 대영제국을 꿈꾸는 노년층과 이미 EU라는 경제·사회 통합시스템 하에서 국경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간 격차가 무엇보다 뚜렷했던 것처럼 영국민은 자국의 문제 상황을 두고 세대간 전혀 다른 선택을 하였고 이는 새로운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03  심화되는 세대간 갈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는 종종 사회적 약자들의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선택 행위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대체로 사회 시스템을 읽어내는 정보의 한계 또는 접근성의 한계가 원인이 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국경이 느슨해지고 세계가 하나의 체제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버렸는데 반해 그들은 그 체제를 너무도 단순하게 바라보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들이 스스로 이해가 가능한 수준까지만 바라보고 판단하여 결정을 하게 되는 이유는 접근을 어렵게하는 복잡한 구조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괴리 앞에 개인들은 세대간 변화조차 서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심리적 저항을 경험하게 되고 이런 불편한 심리는 같은 본질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면서 그들의 선택은 종종 문제해결과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된다.


브렉시트 결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듯이 세대간 갈등은 어느 사회를 불문하고 경험하게 되는 현상이지만 왜 지금의 사회는 유독 그 정도가 심하게 나타나는 것일까.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세대간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주범인 사회의 변화속도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생리적으로 변화에 적응하는데 더딘 노령층과 변화에의 적응속도가 빠른 젊은층 간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분명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속도감에 대한 적응능력의 차이는 변화속도가 한층 빨라지는 사회에서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한 세대가 젊은 세대를 지나가면서 점점 주류(Main Stream)에서 멀어져갈 수밖에 없듯이 당면한 현실을 바로 보는 능력에서도 젊은 세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져 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젊은 세대는 그 사회의 문화, 사회, 경제 전반의 주 활동층이자 주 소비층으로서 당연히 사회 변화를 본질적으로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주역들이다. 그들보다 Main Stream에서 떨어져 있는 기성세대는 이 사회를 설계하고 구축한 주역들이지만 그 기반위의 변화들을 그들보다 더 잘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는 어떠한가.  부모가 살아온 삶의 경험을 토대로 자식이 새로운 경험을 입혀가는 것이 과거 전형적인 삶의 패턴이었다면, 급변하는 오늘날 환경에서는 더 이상 그런 패턴을 허용하지 않는다. 부모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자식들이 새로이 경험하게 되는 영역이 너무 많아졌으며, 부모가 자식의 새로운 경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 또한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평생이 걸린 문제를 고령자들이 대신 결정했다.’라든가 ‘우리의 장래를 결정할 권리를 빼앗겼다’라는 영국 젊은 층의 반응은 적어도 이런 변화된 삶의 패턴을 이해받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하는 듯하다.


오늘의 기성세대는 세대를 이어 많은 것을 완성해낸 세대지만, 오늘날과 같은 복잡하고 급변하는 시스템 하에서 무수히 많은 정보들을 접하고 취사선택하는 능력에서는 당연히 젊은 세대를 따라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 사회가 중요한 의사결정이 필요한 시기마다 젊은 세대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향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때론 그들에게서 배우고 기성세대가 가진 기반지식을 통합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번 브렉시트의 세대간 경향은 이러한 순리를 거스른 교훈적인 사례일 것이다.  투표 결과에 대해 상황이 다시 갈등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선택이 성숙한 결정(많은 본질적인 부분이 고려된 결정이 아니라 다분히 기분학적인 또는 개인중심적인 결정)이 결코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즉 그들에게 다가온 이 순간 무거운 삶의 무게가 투표행위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압도해 버렸으며 과거 누렸던 영화에 대한 향수를 따라가다 보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나라에 들어와 있는 이민자들이 원인인 것 같아 가상의 적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까.  



04  신자유주의라는 무한 경쟁구도의 수혜자는? 


생각해보자.  이민자들이 들어와서 자신들이 받던 임금보다 적은 수준의 임금으로 노동력을 제공해준다면 이러한 이익을 과연 누가 가져가고 누가 원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어야 했다. 


자국민들이 이민자에 자리를 내어준 것은 이민자들이 받는 급여 수준의 일자리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그러한 급여수준이 부당하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그러한 급여수준에 만족하는 이민자를 택한 것은 자본가들인데 과연 문제의 핵심이 그들 이민자들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까. 과연 이민자들이 떠나면 자본가들은 예전에 자국민에게 지급하던 수준의 급여를 지급할 의사가 있고 자국민들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려고 할까. 


국가간 재화의 효율적 이동을 위해 형성된 국경을 넘나드는 경제 블럭, FTA 등은 오늘날 금융 자본가를 포함한 자본가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손쉽게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자본가들에게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세계화를 지속적으로 구축해 낸 것은 권력을 등에 업은 자본가들이다. 굳이 자국에 있는 이민자가 아니더라도 그들 자본가들은 생산시설을 값싼 후진국으로 옮겨가면서 자국민의 일자리를 축소시켜 왔다.  그들이 이민자들을 축출하고 자국민에게 이민자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면 그들이 과연 자국에 남아 영원히 자국민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이미 그들의 놀이터는 국가단위가 아닌 지구촌이며 지구촌을 촘촘한 그물망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 시스템으로 그들은 그 무엇(그들에게 이익이 되는)도 할 수 있는 구조를 구축해 왔다. 문제의 출발이 그 곳에 있었는데 내가 지금 사는 것이 힘들다고 나보다 처지가 못한 이민자를 쥐어짠들 무엇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05  민주주의, 그 진정한 의미는 실현이 가능한 것일까


재투표 움직임과 함께 서명 동참자가 400만이 넘었다고 하는가 하면(물론 재투표 청원은 공식적으로 거부되었다고 함) 일각에서는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리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은듯하다. 민주주의라는 가치는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최우선의 가치이며 원칙이어야 하지만 그 실현의 방법에 있어서는 고민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민주주의가 태동한 이후 지금의 시대상황은 너무나 복잡해져 있다. 이는 복잡한 시스템으로 피곤해하는 대중들을 대상으로 누군가 이러한 환경을 악용하려 든다면 다수가 원하지 않는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되어갈 가능성이 한층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우리 무슨 일을 한 거지(What have we done)'라며 탈퇴에 표를 던진 것을 후회했다는 영국민들, 자신들도 모르게 삶이 힘들어졌지만 그 원인도 정확히 모르겠고 이러한 현상들은 사회 도처에 산재해 있으며 그 원인모를 피곤함에 절어 엉뚱한 선택을 하게 된 그들, 복잡하고도 미묘하지만 너무도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간단명료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처리하려는 경향은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나타나곤 한다. 즉 100이라는 구조를 10의 수준으로 진단하려 하고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소수 시스템 운영자들은 더 많은 기회의 확장으로 미소 짓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재투표가 필요하다면?  민주주의란 대원칙을 훼손해서도 아니 되겠지만, 민주주의를 실현해가는 주체인 인간이 합리적 의사 결정 자체가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시대상황에 맞게 발전해가는 과정도 필요하리라 본다.


과거에 비해 사회가 지독하게 복잡해졌고 문제 상황을 진단하는데 있어 고려할 변수도 너무나 많아졌다. 더욱 문제인 것은 도래할 AI(Artificial Intelligence)의 시대에는 이러한 복잡함의 문제를 넘어 일반 개인들이 문제에 대한 접근성 자체가 어려워지는 날(우리의 일상생활이 AI 등으로 대체되는 날 고도의 프로그램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면)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환경이 민주주의 방식에 참여하기 위한 개인의 접근성을 제한하고 있다면 이를 개선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 실현도 가능할 것이다. 


복잡한 사회일수록 제한된 정보로만 상황을 판단하려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다. 중대한 상황을 맞이할 때 해당 전문가 의견이 중요하듯이 세대 간의 문제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기성세대를 뒤이은 젊은 세대이지만 각자 가진 능력과 영역이 있기 때문에 이를 조화롭게 통합하는 분위기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브렉시트 결정에 있어 영국의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외침에 좀 더 귀를 기울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다.


2016. 7. 17


- 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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