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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May 04. 2020

영원을 꿈꾸는 복제

로저 스포티스우드: 6번째 날(The 6th Day)

6번째 날(The 6th Day), 로저 스포티스우드 감독, 아놀드 슈왈제네거 주영, 2000



∙ 복제인간 연작 2 : 우린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다 (더 문)

∙ 복제인간 연작 3 : 함께 한 기억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하다 (오블리비언)



   쌍둥이가 아님에도 나와 너무나 닮은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도플 갱어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도 많겠지만 60억 인구를 고려한다면 그중에 나와 매우 흡사하게 생긴 사람이 존재할 가능성도 없진 않을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를 다룬 소설(하얀성, 브런치 글: 타자되기, 욕망과 체념의 변주곡 참조)이나 영화(써머스비, 브런치 글: 죽어서라도 버리지 못할 그 이름 참조)에 대해서도 이미 논한 바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나와 닮았다거나 쌍둥이라는 차원을 넘어 나와 완전히 똑같다면? 그것도 도플갱어나 다른 초자연적 현상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복제라는 인위적 과정을 거쳐 탄생된 또 다른 나를 본다면? 그렇다면 그는 나일까, 아니면 나의 타자일까? 아니, 나의 클론(Clone)을 '그것'이 아니라 '그'라고, 즉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렇게 복제인간을 상상했을 때, 그리고 그와 대면했을 때라면, 이런 원초적 질문을 시작으로 다른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복제인간이란 관점에서 이러한 주제들을 독특하게 다루고 있는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어쩌면 복제인간 연작이 될 것인데 나와 클론의 공존에 관한 시각을 보여주는 세 편의 영화를 연속으로 다뤄 볼 예정이다. 그 세 편은 오늘 소개할 <6번째 날>과 언제일진 모르지만 소개할 예정인 <더 문(브런치 글: 우린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다 참조)> 그리고 <오블리비언>이다. 이 영화들에서 다루는 복제인간은 기억까지 모두 전이되는 복제인간이다. 클론의 기억 문제에 착목한다면 우선 다뤄야 할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겠지만 이 영화의 경우 기억의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원의 질문을 던지기에 별도의 글로 다룬 바가 있다. 이번에 다룰 <6번째 날>은 액션 스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한 영화들 중 <터미네이터 1, 2> 그리고 <토탈 리콜>과 함께 나름 어떤 질문을 던지는, 그의 필모 상 몇 안 되는 묵직한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아놀드는 이 영화를 정점으로 내리막을 타더니 한 동안 잠수를 탔다가 2010년대가 되어서야 다시 예전의 액션 히어로로 돌아온 듯하다. 각설하고 이제부터 영화 <6번째 날>의 줄거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소개가 길어질 수밖에 없을 듯하다. 2000년에 제작된 오래된 영화지만 서사가 매우 촘촘하고 정밀하게 짜여 있으며 반전을 위하여 여러 곳에 복선을 심어 두고 있기에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간단하게 훑을 수만은 없는 영화다. 물론 줄거리 전체를 요약할 예정이기에 스포가 존재함을 미리 밝히는 바다.





신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6번째 날이니라.
『창세기 1:27, 31』


   영화는 성경 『창세기』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뉴스들이 나열된다. 1997년 2월 23일 복제 양 '돌리' 탄생, 2000년 6월 26일 게놈 프로젝트 인간 유전자 청사진: DNA, 인간 DNA 지도 작성... 그리고 복제 반대 시위가 로마에서 발생하고 인간 복제 실험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법원에서는 복제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곧이어 인간 복제를 금지하는 "6번째 날"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여 다른 동물들이나 신체 장기는 가능하지만 인간 자체의 복제는 공식적으로 금지가 된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 된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가까운 미래"임을 덧붙이면서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아담 깁슨(아놀드 슈왈제네거 분, 주인공의 이름을 6번째 날 최초로 창조된 인간인 '아담'으로 정한 것도 다분히 의도적일 것이다.)은 공군 시절 최고의 파일럿이었던 경력을 바탕으로 '더블 X'라는 전세기 운송 회사에서 조종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딸과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가는 가장이기도 하다. 이날 아침에도 예나 딸의 어리광을 받으며 분주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 TV 뉴스에서는 전날 미식축구 경기에서 심하게 다친 걸로 알려진, 3억 불이라는 거액의 FA 계약을 마친 '로드러너' 팀 소속 쿼터백 자니 피닉스가 다행히도 경미한 부상이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온다. AI 패널은 아담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와 함께 굴지의 동물 및 장기 복제 회사 '위어 클리닉'의 CEO이면서 자니 피닉스가 소속된 미식축구단 '로드너러'의 구단주이자 더블 X의 VIP인 마이클 드러커(토니 골드윈 분) 회장과의 약속 시간도 상기시켜 준다. 아빠 생일이랍시고 서툰 솜씨로 아침을 차려주곤 '심팔'이라는, 인간과 흡사한 로봇 인형을 선물로 사달라고 조르는 딸의 애교를 이길 수는 없다. 스쿨버스에 딸을 태워 등교시키고 나서야 아담은 동료 행크 모건(마이클 래파포트 분)과 회사로 향한다. 이들의 주된 업무는 스키나 스노 보드를 즐기는 사람들을 눈 덮인 고산 정상까지 전세기로 이동시켜주는 일이다. 출근하자마자 첫 팀이 대기하고 있었고 회사 동료들은 그날 손님으로 올 거물 드러커 회장의 깐깐한 요구에 불만이 많다. 게다가 아내는 화상 전화를 통해서 애완견이 병으로 죽었다며 딸이 울며 보채지 않도록 퇴근길에 위어 클리닉의 리펫(복제된 애완동물)을 사 오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한다. 첫 팀을 무사히 정상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리모트로 헬기 조종 테스트도 하고 모건과 리펫에 대한 시답잖은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동물 복제에 대한 아담의 기본적인 거부감이 아내나 모건과의 대화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도 애완견의 죽음에 슬퍼할 딸이 걱정되어 저녁에 모건과 함께 리펫 가게에 들러기로 약속했다.


   회사로 복귀했을 때 드러커 회장의 비서가 계약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드러커가 워낙 거물이다 보니 계약 조건이 상당히 까다롭다. 산 정상까지 이동하는 동안 조종사가 듣게 될 드러커의 전화상의 대화에 대한 기밀 유지 조항을 들이밀었고 신변 안전을 위해 이상한 장치를 통해서 조종사의 피검사와 시력검사까지 실시했다. 드러커는 자신의 전용기를 조종할 사람으로 더블 X의 최고 실력자로 알려진 아담을 지목했지만 넉살 좋은 모건은 딸을 위해 리펫을 미리 알아보러 가라며, 게다가 오늘이 아담의 생일이니 자신이 회장을 모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모건이 아담 행세를 하며 무탈하게 산 정상에 헬기를 착륙시켰을 때 화면이 흔들리면서 앞선 팀의 일원 중 한 명이 총을 겨누는 장면이 나타나며 곧 화면이 암전된다. 그리고 아담은 택시 안에서 눈을 뜬다. 깊이 잠이 들었는지 택시 기사가 몇 번을 깨워야 일어났다. 다소 머리가 어지러운 감은 있었지만 무시하고 모건의 말대로 리펫을 알아보기 위해 우드랜드라는 쇼핑몰로 갔다. 리펫 매장에 들렀을 때 종업원은 이미 그를 알고 있다는 듯 "아직도 결정을 못하셨군요"라며 말을 건넨다. 매장을 돌며 리펫을 알아봤지만 여전히 거부감을 지울 수 없어 딸의 선물로 심팔만 골라서 집으로 돌아온다. 저녁에 모건과 만나기로 했지만 모건은 나오지 않았기에 메시지를 남겼다.


   결국 리펫을 구입하지 못했고 죽어버린 애완견 때문에 슬퍼할 딸을 달랠 어쭙잖은 대사를 홀로 연습하며 집으로 왔다. 그런데 죽었다던 애완견이 달려들어 자신을 반긴다. 게다가 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떠들썩한 생일 파티는 이미 시작되었고 자신이 아내와 딸과 함께 생일 케이크 촛불을 불어 끄는 모습을 창문을 통해 목격한다. 아담은 그렇게 또 다른 아담을 본 것이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다른 남자가 자신 행세를 하고 있는 이런 황당한 상황에 당장 문을 박차고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처음 보는 남녀 둘이 그를 막아선다. 문제가 생겼다는 그들의 말에 따르면 '6번째 날' 법을 위반하고 인간 복제가 수행되었으며 복제의 소스가 아담였고 집 안의 아담이 바로 복제인간이라는 것이다. 이런 혼란한 상황을 수습하려면 우선 자신들과 함께 어딘가로 가야 한다고 종용한다. 아담이 이를 무시하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그들은 기어이 무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둘만으로서는 한 덩치 하는 군인 출신의 아담을 제압할 수 없게 되자 집 앞 길가에 주차되어 있던 밴에서 두 명이 더 튀어나왔고 그들의 목적은 곧 아담의 제거임이 드러난다. 이들은 위어 클리닉에서 파견한 네 명의 요원들로서 요원들의 팀장인 로버트 마샬 역으로 젊은 시절의 욘두 마이클 루커를 볼 수 있다. 레이저 총이 발사되고 집 마당은 아수라장이 된다. 아담은 차고에서 자신의 차를 탈취(?)해서 도주했고 곧 추격씬이 시작된다. 날렵한 여자 요원이 악착같이 차에 올라탔고 아담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아담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이유를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복제인간이 먼저 집에 왔고 아담만이 그를 봤기에 원본 아담만 사라지면 그의 클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담의 삶을 대신 살아갈 것이란다. 만약 두 명의 아담이 함께 있는 걸 보게 된다면 그 사실을 목격한 사람들 역시 사살될 것이라고도 했다. 계속되는 추격전에서 요원 둘은 사망했고 아담은 겨우 추격을 따돌린다.


   아담을 복제한 주체는 위어 클리닉이었다. 위어 클리닉은 복제 전문가 그리핀 위어 박사(마이클 듀발 분)가 기술을 총괄하는 CTO 역할을 담당했고 CEO인 드러커는 놀라운 로비력을 동원해 회사를 거대 기업으로 키웠다. 위어 클리닉의 주요 매출은 리펫과 복제 장기 판매였지만 사실 그들은 더 큰 야망을 갖고 있었다. 여느 영화에서의 악당이 그렇듯 외부적으로는 젠틀하고 온화한 드러커는 사실 야망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들은 6번째 날 법이 복제를 금지하고 있음에도 비밀리에 인간 복제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들은 경추 6번이 부러져서 선수로서 가망이 없었던 자니 피닉스를 죽이고 복제를 통해 새로 부활시켜 3억 불이라는 FA의 가치를 살렸으며 아담을 추격하다 죽은 두 명의 요원 역시 30분 만에 뚝딱 부활시켰다. 6번째 법은 워낙 강력했기에 드러커는 다양한 로비를 통해서 정치권에 법안 폐지를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다. 정치권에서도 암묵적으로 드러커에 동의하는 인물들이 있었으니 예를 들어 이런 경우다. 위어 클리닉 주최 파티에 참석했던 상원의장의 경우 나이 50에 얻어 애지중지하는 아들이 뇌암에 걸렸다. 드러커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것 - 물론 아들의 복제를 의미하겠지만 - 이라도 생각해 볼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 불법이 드러나는 경우엔 최소 40년 형은 받아야 함에도 의장은 당연히 그렇다고 한다, 단 그 아이가 건강하게 계속 살아간다면 말이다. 드러커는 여기에 대해서 확신을 준다. 대신, 복제 사실이 드러날 경우 6번째 날 법은 복제인간을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기에 안락사에 처해질 것임을 주지시킨다. 영업의 대가답게 드러커는 의장을 쥐락펴락하며 의장의 입에서 자신이 원하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한다. 비밀이 지켜지거나, 아니면 어느 날 법이 바뀐다면? 의장의 말이었고 이것이 바로 드러커가 원하던 말이었다. 한편 드러커의 꿈을 실현시켰던 위어 박사는 자신의 과학적 연구 성과가 사회에 미칠 윤리적 파장은 별로 고려해본 적이 없는 전형적인 과학자였다. 거기에다 인간 복제를 수행해야만 할, 상원의장과 비슷한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다. 아내 캐서린은 5년 전에 암으로 사망했지만 드러커와 위어 박사가 복제를 통해 다시 살려냈고 병이 재발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별 죄책감 없이 인간 복제를 계속 수행한다.


   추격을 따돌린 아담은 경찰서를 찾아가지만 또 다른 자신에 의해 차량 도난 신고가 된 상태였다. 경찰과 서로 핀트가 어긋나는 대화를 이어가는 동안 위어 클리닉에서는 아담을 요주의 정신병 환자로 전산 기록을 조작하여 체포 요망 상태로 경찰에 통보했다. 덕분에 경찰서에 구금되는 처지가 되었지만 아담은 기지를 발휘하여 그곳을 탈출한다. 하지만 경찰서 바깥에는 그를 제거하기 위한 위어 클리닉 요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분명 죽었던 그 두 명도 함께 말이다. 다시 그들과의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고 아담은 앞서 죽었던 녀석의 목을 꺾어 또 죽여버린다, 물론 이 녀석은 뒤에서 또 살아나지만... 아담은 피신처로 모건의 집을 택했다. 모건 역시 잠깐 동안의 기억이 없었다고 한다. 아담은 요원들에게서 뺏은 총을 들고 모건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간다. 목적은 집에서 버젓이 자신의 행세를 하고 있는 복제된 아담의 제거였다. 그리고 그럴 기회가 충분히 있었지만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모건의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남자의 총에 모건은 죽고 만다. 총격전이 벌어지고 그를 추격했지만 주차장 한쪽에서 총에 맞아 반죽음이 된 그 남자를 발견했다. 모건을 왜 죽였는지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황당하다, 모건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간 복제를 반대하는 단체 소속이었고 복제인간은 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기고 있다. 진짜 모건은 그날 아침에 자신의 손에 죽었다고 한다. 드러커 회장을 태운 헬기가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총을 겨누던 이가 바로 이 남자였다. 암살 타깃은 드러커였지만 실수로 모건까지 죽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드러커는 살아 있어, 믿지 못하는 아담이 반문했지만 이 남자는 눈을 뜨라며, 위어 박사가 드러커도, 모건도 복제했다고 주장한다. 집요한 위어 클리닉 요원들이 그곳까지 따라왔고 이 남자는 아담에게 자신의 머리를 쏘라고 한다. 뇌 스캔을 통한다면 자신의 동료들과 조직들도 모두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아담이 주저하는 사이 그는 아담의 손을 당겨 자신의 머리를 직접 쏴버렸다. 이어서 요원들과의 전투가 재개되었지만 아담은 그들을 겨우 따돌리고 자신의 회사로 피신해 한숨을 돌렸다.


   위어 박사는 아내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복제를 했음에도 그녀는 다시 같은 병에 걸렸다. 아내에게 자신의 클리닉으로 옮겨 치료하자고 했지만 그녀는 그냥 병원에 머물고 싶어 했다. 위어 박사는 어떻게든 그녀를 살리고자 했지만 그녀는 죽음을 원했다. 위어 박사는 애절하게 아내를 달랬지만 그녀는 단호하다, 캐서린은 5년 전에 죽었어, 내 감정은 그녀의 것이지 내 것이 아냐... 캐서린, 잘 들어, 난 당신이 필요해. 난 두렵지 않아, 죽고 싶다고, 내 시간은 벌써 지났어... 죽고자 하는 그녀의 소망은 간절했다, 영원을 택하는 대신 복제인간일지라도 인간적인 죽음을 선택한 장엄한 순간이다. 클리닉으로 돌아온 박사는 복제인간에게 왜 같은 병이 재발하는지를 조사했고 드러커가 비밀리에 복제인간 수명에 한계를 심어 두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시점에 아담이 위어 클리닉으로 몰래 침투하여 박사를 찾아왔다. 자신을 복제했느냐는 아담의 질문에 드러커의 음모를 알아낸 데다 아내의 죽음이 안겨준 상실감으로 박사는 순순히 모든 것을 실토한다. 복제는 기억도 함께 전이되는데 기억은 복제 원본의 뇌를 스캔하는 "싱코딩" 과정을 통해서 심어진다고 한다. 그날 아침에 회사에서 아담이 시력 검사랍시고 눈을 스캔한 장치가 바로 싱코딩 장치였다. 싱코딩 결과인 싱코드는 CD 비슷한 매체에 복사되어 별도로 보관되며 사람이 직접 영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장치를 통한다면 자신의 기억 모두는 이미 자신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싱코드와 DNA 샘플(물론 아침에 피검사도 했었다.)을 따내면 원본 사망 후 두 시간 만에 자신의 자아를 그대로 기억하는 완벽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싱코드를 달라는 아담의 요구에 박사는 아무런 저항 없이 내주었고, 한발 더 나아가서 드러커의 싱코드도 아담에게 보여 주었다. 모건이 드러커를 아침에 실어 날랐을 때 총을 든 남자가 모건과 비서를 죽이고 드러커에게 총구를 겨누는 마지막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드러커를 다시 복제해야 했고 복제 사실을 숨겨야 한다면 드러커 암살이라는 사건 자체도 없어야 했기에 당연히 모건도 복제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건이 아담 행세를 했기 때문에 위어 클리닉은 멀쩡히 살아있는 아담을 복제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이는 곧 복제된 아담 자체가 '6번째 날' 법을 위반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되기에 드러커에게는 매우 위험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자신을 제거하려는지 물었을 때 드러커는 3년 전에 복제되었고 이날 또 복제되었기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박사는 대답했다. 복제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어떠한 권리도 인정되지 않기에 드러커는 법적으로 사망한 상태이고 그렇다면 현재의 모든 지위는 법적으로 그 실효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그렇기에 드러커는 기를 쓰고 아담을 제거하려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을 알게 된 아담은 이것 역시 증거라며 드러커의 싱코드를 챙겨 위어 클리닉을 떠났다.


   물론 드러커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담을 찾기 위하여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이는 곧 그의 아내와 딸을 납치하여 인질로 만드는 것이다. 드러커는 아담을 제거하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할 것이기에 아담의 가족들도 위험할 거란 박사의 경고에 따라 아담은 다급하게 딸이 있는 유치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위어 클리닉의 요원들이 이미 그들을 납치한 뒤였다. 자신의 클론이 딸과 아내의 납치를 막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뒤늦게 도착한 원본과 클론은 어쩔 수 없이 조우하게 된다. 경찰에 신고하려는 클론을 막아서고 강펀치 한방으로 그를 기절시킨 후 아담은 드러커에게 전화를 한다. 드러커의 싱코드와 자신의 가족을 맞바꿀 것을 제안했다. 그날 밤 10시에 자신의 회사로 가족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이제 두 아담은 자신들의 회사에서 함께 가족 구출을 위한 작전을 짠다. 아담은 저간의 상황을 다른 아담에게 설명해서 이해시켰고 함께 간이 폭탄을 제조한다. 한편 위어 박사는 드러커의 방으로 찾아가 따졌다. 드러커가 박사 몰래 복제인간에게 선천적 결함을 주입시킨 사실을 캐물었을 때, 그는 캐서린의 경우 자신의 실수였지만 복제인간들이 배신할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캐서린도 다시 복제될 것이기에 걱정 말라고 했지만 박사는 캐서린의 소망대로 그녀의 복제를 반대했다. 더 나아가서 캐서린을 계기로 이제 더 이상의 인간 복제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선 입고 있던 하얀 가운을 벗는다. 하지만 드러커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박사가 복제를 거부한다면 그를 죽이고 복제한 후 싱코드를 조작하여 문제가 되는 부분의 기억을 제거하여 주입한다면 다시 예전의 충실한 박사로 되돌아올 것이다. 그것을 '선물'이라고 이야기하며 드러커는 박사를 사살한다.


   밤 10시가 되어 약속대로 위어 클리닉의 요원들이 더블 X 사의 활주로에 도착했다. 헬기에 올라탄 아담은 상공에서 가족을 보여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들이 약속을 그대로 지킬 리가 없다. 가족은 데려 오지 않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머신 건으로 헬기를 박살 내 버린다. 이런 전개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아담은 리모트로 헬기를 조종하고 있었으며 정작 자신은 다른 헬기로 위어 클리닉으로 향하고 있었다. 드러커가 더블 X 사의 VIP 고객임을 이용하여 회장의 탑승 예약을 핑계로 헬기를 옥상에 착륙시키고 드러커를 찾아 나섰다. 요원들과의 총격전이 시작되었고 쫓기던 아담은 드러커 회장이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에 순순히 체포된다. 아담과 드러커, 마침내 둘의 만남이 성사된다. 아담이 들어서자 드러커는 아담 깁슨이라 불렀고 아담은 유일무이하진 않지라고 답한다. 가족의 안전을 확인시켜준 후 드러커는 자신의 싱코드를 요구했다. 아담은 그들이 속일 걸 예상하고 자신의 복제인간에게 주었다고 한다. 가족을 건드리면 또 다른 아담이 드러커의 비밀을 폭로할 거라 했다. 이 말에 드러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박사가 말을 안 했나 보군, 복제인간은 '또 다른 아담이 아니라 자신 앞에 있는 그'라고 한다. 실소를 자아내는 아담에게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들어간다. 시력 검사 후 기억이 나는지, 리펫을 알아보러 우드랜드에 갔을 때 종업원의 행동이 이상하지 않았는지... 아담은 아침에 면도하다 베인 자욱을 생각했지만 그런 것도 쉽게 만든다고 한다, 심지어 전쟁에서 생긴 흉터까지도 말이다. 그래도 믿지 않는 아담, 난 내가 누군지 알아. 드러커는 대답 대신 아담을 붙잡으려다 두 번이나 사망했던 여자 요원에게 질문한다, 몇 번이나 복제되었지? 많아서 기억도 안 나요... 방법이 있지, 보여줘! 그녀가 다가와서는 왼쪽 눈 아래쪽을 까뒤집었다. 눈동자 바로 아래의 안쪽 살에 네 개의 점이 찍혀 있다. 그것은 네 번 복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표식이라 한다. 이제 아담에게 확인해 보라고 거울을 들이민다. 아담은 자신의 왼쪽 눈 아래쪽 살을 뒤집었다. 선명한 점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몇 번을 확인했지만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상황은 반대가 되었다. 가족은 그의 가족이 아니다, 게다가 다른 아담이 싱코드를 경찰에 넘긴다면 드러커도 무너지지만 복제인간인 자신도 인간이라는 법적 지위를 상실하게 되고 폐기 처분될 것이다. 그러니 진짜 아담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드러커는 요구했다. 싱코드를 되찾고 다른 아담을 제거한다면 복제된 지금의 아담은 자신이 기억하는 가족과 예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담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제 드러커는 자신에 차서 설파한다, 아담이 자신과 한 편이 된다면 어느 누구도 그가 가짜인지 모를 것이며, 조만간 6번째 날 법이 폐기될 것이며 마침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담이 반문한다. 삶과 죽음을 누가 결정할 수 있지? 당신? 그것은 신의 권한이야. 이에 드러커는 코웃음을 친다, 자네는 과학을 악마로 취급하는군. 아담의 대답, 아니, 과학이 악마는 아니지, 악마는 바로 당신이야! 드러커의 반론도 만만찮다, 신이 진정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했다면 진화론을 알고 과학을 이용하며 유전자 코드를 조작하는 능력도 함께 줬을 거야,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지, 난 그저 그 일을 신에게서 인계받은 것일 뿐이야! 그저 죽기 전에 드러커 자신이나 복제하라는 아담의 말에는 그렇게 해야 유일무이의 개념이 이해되냐며 드러커는 아담을 비꼬았다. 하지만 그는 이미 두 번씩이나 복제되었고 이제 곧 또 복제될 것이다. 이것을 암시라도 하듯 아담이 대답한다, 아니, 너 자신한테 물먹어보라는 거지...


   아담이 싱코드의 위치를 밝히지 않자 결국 이들은 아담의 뇌를 스캔하여 그의 기억을 직접 보기로 한다. 강제로 싱코딩 장치에 아담의 눈을 가져다 댄 뒤 그의 기억을 확인한다. 한 시간 전의 기억에 그가 또 다른 아담에게 싱코드를 건네는 장면이 포착된다. 그리고 아담 혼자 헬기에 오르고 바깥에서는 다른 아담이 손을 흔들고 있다. 위치는 공항으로 확인되었고 요원들이 출동하려는 순간 드러커는 또 다른 장면을 잡아낸다. 날아가는 헬기 창에 반사된 아담의 얼굴 뒤로 또 다른 아담이 보였다. 두 아담 모두 같은 헬기를 탄 것이었고 이는 또 다른 아담 역시 이미 위어 클리닉 내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의 치밀한 계획이었다. 진짜 아담은 복제된 아담 모르게 헬기에 올랐고 그래서 아담의 기억 속에 진짜 아담의 위치는 남지 않았다. 그 사이 원본 아담은 자신들이 제조한 폭탄을 설치하고 아내와 딸을 구출했다. 싱코딩 과정에서 정신을 되찾은 아담이 드러커를 공격했을 때 이를 저지하기 위해 요원이 발사한 총은 실수로 드러커를 관통하고 만다. 치명상을 입은 드러커는 곧바로 자신에 대한 복제를 준비시켰다. 진짜 아담이 헬기를 몰아 가족을 건물 밖으로 피신시키는 사이 아담의 클론은 요원들을 피해 숨었다. 스스로를 싱코딩한 후 드러커는 복제실로 갔고 아담은 복제실에서 요원들과 치열한 몸싸움을 벌인 끝에 그들을 제거한다. 그 과정에서 복제 과정 중에 있던 장치를 건드렸고 드러커의 복제는 불완전하게 진행된다. 흉물스럽게 복제된 드러커는 깨어나서 자신의 원본의 옷을 벗겨 자신이 걸친다. 이제 숨이 넘어가는 드러커와 흉물스러운 드러커, 그리고 아담만이 남았다.


   흉물스러운 드러커는 협상을 제안한다. 자신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자신의 원본이 한 짓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원본은 수명을 제한하기 위해 DNA에 결함 물질을 주입했다고 실토했다. 이는 곧 복제물인 아담 자신의 수명도 제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무슨 병이 있는지 함께 확인해보자는 흉물스러운 드러커의 제안에 아담은 레이저 건으로 싱코드 보관 장치며 DNA 복제 시설들을 파괴해 버린다. 복제를 위한 모든 자료와 소스를 제거한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누구나 죽기 마련이야. 드러커의 말; 우린 그럴 필요 없어, 늙지도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겠네, 아무런 결함 없이 말이야. 당신처럼 완벽하게? 이렇게 반문하며 아담은 드러커를 끌고 가서 거울 앞에 세운다, 보라고! '완벽한' 모습 말이야! 그제야 복제된 드러커는 자신이 불완전하게 복제된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사이 다 죽어가던 드러커가 마지막으로 아담을 공격하고 스러진다. 복제된 드러커도 그를 공격하지만 한 방에 나가떨어져 원본 드러커 위에 엎어져 꼬꾸라진다. 아담은 다른 아담이 설치해둔 폭탄의 심지에 불을 붙인 후 건물을 탈출한다. 하지만 위너 클리닉의 경비원들과의 총격전은 불가피하다. 또한 복제된 드러커도 끝까지 그를 쫒아온다. 옥상으로 피신했을 때 진짜 아담이 헬기를 몰고 그를 태우러 왔다. 아담이 헬기를 타려는 순간 복제된 드러커가 총을 발사했고 아담의 다리를 맞춰 옥상 아래 난간으로 떨어뜨린다. 두 아담은 난간 아래로 몸을 숨겼고 복제된 드러커는 계속 총을 난사했다. 아담은 리모컨으로 헬기를 조종하여 헬기의 프로펠러로 드러커를 위협했다. 거대한 회전 톱처럼 다가오는 프로펠러를 피해 뒤로 물러서던 드러커는 결국 자신의 빌딩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 철퍼덕 붙어 버린다. 곧이어 아담이 설치한 폭탄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두 아담은 겨우 헬기를 붙잡아 올라타고선 폭발하는 빌딩을 아슬하게 탈출한다.

 



   모든 사건이 종결된 뒤의 더블 X사 격납고, 원본 아담이 라커로 "파타고니아 모험용 전세기"라고 적힌 헬기에 "ARGENTINA"라는 문구를 덧칠하고 있다. 난 내가 인간인지 항상 궁금했었지, 영혼은 있을까? 이런 복제 아담의 자문에 원본 아담이 답한다, 자네 DNA 스캔 결과는 정상이었어. 물리적으로 정상임을 주지시키는 원본의 말에 복제본은 시니컬하게 답한다, 그래, "결함 없음"이라고 나오긴 했지, 리펫 광고에서처럼 말이야. 원본은 정신적 상태까지도 정상의 인간임을 강조한다, 자네가 인간이 아니라면 모를 리가 없지, 가족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는걸, 바다에 있으면서 잘 생각해 보게, 자네가 정말 인간인지 아닌지, 인간이니까 그런 희생도 가능한 거야복제 아담은 원본 아담이 정성스레 문구를 새긴 전세기를 타고 떠났다. 원본 아담은 리펫 고양이를 구입해서 딸에게 준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는 딸을 보며 아내가 말한다, 리펫은 싫어했잖아? 이 말에 아담은 간단하게 답한다, 마음이 바뀌었어... 고맙다며 품 속으로 파고드는 딸을 꼭 안아주는 아담의 의미심장한 표정을 클로즈업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영화 <6번째 날>은 무려 2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다시 보더라도 요즘의 감각에 크게 뒤쳐진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는다. 물론 오래된 영화이기에 3D 그래픽의 엉성함도 보이고 당시에는 충분히 용인되었던 아놀드표 과한 액션도 거슬리는 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스토리 라인 자체가 매우 치밀하게 짜여 개연성을 보장하기에 중간중간에 나오는 반전도 앞서 나온 복선들을 따라가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플롯을 갖고 있다. 아놀드라고 하면 언제나 액션물을 떠올리게 되지만 예의 아놀드표 액션을 그대로 선보이면서도 긴밀하고 복잡한 서사에 적절한 함의를 내포하고 있기에 단순히 재미라는 요소만 추구한 영화는 아닌 듯하다. 그 함의는 있는 그대로 복제인간의 문제와 직결된다. 물론 이런 문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어 사람을 오글거리게 만드는 미숙한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20년 전에 그것을 SF에 적절하게 결합시켰다는 점은 매우 신선한 시도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두 아담의 대사는 솔직히 오글거리는 대사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 장면에서의 둘의 대화는 너무 직설적이어서 마치 윤리학 교과서를 읽는 듯하다. 톰 행크스 주연의 <터너와 후치, 1989>,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엄마는 해결사, 1992>,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한 <007 네버다이, 1997> 등, 감독으로서 로저 스포티스우드의 주요 필모를 보면 작가주의적 감독이기보다는 할리우드식 상업주의에 적당히 편승하는 평범한 감독 쪽일 것이다. 물론 최근에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A Street Cat Named Bob), 루크 트레더웨이, 밥 주연, 2016>을 만들어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 중 1983년에 만든 <언더 화이어(Under Fire), 진 핵크만, 닉 놀테 주연>를 제외하고는 묵직한 주제를 다룬 영화는 별로 없다. 그렇기에 <6번째 날>에서 나름의 함의를 전달하고자 했지만 그 방식이 세련되지 못한 측면은 그의 필모를 고려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런 직설적인 대화보다 더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장면들이 있다. 영원을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캐서린의 장면이 그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저서 <비극적 사유의 탄생>에서 인간이 실존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두 가지 감정 상태로 '꿈'과 '도취'를 든 바 있다. 이 두 감정 상태를 그리스 비극으로 매치시킨다면 각각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로 양립된다. 즉, 아폴론에 해당하는 꿈은 무엇을 숨기거나 가리는 일종의 베일의 역할을 하고 디오니소스로 대변되는 도취는 무엇에 취해 그것과 완전히 동화되어 자신을 잃어버림을 의미한다. 이는 숨김의 의도를 갖는 베일과는 다르게 그 무엇을 완전히 드러내고 그 본질을 직접 보게 만드는 수단이 된다. 결국 두 감정 상태 모두 어떤 그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때 그 무엇이라는 것은 바로 인간의 삶, 인간 실존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꿈의 상태는 인간 실존의 본질을 숨기는 것이며 도취의 상태는 인간 실존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인간 실존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생성과 소멸이라는 필연의 법칙이며 이는 곧 인간 역시 가멸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대한 진리 선언이기도 하다. 서양 철학사의 주류는 생성과 소멸의 영원한 반복이라는 이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자 하는 역사였다. 동시에 그 이면에는 바로 불멸에 대한 노골적인 염원이 담겨 있다. 가멸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부정하는 방법은 썩어 문드러질 육체라는 유한적 실체를 버리고 정신을 영속적이고 항구적인 존재로 드높이는 것이며 그 욕망은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시키는 것으로 실현된다. 그렇기에 서양 관념론 철학이나 기독교적 종교관은 불결한 육체와 순수한 영혼을 그렇게 강조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더 나아가서 영혼은 자신의 존속을 위해서 육체를 갈아탈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이라면 육체는 정신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단순한 미디엄(Medium, 굳이 영어로 쓴 이유는 '매개체'라는 표현도 좋게 표현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매개체라기보다는 차라리 물리학적 '매질(媒質)'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격하된다. 


   이러한 영혼의 전이 가능성을 전제한다면 복제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화 <6번째 날>에서의 복제인간 역시 매질로써의 역할에 충실하다. 한 개인의 영혼 존속을 위해서라면 인공으로 제작된 매질로서의 육체는 끊임없이 교체될 수 있다. 영화는 그런 가능성이 현실화된 상황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육체의 끊임없는 재생산을 통해서 영혼의 불멸을 보장받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의 클론은 나일까 아니면 나의 타자일까?"라는 처음의 질문을 클론의 입장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 마지막에 자신의 영혼에 대한 의문을 담은 클론 아담의 자문처럼 클론 자신이 '나'라고 느끼는 그 정체성은 진짜일까? 이는 클론이 느끼는 정체성과 원본이 느끼는 정체성의 동일성 여부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교체된 육체에 탑재된 정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는 수단은 오로지 '기억' 밖에 없다. 즉, 영혼의 전이 가능성을 전제하지만 그 영혼은 기억을 온전이 보존한 영혼이어야 한다. 영혼은 기억을 상실하는 순간 동일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식된 기억은 새로운 신체에 내재하던 영혼의 소유물이라 할 수 있을까? '나'라는 정체성에 있어서 기억이란 요소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기억은 주체의 경험을 통해서 축적된다. 그리고 '고유한 나'라는 개성(Personality)은 축적된 기억과 현재 진행 중인 경험, 그리고 이 둘을 기반으로 기대하게 되는 예감, 다시 말해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세 변수가 만들어 내는 다층적 변주를 통해 드러나는 산물이다. 그러나 이식된 기억이라면 그것은 경험되지 못한 기억,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선험적 기억일 수밖에 없다. 선험은 경험 이전을 의미하는 말로서 신에 의해서든,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든 구체적인 인간 이전에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적으로 미리 주어져 있는 추상이다. 하지만 추상은 개별적일 수 없다. 다시 말해 선험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각 개인마다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기억은 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위어 박사의 부인 캐서린은 자신의 기억은 5년 전의 캐서린의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영원을 포기한다. 인간으로 남기 위해서... 타인의 정체성을 지닌 채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길 원했을 것이다. 캐서린은 그렇게 죽음을 택함으로써 인간으로 남고자 한 것이다.

 

   이제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클론을 인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영화에서의 대답은 YES다. 마지막에 나오는 두 아담의 오글거리는 대화는 충분히 그렇다고 한다. DNA를 포함해서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특장점만 본다면 충분히 인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리펫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클론을 인간이라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전형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 답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브런치 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죽음 참조)>에서 이미 주어졌다. <블레이드 러너>를 다루면서 필자는 리플리컨트를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질문 자체를 다르게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로 바꿔야 한다고... 이는 질문 자체가 존재론적 물음이 아니라 윤리학적 물음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리플리컨트 로이의 죽음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죽음이다. 그리고 여기에서의 인간다움이란 바로 '이타성'이 아닐까? 원본 아담은 자신의 클론이 충분히 인간적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적이다'라는 말에는 이미 인간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아담은 가족을 위해 목숨까지 걸었던 클론 아담을 두고 '인간이니까 그런 희생도 가능한 것'이라 말한다. 이타성이란 개념 자체에는 이미 타인이 전제되어 있으며 이 타인 역시 인간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타인은 나의 대자적 존재로서의 타자가 아니다. 사르트르에게 타인은 지옥일 수밖에 없다. 왜냐면 사르트르의 타자는 '나'로부터 출발하는, '나'라는 존재가 먼저 정립되고 난 후에 선험적 환원의 결과로 정립되는 '타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타성에서의 타인은 나에 앞서 먼저 상정되는 존재다. 내가 있어 타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있어 내가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결코 주체 철학이나 존재론적 관점에서는 성립될 수 없다. 윤리학으로 눈을 돌리 때에서야 비로소 볼 수 있고 성찰될 수 있는 그런 관점이다. '인간이니까 그런 희생도 가능한 것'이라는 말에는 이미 클론으로서의 아담을 인간으로 상정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인간이라는 존재론적 긍정을 넘어서서 이타성에 기반한 '인간적'인 윤리학적 존재에 대한 긍정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클론 아담 역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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