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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F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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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Jul 09. 2019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죽음

리들리 스콧: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리들리 스콧 감독, 해리슨 포드, 룻거 하우어 주연, 1982



   이번에 소개할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포함하여 <에일리언>, <델마와 루이스(브런치글 "서글픈 길 위의 이방인들" 참조)>, <글레디에이터>, <블랙 호크 다운>, <킹덤 오브 헤븐>, <프로메테우스> 등등 사람들의 입에서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적지 않은 영화들을 감독했던, 영화의 장인 리들리 스콧이야 워낙 유명하기에 별도의 설명은 필요 없을 듯하다. 물론 그가 만든 영화 <블레이드 러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종일관 어둡고 축축한 영상과 무겁고 난해한 내용에다, 하필이면 개봉이 스필버그의 <E.T>와 맞물려 영화는 흥행에 참패했지만 후에 수많은 덕후들을 양산하게 되는, 진정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글들이 이 영화에 대한 찬사 및 헌사로 바쳐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를 들어 이 영화의 영향력을 간단히 언급하자면, <블레이드 러너>는 1968년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함께 영화에서의 SF 장르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두 영화가 아닐까 한다. 영화의 두 주인공도 필자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로서 청소년기에 <스타워즈 3>나 <레이더스>와 <인디아나 존스>, <위트니스> 등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해리슨 포드"였기에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지만 악역을 맡았던 "룻거 하우어"의 경우는 필자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었다. 필자의 경우, 80년대 중반에 극장에서 봤던, 미셸 파이퍼와 짝을 이뤄 주연으로 나왔던 <레이디 호크(리차드 도너 감독, 1986)>란 영화를 통해서 룻거 하우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독특한 이미지를 풍기는 네덜란드 출신의 이 배우는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하여, 그 이후로 수많은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점점 잊혀 갔더랬다. 그래도 최근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나 뤽 베송의 <발레리안: 천 개의 행성>에서 조연으로나마 그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그의 필모를 확인해보면 꾸준히 여러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하면서 할리우드를 떠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이디 호크>란 영화를 통해서 기억하고 있었던 룻거 하우어란 이 배우가 이 영화에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찌 보면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의 핵심적인 화두가 결국 이 배우를 통해서 제시된다고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이 글을 게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19일, 룻거 하우어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네델란드 자택에서 향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를 기억에서 다시 소환한 시점에서 들려온 사망 소식은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의 명복을 빈다).


   소위 "사이버펑크(Cyberpunk)", "테크누아르(Technoir)" 영화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블레이드 러너>는 "필립 K. 딕(Philip K. Dick)"이 1968년에 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SF 소설의 시조 격인 그의 소설들은 이 영화를 포함하여 <토탈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직접 영화화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매트릭스>나 <이퀼리브리엄>을 비롯하여 여타 다른 수많은 SF 영화들에도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소설을 영화화할 때 원작자가 영화 각본에 대하여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블레이드 러너>의 최조 각본의 경우도 원작자인 딕이 불쾌해했다고 한다. 후에 다른 각본가에 의해 만들어진 수정 각본은 딕이 만족해했으며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아 완성된 이 영화가 정식 개봉되기 직전 일부 장면을 보게 되었을 때도 딕은 상당히 기뻐했다고 한다. 이렇게 원작자와의 관계는 원만했지만 감독과 제작사의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제작사인 워너 브로스는 여러 측면에서 리들리 스콧의 작업을 간섭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리들리 스콧은 영화가 정식 개봉한 뒤에도 자신만의 별도의 버전을 출시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야만 했기에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총 7가지의 판본이 존재한다. 이 7가지 판본 중 가장 넓게 통용되는 판본은 다음의 세 가지 버전이다.


The US Theatrical Release(극장판), 1982년

The Director's Cut(감독판), 1992년

The Final Cut (최종판), 2007년


  <극장판>은 1982년에 미국에서 정식 개봉된 버전이다. 물론 미국 내에서만 개봉된 <극장판>과 다르게 유럽을 비롯한 해외에서 개봉된 <국제판(The International Theatrical Release, 1982)>도 존재하는데 이는 <극장판>에서 삭제된 잔인한 장면을 살린 버전이어서 <극장판>과는 큰 차이는 없다. 사실 <극장판>의 경우, 앞서 언급했던 대로 제작사인 워너 브로스의 입김이 많이 작용되었기에 리들리 스콧의 의지가 꺾인 작품이기도 하며 그렇기에 리들리 스콧은 다시 편집을 거쳐 1992년에 <감독판>을 별도로 출시를 했다. 그리고 15년 뒤인 2007년에는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감독 스스로 보증하는 블레이드 러너 <최종판>을 출시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 세 판본을 모두 봤는데, 1992년 <감독판>과 2007년 <최종판>은 후자가 동일 감독에 의한 전자의 리마스터링이기에 영상의 전체적인 톤을 좀 더 어둡게 가져갔다는 점과 <감독판>에서 제거된 잔인한 몇 장면을 살렸다는 점, 특정 장면의 배경을 바꾼 점, 그리고 사운드를 개선한 점을 빼면 크게 차이가 없다. 하지만 1982년 <극장판>과 1997년 <감독판>의 경우는 거의 비슷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몇 부분의 차이에 의해서 영화의 느낌은 크게 달라진다. 이 두 판본 사이에는 크게 세 가지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감독판>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극장판>과의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극장판> 중간중간 삽입된 주인공 해리슨 포드의 내레이션 제거.

<극장판>에 없는, 주인공의 정체성 논란을 불러일으킨 유니콘 장면 삽입.

남, 녀 주인공의 성공적인 탈주를 그린 <극장판>의 마지막 장면 제거.

 

  스토리의 전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 차이들은 <극장판>과 <감독판>의 여운을 뒤흔들 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한 해석의 방향까지도 틀어버릴 정도로 파급력이 강하다. 이 세 가지 차이점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할 것이며 먼저 영화의 배경으로 글을 시작해 보자.





   영화는 2019년의 LA를 배경으로 한다. 이 영화의 제작 연도가 1982년이기에 영화는 37년 이후의 미래를 그리고 있지만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이 실제 2019년이니까 영화의 상상력은 현실을 훨씬 앞서 있다고 하겠다. 영화에서의 2019년 LA라는 도시의 배경은 최첨단 기술로 치장되어 있지만 매우 암울하며 디스토피아적으로 묘사된다. 21세기 초, 거대 로봇 기업인 타이렐(Tyrell) 사(社)는 로봇 개발에 혁명적인 전환을 이루게 되었고 이것을 기점으로 이후의 개발 단계를 "넥서스 페이즈(Nexus Phase)"라 칭하게 된다. 그 전환은 유전 공학의 도입이었고 그 결과 넥서스 페이즈의 첫 양산 모델인 "넥서스 6"는 인간 이상의 체력과 지능을 갖춘 모델이었음에도 그 정교함에 있어서는 실제 인간과 구분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 넥서스 페이즈에서 양산되는 복제 인간들은 복제를 강조하면서도 너무 노골적인 "클론(Clone)"의 의미를 희석시키기 위해 "리플리컨트(Replicant)"라고 불리게 된다. 넥서스 6의 주요 임무는 우주 개척지에서의 노동이나 위험이 따르는 탐사 그리고 다른 행성의 식민지 개척을 위한 전투 등 인간을 투입하기에는 위험하거나 힘든 일, 지루한 일 또는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들을 대신하는 것이었다. "휴먼(Human)"이 아니라 리플리컨트라 불리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런 위험한 임무들을 수행함에도 리플리컨트들은 차별과 경멸의 대상이었으며 노예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이 이런 차별과 불평등한 대우를 자각하게 된 몇몇 리플리컨트들이 개척지에서 유혈 폭동을 일으키게 되고 이들은 행성을 탈출한 후 몰래 지구로 잠입하게 되면서 수많은 사회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이에 지구로 잠입한 리플리컨트들을 찾아내고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블레이드 러너 유닛(Blade Runner UNIT)"이라 불리는 특수 경찰대가 조직되었다. 블레이드 러너의 임무는 이런 리플리컨트들이 지구에서 발견되는 즉시 사살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처형(Execution)"이 아니라 "폐기(Retirement)"라고 불렸다. "Retirement"는 일반적으로 "은퇴"라는 의미인데 군대의 퇴각, 오래된 건물의 철거 등의 뜻도 갖기에 리플리컨트의 제거를 "폐기"로 번역해도 좋을 것이다. Execution 대신에 굳이 Retirement를 쓰는 이유가 바로 리플리컨트를 인간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21세기 초반의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영화는 2019년 11월의 LA에서 시작한다.


   영화 도입부를 비롯하여 중간중간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적 도시의 묘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첨단의 고층 빌딩 대형 옥외 광고판 사이를 가로지르며 나는 사이퍼(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묘사는 뛰어난 미장센과 더불어 속으로 쇠락해가는 다국적 도시 LA를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여전히 지금까지도 오마주되고 회자되는 이런 장면들은 화려한 CG로 무장된 현시점에서 본다면 조야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37년 전에 만들어진 장면이라면 놀랍기 그지없다. 물론 현시점에서 보더라도 이 영화의 미장센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현대의 CG로 묘사한다면 그 느낌을 결코 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디스토피아적인 도시의 묘사는 화려한 최첨단의 빌딩들로 숲을 이루고 있는 발달된 문명에도 불구하고 매우 축축하고 지저분한 거리와 밤과 낮을 구분할 수 없는 어두움, 그리고 끊임없이 내리는 산성비로 인한 첨단 도시의 암울한 측면들을 천상에서 보는 화려한 야경과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준다. 영화의 배경이 지구 외의 행성에 "월드오프"라 불리는 식민지를 개척한 상황이기에 이미 떠날 사람은 다 떠나고 떠날 수 없는 사람들만 남은 황폐한 지상의 도시 풍경을 제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을 떠다니는 "월드오프" 이주 광고판들은 갈 수 없는 그곳에 대한 어떤 역설로 다가온다. 이런 설정은 후대의 영화에도 많이 차용되는 구도이기도 하다. 


   영화는 바로 도발적인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리플리컨트와 인간의 식별이다. 리플리컨트의 경우 외관이나 행동, 말을 통해서는 일반 사람과 구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리플리컨트 식별을 위한 전문 감식이 요구된다. 특히 넥서스 6 모델의 경우 인간의 감정까지 학습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에 식별이 더 불가능하다. 높은 지능과 강인한 육체, 그리고 감정까지 가진 인조인간이라면 인류에게 위협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그래서 타이렐 사는 안전장치로 그들의 수명을 4년으로 제약했다. 리플리컨트를 판별하는 핵심은 바로 '기억'이다. 성장 과정의 경험을 통해 구성되고 축적되는 인간의 기억과는 다르게 리플리컨트는 성인으로 바로 생산되기 때문에 성인 이전의 아동기나 청소년기의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의 기억은 이후에 학습을 통해서 축적된 기억들만 가질 뿐이다. 감식의 과정은 질문의 과정인데 영화에서는 이를 보이트-캄프 테스트라고 부른다. 피검사자는 미세한 동공의 떨림과 홍채 반응까지 체크하는 미래 장치인 보이트-캄프에 눈을 가져다 댄 후 질문에 답한다. 질문은 주로 기억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되는데 중간중간 비상식적인 질문을 던지고 피검사자의 동공의 반응을 체크해서 리플리컨트를 식별하게 되는 매우 복잡하고 섬세한 과정이다. 특히 보이트-캄프 테스트의 경우 눈을 통한 감식이 주요한 수단이며 그래서 영화는 눈이 강조되는데 이 작품의 후속편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의 첫 장면 역시 위의 장면과 같이 주인공의 눈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전작에 대한 충실한 오마주를 선사한다. 이 감식의 과정이 도발적인 것은 식별을 위한 수단으로써 바로 인간의 '기억'을 건드린다는 점이다.


   여섯 명(??? 이 영화를 언급하는 동안은 물음표가 필요하다. 리플리컨트를 죽이는 것을 처형이 아니라 폐기라고 불러야 한다면 마찬가지로 여섯 '명'이 아니라 여섯 '개'의 리플리컨트라고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카프카의 <변신>에서 가정부가 죽어버린 그레고리를 시체가 아니라 사체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의 리플리컨트가 월드오프 식민지 행성에서 탈출을 감행했고 지구로 잠입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들이 타고 온 비행선은 LA 해변가에 불시착했고 모든 승객들은 몰살되었으며 그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타이렐 본사에 침입을 시도했으나 전기 방어막에 의해 두 명이 사망하고 나머지는 사라져 버렸다. 혹시 신입사원으로 가장하고 잠입한 리플리컨트가 있을지 모르기에 타이렐 사는 모든 신입사원들에 대한 리플리컨트 감식을 실시했으며 이를 위해 지금은 은퇴하고 없는 주인공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의 후임인 홀든이 타이렐 본사로 파견된다. 보이트-캄프 테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한 신입사원은 엄마에 대한 기억을 묻는 질문에 갑자기 숨겨온 총을 난사하고 사라져 버린다. 이에 형사 반장 브라이언트는 또 다른 블레이드 러너인 개프(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 분)를 보내 은퇴한 데커드를 다시 소환하고 데커드는 마지못해 사라진 네 명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단지 영화의 양념 역할을 담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개프에 대해 잠깐 언급할 필요가 있다. <극장판>에서는 개프를 하찮게 생각하는 해리슨 포드의 내레이션이 존재한다: 말은 번지르한 이자는 개프였다. 여기저기서 그를 본 적이 있다. 아마 브라이언트가 그를 블레이드 러너 유닛에 합류시켰을 것이다. 횡설수설 그가 떠들어대는 말은 당신들도 한 번쯤은 해봤을 수 있는, 일어, 스페인어, 독일어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도시 밑바닥 은어, 저속어였다. 정말로 통역이 필요 없었다. 웬만한 경찰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나는 그 말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맘 편하게 날 대하도록 내버려두진 않았다. 영화에서는 잠깐, 잠깐 보조 역할처럼 등장하는 개프는 사실 영화의 중추를 흔드는 소자 역을 담당하고 있다. 사건을 맡으라는 반장의 요청에 데커드는 처음에 거부하는데 이때 옆에 있던 개프는 종이로 닭을 접어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 둔다. 이러한 개프의 종이 접기는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데커드가 추적해야 할 네 명의 리플리컨트는 전투용으로 우수한 성능을 갖추었으며 리더이자 탈주 주동자인 로이 베티(룻거 하우어 분)와 보이트-캄프 테스트 중 사고를 친, 힘이 장사여서 400파운드의 탄약도 가볍게 들어 올리는 탄약병 리온 코발스키(브라이언 제임스 분), 빼어난 미모를 갖추었지만 실은 암살 전문으로 제작된 조라(조안나 캐시디 분), 마지막으로 위안용으로 제작된 프리스(대릴 한나 분), 이렇게 남, 녀 각각 두 명씩 총 네 명이며 이 중 로이와 프리스는 연인 사이다. 데커드가 이들이 왜 타이렐 사에 침투를 시도했는지를 물었을 때 반장은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데커드의 임무라고 했다.


   사건 조사를 위해 타이렐 사를 방문하게 된 데커드, 그곳에서 그는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탁월한 리플리컨트 감식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데커드에게 타이렐 사 회장 타이렐은 특별 제작된 넥서스 후속 모델에 대한 감식을 별도로 부탁한다. 어둑어둑한 타이렐 회장의 집무실, 부엉이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라 가볍게 집무실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 데커드가 인조(人造)냐고 물었을 때 물론이죠! 라며 또각또각 울려 퍼지는 선명한 힐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회장의 비서 레이첼(숀 영 분). 타이렐의 입회 하에 장시간 진행된 보이트-캄프 테스트, 데커드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을 때 대답을 망설이던 레이첼을 회장이 내보냈고 데커드는 복제인간이라고 답한다. 보통은 2~30가지 질문으로 판별이 가능하지만 레이첼의 경우는 질문만 100가지가 넘었다. 자신이 복제인간이란 사실을 모르냐는 데커드의 질문에 회장은 이제는 의심하기 시작했을 거라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고 반문했을 때 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이게 우리의 목표지." 이제 묵직한 주제의 심연으로 한 발짝 더 다가선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의 첫 번째 모델이 레이첼이었다. 인간과 동등한 사고 능력에다 감정까지 가진 넥서스 6보다 더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억"이다. 타이렐은 넥서스 6 모델이 가질 수 없는, 유년기부터 시작해서 성년기에 이르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기억들 - 자신의 조카의 기억들을 레이첼에게 주입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다면 이제 넥서스 6 후속 모델들은 감식이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데커드는 개프와 함께 리온이 거주했던 모텔을 찾아간다. 모텔 방을 조사하던 데커드는 욕조에서 비늘처럼 생긴 조그만 물건을 찾았고 책상 서랍 안에서 발견된 몇 장의 사진을 챙긴다. 개프는 예의 그 시니컬한 미소와 함께 종이로 접은 사람을 책상 위에 올려 둔다. 집으로 돌아온 데커드, 그런데 웬걸... 집 앞에서 레이첼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무시하고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레이첼이 말한다, 저는 복제인간이 아니에요! 집으로 레이첼을 들였고 레이첼은 자신의 기억을 이야기하며 엄마와 함께 찍었다던 어릴 적 사진을 보여 준다. 하지만 데커드는 그녀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유년기의 사소한 기억들을 줄줄 읊어댄다. 이식된 거요, 당신의 추억이 아니라 회장 조카의 기억이지... 아무 말 없이 덤덤한 표정만 짓던 레이첼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흘러내린다. 미안해진 데커드가 그녀를 위로하려 하지만 말없이 자신이 들고 온 사진만 한참을 바라보던 레이첼은 사진을 던져 버리고 데커드의 집을 나가 버린다. 그녀가 버린 사진을 바라보는 데커드, 사진에는 엄마와 어린 레이첼이 웃고 있다. <극장판>에서는 이 시점에서 데커드의 내레이션이 추가된다. 리플리컨트는 감정을 가질 수 없으며 그건 역설적으로 블레이드 러너도 마찬가지라 한다. 따라서 그들은 사진이 필요 없다. 그럼에도 리플리컨트가 왜 사진을 갖고 있을까? 리온도, 레이첼도... 데커드는 결론을 내린다, 그들이 사진을 갖고 있는 이유는 바로 "기억"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데커드가 찾아야 할 답에 대한 질문, 월드오프를 탈출한 리플리컨트들은 왜 타이렐 사에 침투하려 했을까? 로이가 제작된 해가 2016년이었고 영화의 시간은 2019년이기에 4년이라는 로이의 유효기간이 끝을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타이렐 사에 침투하고자 하는 목적은 결국 생명 연장이었다. 로이를 위시한 그들 모두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생명 연장을 위하여 어떻게든 자신의 창조주인 타이렐 회장에게 접근해야만 했다. 하지만 무작정 타이렐 사를 침투한 결과 두 명을 잃게 되었고 리온을 신입사원으로 위장시킨 잠입 시도 역시 보이트-캄트 테스트에 의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에 로이와 리온은 회장 타이렐을 만날 방법을 찾기 위해 리플리컨트 눈 제작자를 찾아갔고 그를 협박하여 기어이 접근 방법을 얻어낸다. 그 방법은 유전자 설계사 세바스찬(윌리엄 샌더슨 분)을 통하는 것이었다. 로이는 프리스로 하여금 세바스찬에게 접근하도록 했고 리온에게는 데커드를 찾아서 제거할 것을 지시한다. 자신들을 추적할 단서가 될 수 있는 사진이 그들의 숙소에 남아 있었고 리온이 그것을 가지러 왔지만 숙소를 뒤지는 데커드와 개프 때문에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프리스는 세바스찬의 집으로 향하고 리온은 데커드를 찾아 거리를 나선다.


   그렇게 레이첼이 떠나가고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데커드... 혼자서 이런저런 깊은 상념에 한참 빠져 있다. 이 시점에서 데커드의 정체성에 대한 커다란 논란을 야기시키는 문제의 유니콘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뒤에서 언급하기로 한다. 상념에서 빠져나와 현장에서 가져온 사진을 조사하던 데커드는 2차원 사진을 3차원으로 확대, 축소할 수 있는 장치인 에스퍼를 이용하여 리온의 방에서 가져온 사진을 분석한다. 사진 속에는 리온의 팔이 보이고 멀리 벽 쪽에 거울이 조그맣게 달려 있다. 데커드는 에스퍼를 통해서 거울에 반사된 조나를 찾았고 3차원 확대를 통하여 그녀의 귓쪽 뺨에 자리한 뱀 문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뱀 문신과 현장에서 주웠던 비늘 같은 물건... 그는 그것을 들고 거리의 야매 유전자 감식원에게 감식을 의뢰했다. 감식 결과 비늘은 일련번호가 매겨진 인조 뱀의 비늘이었고 데커드는 유흥업소에서 뱀 쇼를 하는 쇼걸을 찾아 나선다. 그곳에서 그는 살로메란 이름으로 뱀 쇼를 하는 여인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된다. 살로메를 기다리는 동안 여전히 레이첼이 마음에 걸리는 데커드, 전화를 해서 기분전환 겸 술 한잔을 하자고 그곳으로 나오라 했지만 레이첼은 거절했다. 그 사이 살로메가 등장했고 공연이 시작된다. 공연이 끝난 후 데커드는 의상실로 그녀를 찾아갔고 샤워를 마친 그녀의 왼쪽 뺨에서 뱀 문신을 확인했다. 눈치를 챈 조라는 도망쳤고 끈질긴 추격전이 시작된다. 한참을 추격한 끝에 도망가는 조라의 등 뒤로 총을 쏴서 겨우 그녀를 제거했다. 거리에서의 총격전과 피범벅이 된 등짝으로 나뒹구는 시신, 모여드는 사람들과 시끌벅적한 소동,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리온... 소식을 듣고 현장을 방문한 브라이언트 반장이 데커드의 수고를 치하하면서 말한다, 이제 넷 남았군. 데커드가 반문한다, 셋 남았소... 반장이 정색하며 다시 말한다. 넷이야, 방금 타이렐 사에서 레이첼이란 여자가 도망갔다더군... 반장을 수행하던 개프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반장이 떠났을 때 저 멀리서 레이첼의 모습이 보였다 곧 사라졌다. 데커드가 레이첼을 따라가던 중 누군가 그를 붙잡았다, 리온이었다. 한바탕 치열한 사투가 벌어졌고 육체적 능력으로 봤을 때 게임이 되지 않았기에 데커드는 일방적으로 얻어터진다. 리온의 손에 거의 죽을뻔한 순간, 한 발의 총성과 함께 리온의 이마 위로 커다란 구멍이 뚫린다. 쓰러지는 리온 뒤로 여전히 연기가 피어오르는 데커드의 총을 들고 있는 레이첼이 보였다. 레이첼과 함께 집으로 온 데커드, 레이첼이 질문한다, 일이라고요? 대답이 없는 데커드, 저도 죽일 건가요? 대답 없이 얼굴에 난 상처만 씻고 있는 데커드, 레이첼이 더 구체적으로 묻는다. 아무도 없는 북쪽으로 도망간다면 추적해서 날 죽일 건가요? 아니, 그럴 생각 없어, 생명의 은인이니까... 하지만 누군가 가겠지. 한 동안의 침묵... 그 침묵을 깨고 레이첼이 다시 질문한다, 자신의 제조일이나 수명 등과 관련된 기록을 봤느냐고... 이 질문에 데커드는 보지 못했다고 거짓으로 답했고 지쳐 잠이 든 것처럼 누워 눈을 감아버린다. 데커드의 과거를 담은 피아노 위의 사진들과 잠든 데커드를 한참을 바라보는 레이첼... 자신이 배운 기억이 없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그 소리에 눈을 뜬 데커드... 묶었던 머리를 풀어헤친 레이첼의 모습은 너무나 섹시하고 아름답다. 한 동안 서로를 마주 보다 레이첼은 벌떡 일어서서 집을 나서고자 했고 데커드는 그녀를 막아선다. 그리고 둘의 뜨거운 사랑이 시작된다. 그렇게 데커드는 인조인간을 사랑하게 된다. 물론 이 사랑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었을 것이다. 레이첼에 대한 설명하기 힘든 데커드의 느낌은 <극장판>의 경우 해리슨 포드의 내레이션으로 그가 무방비 상태의 조라를, 그것도 등 뒤에서 쏴 죽였을 때 느꼈던 자조적 감정과 더불어 함께 표현된다: 어느 리플리컨트에 대한 일상적 폐기가 보도되었고, 나는 뒤에서 여자를 쏘았다는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내 맘 속에 있는 어떤 느낌; 그 여자, 레이첼에 대한...


   프리스는 세바스찬의 집 앞에서 서성거렸고 세바스찬은 그녀를 집으로 들였다. 유전자 설계사 세바스찬 역시 암울한 도시의 아웃사이더였다. 친구도 없이 홀로 고독을 참아야 하는 그이기에 그는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인조 인형들을 만들어 그들을 친구 삼아 지낸다. 프리스를 쉽게 집으로 들인 것은 그녀의 미모도 한몫했겠지만 그런 그의 외로움이 더 크게 작용했으리라. 하지만 프리스는 명확한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을 함께 할 로이가 마침내 세바스찬의 집에 나타났다. 세바스찬은 매일 타이렐과 체스를 두고 있으며 그걸 이용해서 타이렐에 접근하기로 한다. 타이렐 사에서 엘리베이터에 올라 탄 세바스찬과 로이. 침대에 누워 있던 타이렐은 갑자기 치고 들어온 체스 공격에 당황한다. 체스판을 보며 방어를 했지만 다시 치명적인 한 수를 던지는 세바스찬. 그 수는 영민한 머리를 이용한 로이의 훈수로 가능했다. 당황한 타이렐은 자신의 방으로 올라오라고 했고 그렇게 로이는 타이렐에게 접근하게 된다. 마침내 탕자가 돌아왔다. 로이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수명을 연장해달라 요청했다. 타이렐은 그럴 수 없다고 한다. 가능한 모든 수를 써봤지만 치명적인 부작용만 생겼다고 했다. 로이는 천천히 타이렐의 얼굴을 감싸며 아버지, 아버지...를 반복한다. 그리고 타이렐의 얼굴을 짓누르고 그의 두 눈을 손가락으로 파내 죽여 버린다. 잔뜩 겁을 먹고 도망가는 세바스찬, 여유롭게 그를 쫒아가는 로이... 


   회장의 사망 소식에 데커드는 레이첼을 집에 두고 현장으로 나선다. 도중에 세바스찬의 집을 조사해야 했고 그곳으로 먼저 갔다. 거기에는 프리스가 있었고 프리스의 공격에 데커드는 또 한 번 위기를 맞는다. 위안용으로 제작되었다지만 프리스 역시 일반 인간보다 우월한 신체적 능력을 보유한 리플리컨트였기에 데커드는 수세에 몰린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다 운 좋게 총을 쏴서 프리스를 제거했다. 세바스찬의 집으로 돌아온 로이는 연인의 죽음에 분노한다. 이제 데커드와 로이의 최후의 싸움이 시작된다. 하지만 결투는 일방적이다. 로이는 프리스에 대한 복수로 데커드를 천천히 몰아가서 죽이려는 듯 그에게 도망칠 기회를 준다. 도망치던 데커드는 창문을 통해서 겨우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이미 로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데커드는 사력을 다해 건너편 빌딩으로 점프를 했다. 점프가 짧았기에 건너편 빌딩 옥상의 구조물에 의지해 아슬하게 매달린 데커드... 한 손에 비둘기 한 마리를 움켜쥔 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매달린 데커드를 보던 로이는 단숨에 건물 사이를 건너뛰었고 위기에 처한 데커드 앞에 우뚝 섰다. 공포 속에서 사는 기분이 어떤가... 그게 노예의 기분이야! 로이는 비장하게 미소를 짓는다. 손에 힘이 점점 빠지는 데커드... 한 손을 놓치더니 기어이 나머지 손마저 구조물에서 떨어진다. 그 순간, 로이가 떨어지는 데커드의 손을 잡았고 그를 들어 올려 옥상 위에 내동댕이쳤다. 죽기 일보 직전에 로이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살아난 데커드는 공포에 절어 다가오는 로이를 피해 엉덩이를 밀며 뒤로 물러났다. 로이는 데커드 앞에 주저앉아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상상도 못 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 참가했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봤어. 기억이... 모두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유효 기간이 다 한 로이는 앉은 채로 조용히 눈을 감았고 고개를 떨궜다. 그가 잡고 있었던 비둘기는 퍼드덕 날아올라 빗줄기를 퍼붓는 어두운 하늘을 향했다. 처연하고도 장엄한 죽음,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죽음 앞에서 데커드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앉은 채로 비장하게 눈을 감아버린 로이 뒤로 스피너 한 대가 떠오른다. 거기서 내린 개프, 솜씨가 좋군, 이제 끝난 건가? 데커드가 대답한다, 끝났어... 개프는 말없이 데커드의 권총을 던져 주고는 돌아서서 자신이 타고 온 스피너 쪽으로 걸어간다. 하지만 가다 말고 몸을 돌려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진다, 그 여자... 죽게 돼서 안됐네, 하긴, 누군 영원히 사나?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듯한 데커드의 표정... 그렇다, 레이첼을 잊고 있었다. 다급하게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레이첼은 침대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날 사랑해? 사랑해요. 나를 믿어? 믿어요. 데커드는 경계를 하며 레이첼을 데리고 조심스레 방을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라는 신호를 보냈고 다급히 레이첼이 엘리베이터로 향할 때 그녀의 힐에 차이는 반짝이는 무언가를 데커드는 발견했다. 천천히 그것을 집어 든 데커드, 그것은 은빛 종이로 접은 유니콘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개프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개프가 자신의 집을 다녀갔고 그럼에도 레이첼을 살려두는 대신 종이로 접은 유니콘을 남겨 둔 것이다. 데커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레이첼이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선다. 





   영화는 데커드와 레이첼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마자 순간 암전으로 전환되면서 빠른 템포의 엔딩 테마와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는 데커드와 레이첼의 사랑의 탈주를 의미하지만 관객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도망친 그 둘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감독판>과 <최종판>은 그냥 그렇게 마무리되며 이런 식의 열린 결말을 던짐으로써 이후의 둘의 운명을 순전히 관객들의 상상력에 맡겨 버린다. 그리고 35년이 지나 <최종판>을 정식으로 잇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나왔고 둘의 운명은 이 영화에서 확인하면 될 터이지만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렇게 열린 결말을 보여 주는 판본이 바로 <감독판>과 <최종판>이다. 반면에 <극장판>은 추가적인 결말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앞서 언급했던 세 가지 차이점 중의 하나다.

 

   리들리 스콧은 이렇게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고자 했지만 제작사 워너 브로스는 입장이 달랐던 것 같다. 당시 관객들은 동화처럼 후에 그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식의 결말을 보고 싶어 한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둘이 안전하게 탈출해서 행복하게 살 거란 확신을 관객들에게 심어줘야 했을 것이고 그것은 할리우드식 결말이어야 했을 것이다. 위 사진은 1982년 <극장판>의 엔딩 장면이다. <감독판>과는 다르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함께 집을 나선 두 사람은 성공적으로 추적을 따돌리고 LA를 벗어나는 장면이 추가되어 있다. 더군다나 너무나 친절하게도 데커드의 내레이션과 함께다: 개프가 다녀갔고 그녀를 살려 주었다. 4년이라고 개프는 알고 있었지만 그가 틀렸다. 레이첼은 특별하다고, 그렇기에 4년이라는 제약은 없다고 타이렐이 내게 들려주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함께 할지 난 모른다. 누군들 알겠는가? 리들리 스콧이 끔찍하게 생각했을 이 장면은 제작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고집이었고 영화의 흥행을 고려한 할리우드식 해피 엔딩을 강제한 것이다. 사실 영화는 시종일관 음습하고 삭막한 디스토피아적 도시를 어두운 톤으로 묘사했고 그 결과로 영화 내내 밝은 대낮의 장면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밝은 햇살과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뜬금없이 드러내도록 했으니, 게다가 구구절절한 부자연스러운 설명과 더불어 명확한 결말을 강제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를 강요했으니 과연 스콧이 <감독판>이나 <최종판>에서 이 부분을 들어낼 만도 하다. 


   <극장판>과 <감독판>의 또 다른 중요한 차이 중 하나가 다음의 유니콘 장면 존재 여부다. 자신이 리플리컨트인지 여부를 따지러 온 레이첼에게 매몰차게 그 사실을 확인시켜 그녀를 떠나가게 만든 후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상념에 젖어 있는 데커드. 피아노 앞에 앉아서 오만가지의 생각들이 들고일어나기를 반복했겠지만 순간 데커드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이미지가 펄떡이는 유니콘의 등장 씬이며 이 씬은 <극장판>에는 존재하지 않고 <감독판>에서 리들리 스콧이 의도적으로 추가 삽입한 장면이다.


   흔히 꿈속의 장면이라고 하는데 리들리 스콧이 밝힌 대로 꿈이 아니라 데커드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념 중 언뜻 스쳐 지나는 하나의 이미지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이 유니콘 씬은 레이첼이 그렇게 떠나고 난 뒤 혼란스러운 데커드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수만 가지 상념들 중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것이기에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왜 유니콘인가? 여기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과 함께 수많은 해석들이 쏟아졌지만 해석의 대부분은 데커드 역시 리플리컨트였다는 것에 대한 암시로 모아진다. 다시 말해 이 장면은 데커드의 정체성 논란을 촉발시키는 거대한 떡밥으로 작용하는데 이는 마지막에 개프가 레이첼을 죽이지 않고 대신 남겨 둔 종이 유니콘과 연결되어 커다란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언제나 시니컬한 이야기를 떠벌리는 개프는 영화에서 세 가지의 종이 접기를 선보이는데 위 그림처럼 닭, 사람 그리고 유니콘이다. 개프는 이렇게 종이 접기를 통해서 데커드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동시에 시종일관 데커드를 무시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한다. 리온이 보이트-캄프 테스트 중 데커드의 후임 홀든을 죽이는 사건이 발생한 후 반장은 은퇴한 데커드를 불러서 이 사건을 맡을 것을 요구하고 데커드는 계속 거부한다. 이때 개프는 종이로 만든 닭을 책상 위에 올려 둔다. 닭은 영어로 Chicken인데 여기에는 '겁쟁이'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개프는 닭을 접음으로써 데커드는 겁쟁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한다. 리온의 숙소를 조사하면서 개프는 두 번째로 사람 모양의 종이 접기를 선보이는데 특이한 점은 사타구니 위로 툭 튀어나온 무엇이 있고 이것은 누가 봐도 발기된 남성의 성기다. 따라서 개프는 이것을 통해서 데커드가 사랑에 빠졌음을 암시한다고 한다. 마지막 유니콘 종이 공작은 앞서 언급한 대로 자신이 다녀갔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첼을 살려 줬음을 확실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 세 개의 종이 접기를 통해서 개프는 데커드의 심리 상태와 레이첼과의 관계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내비치는 것으로 해석되어, 특히 유니콘의 꿈과 마지막 유니콘 종이 접기가 연결되면서, 그리고 유니콘이라는 동물이 갖는 전설적 해설이 더해지면서 데커드 역시 자신의 기억을 포함하여 꿈, 무의식까지 모두 다른 누구에게 노출되어 있다는 것으로까지 확대 해석된다. 이러한 해석의 종착지는 이 유니콘 장면이 데커드가 리플리컨트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의 신빙성에 못을 박아버린 것이 리들리 스콧의 인터뷰인데,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어느 인터뷰에서 스콧은 유니콘 장면 삽입과 관련하여 데커드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스콧은 이 인터뷰에서 데커드가 리플리컨트였음을 인정했고 유니콘 장면 역시 그것을 암시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답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스콧이 이 인터뷰를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장판>이 이미 출시되었음에도 <감독판>과 <최종판>까지 별도로 출시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열린 결말을 위해 마지막 장면을 들어내고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구구절절한 내레이션마저 모두 제거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다양한 해석들을 유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작품에 대한 분분한 해석과 열띤 토론이 난장처럼 펼쳐지는 마당에 그냥 떡밥으로 유니콘 장면을 툭 던져 그 난장의 파장을 더욱더 키우면서 스콧은 그저 그런 해석의 잔치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즐기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그는 <감독판>이나 <최종판>의 출시 의도와는 다르게 감독이라는 기원의 권위로써 자신의 작품에 대한 수많은 해석들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고 하나의 정답을 내려 결론을 못 박아버린 꼴이 되었다.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의 제목에 주목해 보자. 직역하자면 "칼날 위를 달리는 자" 정도가 되겠다. 이는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경계를 가르는 칼의 날 위에 위태롭게 서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블레이드 러너의 존재론적 지위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그 균형이 무너져 한쪽으로 기울면 리플리컨트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기운다면 인간이 되는, 어느 쪽도 아니되 양 쪽 모두가 될 수 있는 모순된 정체성을 담지한 존재일 것이다. 작품에 대한 해석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어야 한다. 롤랑 바르뜨는 자신의 책 <저자의 죽음>에서 한 작품에 대한 저자의 의도를 정답으로 보는 근대적 관점에 철퇴를 가했다. 작품의 해석에 있어서 저자를 죽임으로써, 그의 자리를 지움으로써 수많은 다양한 해석들이 창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기에 리들리 스콧의 그런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데커드의 정체성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리라. 물론, 스콧이라는 저자의 의도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인공 해리슨 포드는 데커드가 리플리컨트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해리슨 포드의 이 주장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해석이며 수많은 다른 가능성들 중 하나다. 필자의 개인적 견해 역시 영화의 앞, 뒤 흐름으로 판단했을 때 데커드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하나의 가능한 해석을 던지고 싶다. 예술 작품이 작품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그것에 정답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포드의 견해도, 필자의 견해도 정답이길 바라는 다양한 해석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며 심지어 스콧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저자의 의도 역시 롤랑 바르뜨에 따르자면 정답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데커드의 정체성 여부에 대해서는 <극장판> 마지막 장면에서 데커드가 읊은 이 내레이션이 여전히 유효한 답이 될 것이다; 누군들 알겠는가?


   <극장판>과 <감독판>의 마지막 차이점은 <극장판>의 경우 이해력이 딸리는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친절하게도 중간중간에 수많은 해리슨 포드의 내레이션이 존재하지만, <감독판>과 <최종판>에서는 그것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해력이 딸리는 관객'이란 표현은 말 그대로 제작사가 관객을 그런 수준으로 평가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인데 그것은 동시에 이런 내레이션들이 그만큼 사족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했던 <극장판>의 마지막 탈주 장면에서의 내레이션이 그러하다. 또한 누가 봐도 데커드가 전직 킬러임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판>에서는 데커드가 월드오프 이주 광고를 보며 자신을 소개하는 다음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문에는 킬러에 대한 광고는 실리지 않는다. 이게 내 직업이었다. 전직 경찰, 전직 블레이드 러너, 전직 킬러. 그리고 데커드가 개프와 함께 리온의 숙소를 조사할 때도 단순히 관객의 집중력만 흩뜨릴 뿐인 다음의 사족적인 내레이션이 동반된다: 리온이 홀든에게 진짜 주소를 알려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유일한 단서였으므로, 일단 확인하기로 했다. 욕조 안에 무엇이 있었든 간에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리플리컨트는 비늘이 없다. 그럼 가족사진은? 리플리컨트는 가족도 없었다. 사실 주인공 해리슨 포드는 이러한 내레이션을 끔찍이 싫어했지만 제작사의 입김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것들이 제거되기를 열망했지만 결국 <극장판>에서는 그대로 실렸고 10년이 지난 1992년이 되어서야 <감독판>을 통해서 이런 그의 소망이 비로소 실현되었다. 사실 <감독판>이나 <최종판>을 보면서 장면 장면들의 암시나 연결들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리고 이후에 <극장판>을 본다면 포드의 내레이션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극장판>을 비판하면서도 <감독판>의 해석, 심지어 데커드의 정체성에 대한 유니콘 해석에도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써 <극장판>의 내레이션이 사용된다는 점에서도 더욱더 그러하다. 하지만 너무나 친절한 이런 부질없는 추가 장치들이 결국에는 영화의 이해를 돕는다기보다는 다양한 해석들을 미리 차단해버리고 그 결과 관객들의 상상력을 막아버리는 것으로 귀결된다. 영화 자체의 측면에서도 관객들이 각 장면 장면에 몰입하는데 불쑥 끼어들어 훼방을 놓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그렇기에 스콧은 아마도 <극장판>에서 이것들을 과감히 제거해버렸으리라 예상한다. <극장판>의 이 내레이션들은 필자 역시 추가적인 설명을 위해 본문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글 마지막에 이것들을 별도로 정리해서 게시해 두었기에 얼마나 친절한 해설인지 직접 확인해 보시기를...

 



   이상 <극장판>과 <감독판> 사이의 주요 차이점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언급하기로 하고 이제 <블레이드 러너>라는 영화 자체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해 보고자 한다. 영화의 스토리는 처음에는 난해해 보이겠지만 사실 그리 복잡하지 않다. 영화를 한, 두 번 더 보게 되면 간단하게 영화의 줄거리를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구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렇게 단순한 구성의 영화가 왜 그리도 후대에 추앙받는 명작이 되었을까?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영화의 심미적 측면이 크다.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대로 지금 봐도 여전히 엄지를 추켜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영화의 미장센이 무려 37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더욱더 찬탄을 금치 않을 수 없을 것이다. 37년 전에 그린 미래사회의 화려함과 그 이면의 암울함,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의 찬란함과 아래에서 실감할 수 있는 어둡고 습기 가득한 비루함의 대조가 그려내는 테크누아르적 디스토피아의 이미지는 그저 놀랍기 그지없다. 만약 근세대에 태어난 이들이 지금 이 영화를 본다면 이러한 디스토피아적 미장센에 대하여 매우 식상하고 진부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놓치는 것은 이런 식상함과 진부함들이 이 영화에 기원을 두고 그것을 반복해온 후대의 영화들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결과로서의 식상함과 진부함을 있는 그대로 허용한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의 미장센은 여전히 빛이 바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미학적 측면의 놀라움은 지금까지도 찬양받고 추앙되기에 여기서는 영화의 덕후들을 양산한 두 번째 측면에 좀 더 주목하고자 한다. 두 번째 측면은 바로 이 영화가 던지는 철학적 화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라는 이 영화는 은연중에 적지 않은 철학적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인간과 복제인간의 문제는 그 자체로 플라톤의 이데아부터 벤야민, 그리고 장 보드리야르에까지 이르는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 문제는 앞서 언급한 이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한데 저자의 해석을 원본이라 하고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복제품이라 한다면 저자의 해석을 뛰어넘는 해석이 존재하지 말란 법이 없다. 다시 말해 원본을 능가하는 복제품이라는 이상한 역설을 불러오는데 생물학적으로 이미 인간을 넘어선, 그리고 레이첼처럼 기억까지 갖춰진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리플리컨트라면 이미 복제품이 원본을 넘어서고 있으며 이런 상황이라면 복제품의 기원을 찾고자 하는 시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또한 리온이 자신의 창조주 타이렐을 죽이는 것을 친부 살해와 오이디푸스 신화, 그리고 이와 연계되는 수많은 철학적 논의들을 연결하여 또 다른 분석들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리온이 타이렐의 눈을 찔러 죽이는 장면을 오이디푸스 신화와 견주어 새로운 탈주로 보고 이것을 들뢰즈와 가타리의 <안티-오이디푸스>와 연계시키는 과한 해석도 존재한다. 아니만 단순하게 데커드나 세바스찬의 상황에 착목했을 때 과학 기술 문명의 놀라운 발전과 더불어 언제나 제기되는 물화(物化)의 문제, 인간 소외의 문제도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들을 제공하는 영화가 <블레이드 러너>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영화의 전개를 따라가면서 영화가 내세우는 주요 화두의 변화를 착목해 보고자 한다.


스킨잡(Skinjob), 스티브 시몬스 감독, 단편 애니메이션, 2017

   이 영화에서 제일 먼저 드러나는 화두는 "인간 vs 리플리컨트"의 대립 구도다. 그리고 이 구도는 주인과 노예, 자본과 노동, 착취와 피착취라는 전형적인 지배-피지배 계급 구도를 상정할 수 있다. 이런 구도라면 인간에 의해서 착취당하고 고통받는, 인간이 아니라 단순한 물건으로 취급되는 리플리컨트를 떠올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반장 브라이언트가 리플리컨트를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이런 관계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브라이언트는 리플리컨트를 "스킨잡(Skinjob)"이라 부르는데 스킨잡은 껍데기뿐인 일꾼을 의미하는 영화 상의 신조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여전히 경멸의 의미를 담아 흑인을 부를 때 사용되는 말인 "니그로(Nigger)"와 동일한 위상을 지니는 단어이기도 하다. <극장판>에서는 해리슨 포드의 내레이션을 통해 다음과 같이 브라이언트의 인물됨을 친절하게 묘사해 준다: 스킨잡. 브라이언트는 리플리컨트를 그렇게 불렀다. 아마도, 역사책에 나온다면 그는 흑인을 니그로라고 불렀을 그런 부류의 경찰이다. 스킨잡은 리플리컨트의 처형을 폐기(Retirement)라 부르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리플리컨트에 대한 이런 브라이언트의 생각이 당시 대중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을 것이다. 즉, 리플리컨트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도구나 장치일 뿐 인간이란 개념 자체를 논할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다. 그렇기에 리플리컨트의 착취와 예속은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하더라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는 그리스 시대의 성인들이 노예를 사람 취급하지 않는 것이나 흑백 차별 시대의 백인이 흑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과 동일한 선상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그들은 인간이 아니냐고? 아니다, 당시의 시대 인식은 노예나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고 그저 물건일 뿐이었다. 영화에서의 리플리컨트 역시 마찬가지였고 철저한 피착취 계급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리플리컨트 vs 블레이드 러너의 구도로 출발하면서 폭동, 비행선 탈취, 몰살과 더불어 타이렐 사 침투와 보이트-캄트 테스트 요원 살해 등 리플리컨트가 벌이는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로 인해 자연스레 리플리컨트는 악당 역할을 맡게 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러한 사건을 벌이게 된 그들의 처지와 입장 - 탄압과 배제, 차별과 소외의 대상으로서의 리플리컨트에 조금씩 공감하게 되면서 그 구도는 점차 바뀌게 된다. 바로 위에 링크를 걸어 둔 유튜브 영상은 2017년에 스티브 시몬스(Steve Simmons)라는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스킨잡(Skinjob)>이라는 제목의 단편 애니메이션인데 이 애니는 1982년 <블레이드 러너>를 인간 중심이 아닌, 철저하게 리플리컨트의 입장에서, "로이"의 시각에서 다시 만든 영화다. 동일한 구성의 내러티브임에도 관점을 리플리컨트를 중심에 두고 보게 되면, 인간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는 또 다른, 매우 슬프고 애잔하며 가슴 저미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내러티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영화는 이렇게 "억압되고 착취받는 리플리컨트 vs 지배자 인간"이라는 구도로 시작하지만 이런 구도에 관습적으로 뒤따르게 되는 리플리컨트 해방 투쟁이라는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대신 레이첼이라는 개별 리플리컨트를 내세워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건드린다. 이러한 터치는 인간의 정의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으로 이어지는데 영화에서는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으로써 기억의 문제를 투척한다. 우리가 떠올리게 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은 "사고"의 가능성이다. 사고란 것은 논리와 합리성에 근거를 둔 이성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런 이성의 영역에 못지않게 인간의 조건을 전제하는 것은 감각과 감정, 직관에 근거한 감성의 영역이다. 그리고 이 두 영역을 위한 필수 조건이 기억일 것이다. 반복된 학습을 통해서 인식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AI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이런 학습은 기억을 전제로 한다. 마찬가지로 추억, 정겨움, 회한, 아쉬움 등의 개념을 가능케 하는 감정들 역시 경험의 축적으로서의 기억을 요구하며 이러한 기억을 통해서 소위 정체성이란 것을 정립한다. <극장판>에서는 리플리컨트의 기억에 대해서 내레이션을 통해 좀 더 소상히 언급하고 있다: 타이렐은 철저하게 레이첼을 속였다.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어머니에다, 한 번도 돼본 적이 없던 딸의 스냅사진까지 철저하게 말이다. 리플리컨트는 감정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이는 블레이드 러너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리온의 사진도 레이첼의 것처럼 틀림없이 가짜였다. 왜 리플리컨트가 사진을 모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레이첼과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들은 기억이 필요했던 것이다. 리플리컨트의 경우 생각하고 사고하며 감정도 갖고 있고 그렇기에 현재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개선을 꿈꾼다. 이 상태로도 리플리컨트를 인간으로 부르기에 별로 부족하지 않아 보이지만 이제 더 나아가서 자신을 고유한 자신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억마저 주어졌다. 그렇다면 이미 인간으로서의 조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타이렐이 이야기하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리플리컨트는 어쩌면 자신이 리플리컨트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인간이라고 확신하는 리플리컨트가 아닐까?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리플리컨트를 당연히 '인간'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간이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 것인가?


   하지만 영화는 이 화두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방향을 튼다. 기억의 문제는 단지 밑밥일 뿐이다. 영화는 로이라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리플리컨트를 내세워 인간에 대한 정의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정의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자신을 죽이려던 "인간"의 목숨을 살려주고 자신은 그렇게 처연하게,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리플리컨트". 그런 비장하고도 장엄한 죽음 앞에서 데커드는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아쉽게도 <극장판>에서는 이 죽음에 대한 데커드의 감정을 내레이션으로 직접 표출하고 있다: 그가 왜 내 목숨을 구해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 그는 과거의 어느 순간 보다도 더 삶을 사랑했던 거 같다. 자신의 삶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나의 삶을... 그가 알고자 했던 전부는 나머지 우리들이 찾고 있는 대답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얼마나 머무를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기 앉아서 그가 죽는 것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로이의 죽음... 이 부분이 <블레이드 러너>의 실제적인 질문을 담고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라는 슬로건을 내건 타이렐의 인간다움은 생물학적 규정의 인간이다. 그렇다면 인간보다 더 뛰어나고 강인한 리플리컨트라면 "더 인간답다"라는 의미에 차고 넘칠 정도로 부합한다. 하지만 여기서 던지는 "더 인간답다"라는 의미는 이런 생물학적 의미의 질문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무엇에 대한 물음이다. 로이는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죽음을 맞이했고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아니라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사람이라고 다 인간이냐?"라고 말들 한다. 우리 인간사에는 인간 같지 않은 인간, 인간 말종들이 널리고 널렸다. 심지어 이런 인간까지 인간이라고 불러야 하나라고 자문하는 경우도 많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리플리컨트의 존재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 질문이나 단순히 인간의 주체성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속성, 즉 윤리학적인 물음까지 포함하는 인간의 정의를 화두로 던지고 있다.


   이쯤에서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필자의 기나긴 개인적 소회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영화가 던지는 주제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어찌 보면 도덕 교과서적인 결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 더 나아가서 리플리컨트와 같은 인간적인 존재들까지 고려한다면 결국 개별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인간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고 할 때에는 인간과 인간, 나와 타자라는 관계항들로 구성되는 촘촘한 관계망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개별적 인간들을 이어주는 관계라는 측면들을 고려한다면, 아무리 윤리적인 문제를 배제하고 냉철하게 그 관계만을 바라보려 하면 할수록 윤리의 문제는 더더욱 요구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이니라 이 정의에 대한 답을 검토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이 영화는 인간에 의해 물건으로 취급당하는 리플리컨트의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죽음을 내세워 이렇게 질문을 달리 하고 있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극장판> 내레이션 정리:


=> 월드오프 광고가 떠 다니는 거리에서 데커드가 혼자 신문을 보면서:

They don't advertise for killers in the newspaper. That was my profession. Ex-cop, ex-blade runner, ex-killer.

* 신문에는 킬러에 대한 광고는 실리지 않는다. 이게 내 직업이었다. 전직 경찰, 전직 블레이드 러너, 전직 킬러. 


=> 거리의 일본식 노점 식당에서:

Sushi, that's what my ex-wife called me. Cold fish.

* 스시(津市, つし), 전처가 나를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차가운 생선(냉담한 사람이라는 의미).


=> 반장의 호출로 개프와 함께 사이퍼를 타고 경찰서로 이동하면서:

The charmer's name was Gaff. I'd seen him around. Bryant must have upped him to the Blade Runner unit. That gibberish he talked was city-speak, guttertalk, a mishmash of Japanese, Spanish, German, what have you. I didn't really need a translator. I knew the lingo, every good cop did. But I wasn't going to make it easier for him.

* 말은 번지르한 이자는 개프였다. 여기저기서 그를 본 적이 있다. 아마 브라이언트가 그를 블레이드 러너 유닛에 합류시켰을 것이다. 횡설수설 그가 떠들어대는 말은 당신들도 한 번쯤은 해봤을 수 있는, 일어, 스페인어, 독일어가 뒤죽박죽으로 섞인 도시 밑바닥 은어, 저속어였다. 정말로 통역이 필요 없었다. 웬만한 경찰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나는 그 말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맘 편하게 날 대하도록 내버려두진 않았다.


=> 반장 사무실에서 반장을 만나 앉으면서:

Skin jobs. That's what Bryant called replicants. In history books he's the kind of cop that used to call black men niggers.

* 스킨잡, 브라이언트는 리플리컨트를 그렇게 불렀다. 아마도, 역사책에 나온다면 그는 흑인을 니그로라고 불렀을 그런 부류의 경찰이다.


=> 타이렐 회장을 만나러 개프와 함께 타이렐 사로 향하면서:

I'd quit because I'd had a belly full of killing. But then I'd rather be a killer than a victim. And that's exactly what Bryant's threat about little people meant. So I hooked in once more, thinking that if I couldn't take it, I'd split later. I didn't have to worry about Gaff. He was brown-nosing for a promotion, so he didn't want me back anyway.

* 내가 그만둔 것은 죽이는 것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희생자보다 킬러 쪽이 좋았다. 브라이언트가 비열한 인간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도 바로 그 점에 있었다. 그래서 일을 맡지 않을 경우, 나중에 후한이 생길 걸 고려해, 한번 더 코를 꿰 논 것이다. 개프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승진하기 위해 알랑거리고 있었으므로, 어차피 내가 돌아오는 걸 원하지 않았다.


=> 사건 조사를 위해 개프와 함께 리온의 숙소에 도착해서:

I didn't know whether Leon gave Holden a legit address. But it was the only lead I had, so I checked it out. Whatever was in the bathtub was not human. Replicants don't have scales. And family photos? Replicants didn't have families either.

* 리온이 홀든에게 진짜 주소를 알려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유일한 단서였으므로, 일단 확인하기로 했다. 욕조 안에 무엇이 있었든 간에 인간의 것은 아니었다. 리플리컨트는 비늘이 없다. 그럼 가족사진은? 리플리컨트는 가족도 없었다.


=> 데커드의 숙소에서 레이첼이 바닥에 던져버린, 엄마와 찍었다는 사진을 주워 올리면서:

Tyrell really did a job on Rachael. Right down to a snapshot of a mother she never had, a daughter she never was. Replicants weren't supposed to have feelings. Neither were blade runners. What the hell was happening to me? Leon's pictures had to be as phony as Rachael's. I didn't know why a replicant would collect photos. Maybe they were like Rachael. They needed memories

* 타이렐은 철저하게 레이첼을 속였다.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어머니에다, 한 번도 돼본 적이 없던 딸의 스냅사진까지 철저하게 말이다. 리플리컨트는 감정을 가질 수는 없었다. 이는 블레이드 러너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리온의 사진도 레이첼의 것처럼 틀림없이 가짜였다. 왜 리플리컨트가 사진을 모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레이첼과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들은 기억이 필요했던 것이다.


=> 등에 총을 맞고 쓰러진 조라의 시체를 바라보면서:

The report would be routine retirement of a replicant which didn't make me feel any better about shooting a woman in the back. There it was again. Feeling, in myself. For her, for Rachael.

* 어느 리플리컨트에 대한 일상적 폐기가 보도되었고, 나는 뒤에서 여자를 쏘았다는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내 맘 속에 있는 어떤 느낌; 그 여자, 레이첼에 대한...


=> 앉은 채로 죽은 로이 앞에서:

I don't know why he saved my life. Maybe in those last moments he loved life more than he ever had before. Not just his life, anybody's life, my life. All he'd wanted were the same answers the rest of us want. Where did I come from? Where am I going? How long have I got? All I could do was sit there and watch him die.

* 그가 왜 내 목숨을 구해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 그는 과거의 어느 순간 보다도 더 삶을 사랑했던 거 같다. 자신의 삶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나의 삶을... 그가 알고자 했던 전부는 나머지 우리들이 찾고 있는 대답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얼마나 머무를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기 앉아서 그가 죽는 것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 도시를 탈출하여 레이첼과 함께 도주하는 사이퍼 안에서:

Gaff had been there, and let her live. Four years, he figured. He was wrong. Tyrell had told me Rachael was special: no termination date. I didn't know how long we had together, who does?

* 개프가 다녀갔고 그녀를 살려 주었다. 4년이라고 개프는 알고 있었지만 그가 틀렸다. 레이첼은 특별하다고, 그렇기에 4년이라는 제약은 없다고 타이렐이 내게 들려주었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함께 할지 난 모른다. 누군들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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