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SF와 미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SE Aug 03. 2020

우린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다

던칸 존스: 더 문(Moon)

더 문(Moon), 던칸 존스 감독, 샘 록웰, 케빈 스페이시 주연, 2009



∙ 복제인간 연작 1 : 영원을 꿈꾸는 복제 (6번째 날)

∙ 복제인간 연작 3 : 함께 한 기억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하다 (오블리비언)



   SF나 스릴러 장르에서 성공한 저예산 영화의 표본이라면 <큐브(Cube), 빈센조 나탈리 감독, 1997>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큐브 못지않게 저예산으로 꽤나 성공한 SF물이 있으니 바로 오늘 소개할 <더 문>이다. 비록 SF 물이지만 화려한 CG에 의존하지 않으며 출연 배우도 극히 제한적이다. 제목 그대로 영화는 달의 자원을 채취하는 달 기지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영화 공간의 대부분이 기지 내부로 국한되며 세트 자체도 그리 화려하지 않고 상당히 투박하다. 또한 출연하는 배우도 극히 제한적이어서 1인 2역을 담당하는 배우 한 명과 AI의 목소리만 담당하는 배우, 이렇게 둘 만이 영화 전체를 이끌어간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동안에도 한눈에 이 영화가 저예산 영화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적당한 흥행과 더불어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이유는 바로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 때문이다. 메시지의 배경은 역시 복제인간의 문제인데, 영화 <6번째 날>과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앞서 세 편의 복제인간 시리즈를 다룰 것이라 예고하면서 첫 번째로 소개했던 영화가 "영원을 꿈꾸는 복제"라는 제목의 브런치 글의 대상이 된 <6번째 날>이었다. 복제인간 시리즈 두 번째로 소개하는 <더 문>에서도 우선은, <6번째 날>날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아니라 인간성의 규정에 있어서 '이타성'의 문제를 여전히 건져 올릴 수 있다.





   청정에너지 개발은 지금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은 현재의 화학, 원자력 등을 대체할 청정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 역시 선거 공약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이 분야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물론 이런 기류에 역행하여 "파리 기후 협정"에서 탈퇴하는 양아치 짓을 하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환경 및 기후 오염은 전 지구적 문제이기에 기존의 오염 유발 에너지를 대체할 청정에너지 개발이라는 과제는 현시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이후의 자손들에게 물려주야 할 청정 지구에 대한 정언 명령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런 청정에너지를 아이디어로 한다. "한때는 에너지 자체가 오염으로 인식되던 때가 있었다"라는 광고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래서 밤에 불도 맘껏 켜지 못하여 도시는 침침하고 식량난에 허덕이면서도 여전히 매연 속에서 살던 때를 언급하며 "루나(Lunar)"라는 에너지 회사가 개척한 청정에너지를 홍보한다. 전 지구적 대기 오염에 직면하여 인류는 달에서 해답을 찾았다. 태양풍에 의해 달 표면에 쌓인 청정에너지 헬륨 3를 채취하여 지구로 반입한 후 그것을 대체 자원으로 사용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그리고 달 표면의 헬륨 3를 채굴하고 지구로 운반하는 사업을 루나(Lunar) 사가 독점했고 지금은 지구 수요 에너지의 70%를 헬륨 3로 커버하고 있다. 에너지가 곧 오염을 의미했던 악몽 같았던 그 시대는 이제는 과거가 되어버린 미래가 이 영화의 배경이 된다.


   루나 주식회사는 채굴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했으며 채굴 시스템 관리를 위하여 3년 단위로 단 한 명의 직원만 달로 파견한다. '사랑'(영문 이름 그대로 사랑이며 달 기지 내에 영문과 한글로 나란히 'SARANG - 사랑'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이란 이름이 붙여진 달 기지에 홀로 파견된 샘 벨(샘 록웰 분)은 이제 복귀를 2주 정도 앞두고 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지 안에서 홀로 살아야 한다면 그 외로움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그래도 달 기지 전체를 관장하고 통제하는 A.I. 시스템 거티(케빈 스페이시 목소리)가 있어 말동무가 되기에 위안은 된다. 파견된 직원의 일과는 지루한 루틴 그 자체다. 기상과 더불어 운동을 하고 달 표면의 헬륨 3를 채취하는 거대한 차량인 하비스터를 점검하고 시간이 나면 취미 활동도 한다. 샘의 여가 활동은 식물 기르기와 미니어처 제작이다. 하비스터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일정량의 헬륨 3 채굴이 완료되면 샘이 직접 우주복을 입고 월면차를 몰아 해당 하비스터로 이동한다. 채굴이 완료된 헬륨 3가 담긴 연료봉을 기지로 가져와 연료 수송선에 실으면 자동으로 수송선은 지구로 향하게 된다. 물론 지구에 있는 아내 테스와 이제 두 살 난 어린 딸 이브와의 화상 통화도 가능하지만 기억할 수도 없는 언제부터인가 달 기지의 통신 장치가 고장 나 실시간 통화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화상 메시지만 목성을 거쳐 가족과 서로 주고받을 뿐이다. 화상 메시지 속의 아내와 딸을 보는 샘의 애절함은 보는 이도 안타깝게 만든다. 게다가 이유도 없이 그의 몸은 점차로 쇠약해져만 간다. 두통도 심해지고 속도 계속 좋지 않은 데다 헛것마저 보이기 시작한다. 하루는 뜨거운 커피를 내리다 어떤 여자의 환영을 보는 바람에 손을 데기도 했다. 그날도 예나 마찬가지로 샘은 자신의 루틴대로 정해진 업무를 보면서 달 기지 주변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러다 모니터에 수염이 덥수룩한 자신의 모습이 잠깐 지나간다, 전날 면도를 했고 해당 모니터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내보내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역시나 헛것을 봤겠거니 생각하던 차에 하비스터 한 대에 문제가 발생해서 현장으로 직접 출동해야만 했다. 월면차를 몰고 하비스터에 가까이 접근했을 때, 샘은 쏟아져 내리는 채굴 가루 속에서 전날 봤던 여인의 환영을 또 보게 된다. 홀린 듯 그 여인을 쳐다보다 월면차가 전복되면서 그만 채굴 중인 흙더미 속에 묻히게 된다.


   눈을 떴을 때 샘은 달 기지 내의 의무실에 누워 있었다. 거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다. 사고가 났다고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며칠 병상에 누워 지내며 상태를 지켜보자는 거티의 말이 희미해지며 샘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다 어떤 대화 소리에 깨어난 샘, 몸을 움직이고자 했지만 너무 굳어 있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마치 몇 년간 식물인간이 되었다 깨어난 듯하다. 억지로 몸을 움직여 기다시피 통제실로 갔을 때 거티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 통신 상대는 지구의 본사인 듯하다, 하지만 통신 위성 고장으로 실시간 통신은 불가능함에도 말이다. 샘이 나타나자 거티는 재빨리 통신을 끊는다. 사고 경위와 샘의 상황을 보고할 겸 해서 메시지를 녹음 중이라고 한다. 분명 실시간 통신이었다. 게다가 거티는 여러 가지 검사를 핑계로 샘의 업무 복귀를 지연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회복한 샘이 업무에 복귀했지만 사고로 정지된 하비스터를 거티는 손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낀 샘... 다음 날 본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구조팀을 보내서 하비스터를 직접 손 볼 예정이기에 샘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회사의 명령이라며 거티도 단호하다. 아무래도 문제가 된 하비스터에 샘이 접근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듯하다. 샘은 미니어처용 조각칼을 들고 거티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서 설비 가스관을 잘랐고 그것을 핑계로 기어이 외부 조사를 위한 거티의 허가를 받아냈다. 월면차를 몰고 고장 난 하비스터로 갔을 때 샘은 전복된 또 다른 월면차를 발견했다. 자신이 사고를 당했던 그 월면차다. 하지만 차의 문을 열었을 때 내부에 우주복을 입은 누군가가 쓰러져 있다. 쓰러진 이의 헬맷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닦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샘은 자신을 보았던 것이다! 의문의 그데리고 급하게 기지로 돌아왔거티를 격하게 다그쳤다, 누구냐고... 거티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한다, 벨이야, 병실로 옮겨야 해.


   상처투성이의 또 다른 샘이 의무실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두 명의 샘을 구분하는 것은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은 손의 상처뿐이다. 이제부터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사고를 당했던 먼저의 샘을 샘A로, 새로 깨어난 두 번째 샘을 샘B로 부르기로 하자. 샘A가 의무실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거티가 한 말은 샘B가 깨어났을 때의 말과 거의 비슷하다. 사고가 났지만 예후는 좋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 외의 누군가가 또 있는 듯하다. 겨우 고개를 들었을 때 샘A는 누군가를 보았지만 곧 기절하고 말았다. 다시 깨어난 샘A가 의무실을 나왔을 때, 혼자만 있어야 할 달 기지 내에 자신을 닮은 누군가가 줄넘기를 하고 있다. 날 닮은 저 자식은 누구야? 이 물음에 거티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샘 벨... 혼란스럽다. 이어지는 거티의 말은 더 혼란스럽다, 샘A의 생환 사실을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샘A의 안전을 위해서란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후 샘A는 샘B와, 아니 자신과 대면했다. 자신의 출현에도 아랑곳없이 운동에만 열중하는 샘B... 샘A가 말한다, 너 샘 벨이라며? 나도 샘 벨인데... 이런저런 자잘한 질문들에 신경도 쓰지 않던 샘B는 귀찮다는 듯 대답한다, 맛탱이 간 클론의 말을 들어줘야 하나? 발끈한 샘A, 난 클론이 아니야, 클론 아니라고, 네가 클론이지! 한심하다는 듯한 샘B의 말, 그래, 샘, 너 클론 아냐... 


   본사로부터 다시 메시지가 왔다. 목성 프로젝트가 중단되어 인력이 남아도는 관계로 일정보다 빨리 구조팀을 보내 주겠다는 것이다. 14시간 뒤에 도착 예정이란다. 구조팀 이야기는 처음 듣는 샘A에게 B가 설명했다, 자신 대신 하비스터를 수리 예정이란다. 그럼 난 이제 지구로 가면 되겠네... 샘A의 말에 피씩 웃고 마는 샘B, 그 말을 믿어? 샘B는 이미 눈치를 챘지만 샘A는 그저 순진하다. 계약이 끝났잖아, 가야지. 시니컬한 샘B의 말, 클론 주제에 무슨... 지구로 돌아가면 마누라가 반겨 준대? 진짜 샘은 어떡하고? 이에 샘A가 발끈했다, 내가 진짜 샘이야! 샘B는 저간의 상황을 통해 이미 깨달았다, 자신이나 또 다른 샘 모두 클론이며 지구에 있을 자신들의 원본이 진짜 샘이란 사실을... 하지만 샘A는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아니, 아예 그럴 가능성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다. 샘A는 순진하게 물어본다, 거티, 나 클론이야? 거티는 엉뚱한 대답으로 화제를 돌리고자 한다. 씩씩거리며 미니어처 제작대 앞에 돌아 앉아 끌칼을 드는 샘A에게 샘B는 차분하게 말한다, 열 내지 마, 우린 같은 배를 탔어... 클론이 우리 둘 뿐이겠어? 여전히 이해를 못하는 샘A에게 짜증이 나는 샘B... 이 미니어처도 원래 있었다면서, 누가 시작한 거지? 너 사고 나자마자 내가 왔지? 회사에서 보낸 게 아냐, 난 원래부터 여기 있었어... 샘A에겐 샘B의 이 소리가 그저 미친 소리로 들릴 뿐이다, 회사가 뭐 할 일이 없어서? 기가 찬다는 듯 샘B가 답했다, 그게 회사잖아, 투자자도 있고 주주도 있고, 뭐하러 돈 쓰며 새 사람을 훈련시켜? 여기 일할 클론들이 이렇게 남아도는데...


   샘B는 기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밀실을 찾았다. 밀실, 바로 레디-메이드 된 수많은 자신들이 잠자고 있을 밀실을...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미니어처 제작대 아래쪽을 의심했다. 이 말은 샘A가 오랫동안 그렇게 공을 들였던 미니어처가 무너진다는 소린데... 당연히 샘A는 미친 듯이 샘B를 저지했고 곧바로 격렬한 몸싸움으로 번졌다. 하지만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샘A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샘B는 기어이 샘A를 밀쳐 내고 미니어처를 뒤집었지만 밀실의 입구는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완전히 뚜껑이 열려버린 샘A가 씩씩거리며 달려들었지만 샘B는 샘A의 목을 졸라 어렵지 않게 항복을 받아냈다. 하지만 샘A의 상태가 심각하다. 단지 목만 졸랐을 뿐인데 샘A는 심하게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스스로도 놀란 샘B를 뒤로 하고 홀로 조종실로 온 샘A. 하지만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고 미친놈이라며 심지어 겁이 날 정도라고 샘B를 비난하는 샘A를 거티가 조용히 위로한다. 다소 진정이 된 샘A는 아내 테스 이야기를 했다. 그녀한테 엄청난 메시지를 보냈는데 받긴 했을까? 거티가 답한다, 기지 일밖에 몰라. 그녀가 내게 보낸 메시지는? 여전히 거티의 답은 똑같다. 다시 샘A가 진지하게 물었다, 거티, 정말 클론이야? 이번에는 거티가 사실대로 답을 한다, 처음 왔을 충돌 사고가 생겨서 병원에서 깼지? 뇌손상과 기억 상실증이 생겼고 내가 검사를 했지, 하지만, 충돌 사고는 없었어... 네가 깨어난 모든 클론이 겪는 과정이야, 심신 건강을 위한 테스트 과정이지... 거티의 말을 끊고 샘A가 물었다, 테스랑 이브는? 이 질문에 벨의 기억을 이식하고 편집했다고 답하는 거티의 이모티콘은 슬픈 표정으로 바뀌어 있다. 샘A는 이제야 제대로 깨달았다. 자신이 클론이란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할 수는 없다. 거티는 팔을 뻗어 이런 샘A를 위로하고자 했다.


   이제 구조팀 도착 11시간 전이다. 샘B가 미니어처 건이랑 그를 다치게 한 일을 사과했다. 하지만 샘A에게 이제 그런 사건들은 별 의미가 없다, 그냥 체념 상태일 뿐이다. 샘B는 통신 이야기를 했다. 통신 위성 장애라고 하지만 깨어났을 때 거티가 본사와 실시간으로 통신을 했다는 사실을 샘B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위성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샘A는 이번에도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한다, 위성이 멀쩡하다면 왜 기지 내부에서 통화를 차단해? 샘B가 답했다, 바깥에서겠지... 그게 어딘데? 이제 둘은 월면차를 각각 나눠 타고 바깥을 조사하기로 한다. 한참을 나갔을 때 뭔가 발견할 수 있었다. 높게 세워진 안테나 같은 것을 샘A도, 샘B도 발견했다, 바로 전파 차단기였다. 이때 샘A는 괴로워하며 헬멧 안쪽으로 피를 토하고 만다. 샘B는 주변을 더 돌아보기로 하고 샘A는 바로 복귀했다. 좌변기 안쪽으로 피를 토해냈고 토사물 속에는 빠져버린 자신의 이빨도 확인할 수 있었다.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지고 있었다. 순간 궁금했다. 자신 이전의 샘들의 마지막을... 앞서 모니터에서 잠깐 스쳐 지나갔던, 또 다른 자신이 생각났다. 조종실 모니터로 가서 데이터 베이스에서 샘 벨의 기록을 뒤지고자 했지만 패스워드가 걸려 있다. 좌절하고 있을 때 거티의 팔이 샘의 뒤에서 뻗쳐와서 대신 패스워드를 입력해 주었다. 녹화된 영상을 통해서 앞서간 샘들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지금의 자신처럼 머리가 빠지고 몸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으며 이 상태에서 지구 귀환용 포드에 몸을 뉘었다. 귀환을 축하하는 의사의 음성이 흘러나왔지만 그 포드는 엄청난 화력으로 앞선 샘 벨들을 태워 버렸다. 로봇 팔 하나가 포드 측면의 구멍과 연결되더니 이미 재가 되어 버린 샘 벨들을 빨아들이며 마지막 흔적마저 지워버린다.


   샘A는 귀환용 포드가 있는 방으로 갔다. 주변을 샅샅이 살폈을 때 바닥에 있는 문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문은 아래쪽으로 향해 있다, 그렇게 찾던 바로 그 밀실이다. 마침 샘B가 기지로 귀환했고 둘은 아래로 내려갔다. 샘B의 예상대로 그 방에선 레디-메이드 된 수많은 샘 벨들이 잠들어 있었다. 샘A는 담담하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구식 통신 장비를 가방에 챙긴다. 가방을 메고 나가면서 거티에게 물어보았다, 아까 왜 날 도왔지? 비밀번호 말이야, 그거 불법 아냐? 거티가 대답했다, 널 돕는 게 내 일이야. 샘A는 월면차를 몰아 전파 차단기 경계를 넘어 나갔다, 마침내 통신이 연결되었다. 구식 통신 장비를 켜고 전화를 걸었다, 바로 지구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전화를 받았다, 화면에는 10대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보인다. 벨씨 댁이죠? 맞는데요... 테스 벨 있어요? 몇 년 전 돌아가셨어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샘A... 확실해요? 네, 딸이거든요... 이브? 네... 이브, 이브니? 몇 살이니? 열다섯이요, 누구세요... 엄마는 어떻게 돌아가셨니? 두 살배기 아기였어야 하지만 이미 열다섯의 청소년이 되어 있는 딸 이브... 이브가 누군가 엄마를 찾는다며 뒤에서 나타난 아빠를 불렀을 때 샘A는 황급히 전화를 끊고야 말았다. 에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혼잣말을 내뱉는다, 이제 그만, 됐어... 저 멀리 푸르른 지구가 선명하게 보이는 달 표면 위에 멈춰 선 월면차 안에서 샘A는 홀로 눈물만 흘릴 뿐이다.


   샘A의 몸 상태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샘B는 침대에 그를 뉘어 잠을 재웠다. 그리고 샘A가 들고나갔던 구식 통신 장치의 로그를 통해 그의 통화 내역을 확인했다. 샘의 방 벽에 붙어 있는 수많은 가족사진들... 클론 주제에... 하지만 깨어나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과 다르게 샘A는 진정 가족을 사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앞으로 자신도 겪어야 될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결심했다, 샘A를 가족에게 돌려보내기로... 거티에게 자신의 클론 하나를 깨우라고 지시했다. 처음에 거티는 거부했지만 새 클론을 깨우지 않으면 자신과 샘A가 죽을 거라는 말에, 그리고 자신들이 죽기를 바라냐는 질문에 결국 새 클론을 깨웠다. 샘B샘A를 깨워 자신이 세운 작전을 말했다. 구조팀이 오면 샘A의 시체부터 찾을 것이기에 새로 깨어난 클론을 죽여 바깥에 전복된 월면차에 둔다, 그리고 샘A는 헬륨 3 운송선에 몰래 탑승한다, 구조팀은 새로운 클론을 사망한 샘A로 생각할 것이고 샘B는 자연스레 3년이란 자신의 임기를 시작할 것이다. 이 시점이면 물론 샘A는 운송선을 타고 이미 지구로 출발한 뒤일 것이다. 여기 있음 뭐해? 3년 끝났잖아, 이브도 직접 만나, 화면으로 봤는데 예쁘더라... 이제 구조팀이 도착하기 세 시간 전, 새 클론이 깨어날 시간이고 작전대로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샘A의 상태는 너무 안 좋다. 이번에는 변기통을 부여잡고 있던 샘A가 결심한 말한다, 난 안가, 네가 가... 뭔 소리야? 우린 사람 못 죽여, 넌 좋은 놈이야, 계획은 정말 좋은 데 지구로 갈 대상을 잘못 골랐어. 잠깐 고민하던 샘B, 후회하지 않겠어? 돌아오는 샘A의 썰렁한 농담, 가서 여행이나 실컷 해, 버킷 리스트였어, 어제부터... 둘 다 피씩 웃을 뿐이다.


   이제 둘은 월면차를 타고 밖으로 나와서 전복된 월면차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둘은 그들의 공통된 기억, 테스를 서로 회상했다. 그 사이 샘A의 의식은 점점 흐려져만 간다. 샘B샘A를 안아 전복된 월면차 안에 뉘었다. 그리고 홀로 기지로 돌아와서 남아있던 나머지 계획을 진행했다. 문제는 거티였다, 녀석의 메모리에 지금까지의 두 클론의 모든 기록이 남아 있다. 거티가 말한다, 내 메모리를 지워줘, 너 떠나면 재부팅할게... 괜찮겠어? 널 지키는 게 내 일이야, 거티의 이모티콘은 함박미소를 짓고 있다. 새 클론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구조팀도 거의 도착하기 직전이다. 이제 리부팅하기 직전 거티와의 마지막 인사다. 지구 가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아... 샘B가 한번 더 물어본다. 괜찮겠어? 물론, 재부팅되면 난 새로운 샘과 다시 프로그래밍돼. 샘B가 의미심장한 마지막 말을 남긴다, 우린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야, 알지? 미소 짓는 이모티콘의 거티가 뒤로 돌아선다. 샘B는 거티의 스위치를 내렸고 거티의 전원은 차단되었다. 헬륨 3 운송선에 탑승하기 직전 샘B는 하비스터의 경로를 바꿨다. 구조대가 도착했고 운송선은 지구로 출발했다. 전복된 월면차 안에서 지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운송선을 확인하고서야 샘A는 눈을 감았다. 구조대는 전복된 월면차의 뚜껑을 열었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샘A를 발견한다. 하비스터 한대가 경로를 이탈하여 전파 차단기로 돌진하고 있다. 기지 내의 화면에는 마침내 "통신 가능"이라는 메시지가 뜬다. 푸르른 지구의 대기권으로 빠른 속도로 진입하는 운송선이 보인다. "루나 산업의 주식이 32% 급락하고...", "샘 벨의 클론이 증인 자격으로..." 수많은 뉴스 앵커들의 목소리와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위의 화면은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를 캡처한 것이다. 열 명의 출연자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야 할 엔딩 크레디트는 올라가지 않고 이 상태 그대로 멈춰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위의 리스트에 나온 겨우 열 명의 배우들이 출연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 가관이다. 대사로는 적지 않은 지분을 가졌던 거티 역의 케빈 스페이시는 단지 목소리로만 출연했다. 테스나 이브(어린 이브 포함)의 경우 또는 회사 중역 톰슨이나 오버마이어의 경우 단지 화상 통화 상에 비치는 짧은 장면들 뿐이다. 테크니션 역의 말콤 스튜어트 역시 샘들을 불태운 포드 안내원의 녹화된 장면으로만 짧게 출연한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레디-메이드 샘으로 로빈 찰크라는 배우가 잠깐 나온다. 결론적으로 실제 출연진은 샘 록웰 단 한 명이다. 이 샘 록웰은 <아이언맨 2>에서 밉상으로 나왔던 빌런, 토니 스타크의 경쟁 무기 회사 대표 저스틴 해머 그가 맞다. 샘 록웰이 1인 2역을 하며 목소리로만 출연하는 케빈 스페이시와 호흡을 맞춰 이 장편 영화를 완성했다. 게다가 촬영 장소 역시 대부분이 기지 내로 고정되어 있다. 이쯤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으리라, 상당히 저예산 영화라는 것을... 실제로 이 영화를 제작하는데 500만 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할리우드 기준으로 한다면 껌값 수준이겠지만 영화는 북미에서만 330만 달러, 월드와이드 합계 970만 달러로 꽤 짭짤한 수입을 거두어들였다. 이 영화의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했던, 영국 글램 록의 대부이자 세계적인 뮤지션인 "데이비드 보위"의 아들이기도 한 던칸 존스는 이 영화로 인정을 받아, 다음 작품인 <소스 코드(Source Code, 제이크 질렌할, 미셸 모나한 주연, 2011)>를 감독해서 성공을 거두었고 그 성공은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Warcraft: The Beginning, 트래비스 핌멜, 벤 포스터 주연, 2016)>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2017년 감독했던 <뮤트(Mute, 알렉산더 스카스가드, 폴 러드, 저스틴 서룩스 주연, 2017)>로 쓴 맛을 봤고 그 후로는 작품이 없다. 영화에서의 달 기지 "사랑"은 루나 주식회사가 한국 회사와의 합작 회사라는 설정이며 영화 중간에도 "안녕히 계세요"라는 어눌한 한국말도 나온다. 영화가 굳이 이렇게 대한민국과 연계된 이유는 그가 이 영화를 찍을 당시의 여자 친구가 한국계였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자신이 나온 영국의 런던 필름 스쿨 동기가 한국인 '이사랑'이었다는 설도 있다.


   영화의 원제목은 그냥 <Moon>이지만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더 문(The Moon)>으로 바뀌었다. 한국말로 외자의 영화가 주목을 끌기에는 약했다고 봤는지 수입사는 그렇게 제목을 변경했다. 영화의 홍보는 더 이상하게 흘러갔는데, 마치 이 영화가 스릴러인 양 카피를 만들었고 실제로 다음이나 네이버 영화 분류에는 스릴러로 나온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스릴러는 아니다. 굳이 스릴러적 요소를 찾자면 초반에 잠깐 나올 뿐이고 샘이 복제인간임이 드러나는 반전의 요소도 영화 중반부에 이미 나와 버린다. 사실 <더 문>은 반전이나 스릴러물이라기보다는 전반적으로 휴머니즘을 내세우고 있다. 몸이 약해져만 가던 샘은 기지 내의 의자에 앉아 있는 어떤 여인을 보게 된다. 물론 환영이지만 이는 샘이 살아있는 동안 또 다른 샘을 깨우게 되는 개연성 확보를 위한 장치일 뿐이다. 결국 샘은 하비스터에 접근하던 중 빗물처럼 떨어지는 흙 속에서 이 여인의 환영을 또 보게 되고 그러다 사고를 당하게 된다, 후에 감독은 여인이 벨의 딸이라고 언급했지만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에서 영감을 얻었을 거라고 필자는 추측한다. 그 이후로는 스릴러적 요소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물론 새로 깨어난 샘 벨이 사고를 당한 샘 벨을 발견한 이후로는 반전의 요소도 전혀 없다. 대신 이때부터 영화는 줄곧 휴머니즘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스릴러적 요소가 언급되는 이유는 어찌 보면 SF 영화의 기술적 신기원을 제시했던 영화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여러모로 대조가 되는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조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AI 프로그램 '거티'의 존재다.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목성으로 향하는 디스커버리호는 보우만과 풀이라는 명의 승무원만 업무를 보고 나머지 승무원들은 모두 냉동 수면 상태로 잠들어 있다. 그리고 지적인 존재가 하나 더 있는데, 이 두 명만으로는 관리가 불가능할 규모를 자랑하는 디스커버리호를 전체적으로 관리하고 책임지는 존재가 AI 프로그램 '할(HAL 9000)'이다. 기지에서 명의 샘과 디스커버리호의 명의 승무원, 그리고 기지를 책임지는 AI 거티와 디스커버리호를 관장하는 AI 할... 이렇게 구성에 있어서의 유사성이 존재하기에 일부에서는 거티를 할에 대한 오마주일 거란 추측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마쥬라고 하기엔 생김새나 성격이 너무나 대조적이다. 할은 우주선의 일부이기에 그 무시무시한 붉은 눈만 보일 뿐 움직임은 없다. 다시 말해 어떤 감정의 요소를 확인할 길이 없지만 거티는 제한적인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조그마한 모니터를 통해 이모티콘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또한 할은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인간에게 반기를 들어 수면 상태의 승무원들과 폴을 죽였고 보우만까지 제거하려고 하는 반면에 거티는 두 명의 샘을 보호하기 위해 회사의 통제를 거부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행동을 한다. 그렇기에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할의 이러한 자의적 행위로 인해 스릴러적 요소가 강하게 부각되지만 <더 문>에서의 거티의 행위는 영화를 전반적으로 휴머니즘적 메시지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휴머니즘적 요소로부터 영화는 인간에 대한 정의의 범위를 넓힌다. 그 범위는 복제인간뿐만 아니라 AI까지 확대가 된다. 영화 <6번째 날>에서의 복제인간을 보자. 이 영화에서의 복제의 목적은 영생이다. <6번째 날>에서의 복제 인간은 원본이 되는 원래 인간을 대체한다. 그렇기에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자기 동일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원본이 복제와 마주하게 되었을 때 상황은 꼬이게 된다. 하지만 <더 문>에서의 복제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이윤과 효율성의 논리 하에 수행된다. <블레이드 러너>에서처럼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대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반복되는 복제다. <더 문>의 경우, 원본은 자신의 DNA만 제공했을 뿐 복제된 대상과는 마주칠 일 없는 머나먼 곳에서, 사실 복제물들의 존재도 모른 채 그냥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서로 마주하게 되는 것들은 복제물들뿐이다. 원본과 무관하게 복제물들끼리 서로 자신이 진짜라고 우기는 상황이라면... 두 번째 샘은 상황 판단이 빨랐고 그래서 첫 번째 샘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클론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첫 번째 샘이 자신이 진짜라고 우길 때 미친 클론의 푸념을 듣기 싫다고 말한다.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인지하는 유일한 샘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있는 수많은 샘들이 노동의 대체물로써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될 뿐이다. 이런 자본의 논리 하에서라면 당연히 윤리의 문제는 애써 무시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샘이라는 공통된 기억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둘은 서로를 자신이라 우기며 티격태격 다투는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며 소위 '정()'이라는 인간적인 관계를 쌓게 된다, 그것도 원본과 전혀 무관하게 말이다. 동일성에서 출발했지만 과정은 차이를 낳았다. 이미 서로를 필요도, 이해할 필요도 없는 그들이 알고 이해하게 되는 것은 관계에서 생겨나는 동일성의 차이들이며 그 차이들이 바로 하나의 샘이 아니라 개별자로서의 샘A와 샘B를 구분 짓게 하는 개성이 된다. 동일한 원본의 육체와 기억에서 시작된 둘의 동거는 종국에는 원본과는 전혀 무관한 각자만의 개성을 발현시켰다. 서로 충돌하고 소통하는 관계 맺음에서 발현된 그 개성은 상호 관계의 깊이를 더 심화시켜 자연스레 "휴머니즘"이라 부를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한다. 동시에 이 휴머니즘에는 타인을 위해 서로가 서로를 희생하는 이타성도 저절로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두 클론은 그저 샘이 아니라 서로 완전히 다른 인격체인 샘A와 샘B로 불려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또 다른 인격체가 있다, 바로 거티다. 주입된 명령만을 수행해야 할 A.I. 거티는 두 샘과 생활하며 둘 사이의 충돌을 중재하고 조정하면서 샘 홀로 있을 때는 결코 겪을 수 없는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둘의 대립과 화해의 과정을 바라보며 애써 무시도 하고 때로는 조정자가, 때로는 조력자가 되기도 하면서 거티 스스로 그 관계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단순히 제삼자의 입장에서 머물던 거티는 점차 관계의 일부가 되면서 자연스레 감성의 지평을 넓히게 된다. 프로그래밍된 기본적인 감정만 내재된 거티는 감성에 기반한 휴머니티를 몸소 체득하면서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한계를 뛰어넘어 그것을 직접 실천하는 비약에까지 다다른다. 상심한 샘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올리는 순간, 샘에게 패스워드를 가르쳐 주는 순간, 두 샘의 탈출 계획을 회사에 보고하지 않는 순간, 그리고 마지막에 둘의 조력자가 되어 자신을 희생하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은 이성으로 그려낸 알고리즘으로서의 존재에서 감성으로 각성된 인간적 실존으로의 비약이다. 이러한 비약의 개연성을 영화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저 제삼자의 입장에서 유지되던 관조의 거리가 두 명의 샘이 만들어낸 새로운 관계로 인해 점차 짧아져 스스로 그 속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거티 스스로가 체득하게 된 것이 바로 휴머니티를 규정하는 '이타성'일 것이다. 거티가 행한 비약은 바로 이타성의 발현이다. 그렇다면 다시 앞서의 인간에 대한 규정으로 돌아가서 이타성을 기반으로 인간을 정의한다면, 두 샘뿐만 아니라 육체도 없이 정신으로만 존재하는 A.I. 거티 역시 '인간적인' 존재이어야 할 것이며 당연히 하나의 인격체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샘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우린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야, 알지?" 인간이라는 존재 지위를 위협받는 클론뿐만 아니라 거티까지 포함하여 두 번째 샘은 자신들을 인간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 역시 <블레이드 러너>나 <6번째 날>과 마찬가지로 인간 자체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인간다움에 기반을 둔 정의가 될 것이다. 물론 <6번째 날>에서는 이런 근거를 주인공의 입을 통해 구구절절 관객에게 설명하는 촌스러움을 드러내고 있지만 <더 문>에서는 깔끔하게 샘의 이 대사 한 마디로 모든 근거를 정리해 버린다.


   방금 언급한 것처럼 이타성의 관점에서 인간다움을 규정한다는 점은 <6번째 날>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형식도, 내용도 그리고 스케일도 다르지만 저변에 흐르는 암묵적 주제 의식은 그 궤를 함께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6번째 날>에서 놓치고 있는 세심한 차이를 하나 더 언급하고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두 영화 모두 복제인간에게 심어진 원본의 기억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우선적 요인이 된다. 그렇기에 <6번째 날>의 복제인간 아담은 자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더 문>의 샘 역시 자신이 진짜 샘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기억에 있어서 <6번째 날>이 놓치고 있는 지점을 <더 문>에서 짚어내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육화된 기억이다! 기억이란 것은 육체의 기억도 함께 한다. 전이된 기억은 현재의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기억, 자신의 육체에 체화되지 못했고 그래서 각인되지 않은 기억이다. 영화 <6번째 날>에서는 이 육체의 기억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복제된 아담은 자신의 신체가 결코 경험하지 못했음에도 단지 기억만으로 리모트 컨트롤로 헬기를 원본 아담보다 더 잘 다룬다. 위어 클리닉의 요원들은 복제되자마자 날렵한 육체적 전투 실력을 재현해낸다. 물론 영화 상의 설정 자체가 기억의 전이를 육체적 기억까지 전제하겠지만 육체의 기억은 본능적이고 감각적이며 물리적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육화되어야 하는 기억이다. 정신적 인지만으로 육체적 실행이 저절로 뒤따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육체적 인지와 육체적 기억이 함께 해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점을 <더 문>은 놓치지 않고 있다. 마치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사람이 한 동안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것처럼 새롭게 깨어난 샘 역시 한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이미 기지를 지키고 있던 샘의 탁구 실력을 새로운 샘이 따라갈 수 없는 것이고 샘이 제작하던 미니어처 앞에서 새로운 샘은 끌칼을 들고 당연히 짜증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문>은 다른 복제인간 영화들이 당연하게 전제하는 이 육체의 기억을 당연하게 다루지 않고 그 기억의 부재를 세심하게 건드리고 있다. 그래서 SF라는 같은 장르에서 펼쳐지는 상상물이지만 리얼리티의 측면에서는 영화 <더 문>이 좀 더 그럴듯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원을 꿈꾸는 복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