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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대안학교 법제화 반대를 위한 놀이판!

배움의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가두려고 하지 말아 주세요!

녀석은 내게 "내가 비록 작고 약해 보일지라도! 나는 살아있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빛과 따뜻한 공기를 공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거야!"라고 말하는것 같았다.


사진이 좋아지면서 찍는  만큼이나 보는 것에도 관심이 생겼던 나는, 작가들의 사진을 보다가 보도사진에 시선이 갔었고 그들의 이야기들을 찾으면서 누구였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내게 있어 사진은 언젠가? 어디에선가? 찍는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바로 이곳에서 찍는것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난 이런저런 핑계를 들면서 카메라를 멀리 했고, 더이상은 다가가려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다시 그  카메라를 들고 뷰파인더를 통해서 이 세상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버린 나는 길 위에서 뛰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셔터를 누르면서 행복했다.


- 교육부 대안학교 법제화 반대를 위한 놀이판!

배움의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가두려하지 말아 주세요!-


이 법안은 18대 국회의 새누리당 김재경의원의 대정부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요즘 좌파성향의 비인가 대안학교들이 많은데 그대로 두고 볼것인가?" 이렇게 평소 정치성향을 말하는 것을 자제하던 나는! 그들에 의해서 이렇게 좌파가 되었다.


스물 중반에 좌와우가 궁금해진 나는 이것저것을 찾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유래로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오해일수도 있지만? 나름의 정리를 했었다. 정치! 그래, 정치인이라면 좌와 우를 막론하고 모두가 국민들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성향이 달랐고, 목표에 닿는 방법이 달랐다. 내가 생각하는 우의 방법은 목표에 닿기 위해 효율과 능력을 중시하며 가능한 자가 먼저 닿은 후뒤에 남은 자들을 이끄는 것처럼 보였고, 좌의 방법은 평등을 중시하면서 더뎌도 우리 같이 가보자는 논리로 보였다. 이렇게 이해했기에 스물에 나는, 둘다 좋은 방법이지만? 능력있는 사람이 먼저 이끌어 파이를 키우고 후에 나누는 것이 모두에게 좋을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커가면서 가진자들의 부조리에 치가 떨렸고, 그들의 기만이 싫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성장과 큰 파이를 위해 만족이란 단어가 도태의 언어가 되버리고,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보면서 가진자들의 의무가 마치 선행을하는 시혜하고 있는 모습들로 비춰지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언론이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왜 밖으로 나와 외칠수 밖에는 없었는지를 말하기 보다 그로인한 불편을 말하면서 왜?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이렇게 대안교육이 좌파성향이라고 밖에는 표현을 하지 못하는 정치판을 보면서!  대한민국은 성장과 공리주의를 명분으로 소외되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보고, 같이 아파하고 힘을 모아보 하는 자들을 모두 빨갱이로 말해야 하는 이유와! 배워야하는 이유를 몰라 괴로워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는 그 학교보 방학 중인데도 이렇게 으면서 학교를 찾는 아이들이있는 학교를 위험하다 말하는 저의가 궁금해 우리는 교육부 앞에 모였다.


국정원사태에 대해서 고등학생들이 모여 성명서를 내어서 인가? FTA를 반대하고 세월호를 이야기 해서 인가? 궁금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말해주고 설명해주어야 하는것이 바로 어른일 텐데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좌파와 종북을 말하면서 아이들에게 색깔만을 씌우고 있다. 이렇게 정치중립을 말하면서 "교육부검증이 되지 않으면, 폐쇄가 가능하다!"말하는 조항이 적힌 등록을 하지 않으면 당장 폐쇄하겠다! 말하는데도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만 말한다.


당신들은 분명 대안학교좋은 을 보고 혁신학교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좋은 건물이 아닌! 아이들과 같이  이야기하고 토론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는 과정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교육부의 태도는 상명하복을 말하는 명령의 언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의 극치불통의 단면들만을 보일 뿐이다.


지금 이곳에는 뙤약  앞에서도 피켓을 들고 앉아 웃을수 있는 이들과, 반대편에 서서 그저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지금 말해야 하는건 그들이 아닌 바로 당신!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에어 바람을 쐬며, 대한 학교를 와보지도 않고 머리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당신이다! 그리니 우리 나와서 이야기를 해보자!

p.s 이렇게 시작된 법제화의 이야기는 수업료를 예로 면서 철도파업에 써먹었던 귀족이라는 걸게를 씌웠고, 공교육에서는 쉽게 말하지 않는 "생명, 생태 그리고 평화와 공동체, 자유"를 말한다는 이유로 종북이라는 십자가를 씌웠다.


그런데? 이봐! 우리가 말하고 싶은것은 단지,


 "내가 배우고 싶은 것과 배우고 싶은 곳을 선택할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곡해말고 우리 나와서 이야기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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