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마음을 안아주는 기술

by 산에태양

50대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일이 아니다.
그 나이 즈음부터 사람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단단해지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이전보다 훨씬 더 쉽게 흔들린다.
책임이 많아져서 그런지, 버티는 힘은 늘었지만 상처받는 마음의 속도는 더 빨라진다.
그래서인지 요즘 나는 나보다 인생 경험이 적은 후배들이나 젊은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안아줘야 하는지 자주 고민하게 된다.

한 사람의 상처를 이해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섬세한 일이다.

프랑스 철학자 폴 발레리가 말했다.
“오해란, 다시 한 번 숙고하고 또 숙고한 끝에 도달한 새로운 오해일 뿐이다.”
결국 우리는 상대를 이해한다고 믿지만,
그마저도 나의 경험과 관점이 만든 해석일 뿐이다.
이 말을 되뇌면 후배들을 대할 때, 혹은 내 아이를 대할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정답’이라는 태도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20대, 30대이던 시절보다 시대는 훨씬 빠르게 변하고,
그 속도에 밀리지 않으려다 보니 마음도 금방 지쳐 버린다.
그렇기에 50대가 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안아주는 기술을 익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조금 더 오래 살아본 사람으로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우리는 성과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이뤘지만
결국 손에 남은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명함에 적힌 직함도, 성과지표도, 한때의 성취감도
세월이 지나면 결국 희미해진다.
하지만 끝까지 남아 있는 하나는 가족과 진실한 친구다.
폭우가 내릴 때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도,
내가 무너질 때 손을 잡아주는 사람도,
결국은 그들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잊는다.
가족과 친구가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가장 마지막에 떠올린다.
일이 먼저고, 성취가 먼저고, 책임이 먼저였던 수십 년의 습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야 안다.
사람을 안아주는 기술의 출발점은
내 곁의 사람들을 먼저 안아주는 데 있다는 것을.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뛰고,
똑같은 방식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지면서
어쩌면 사람들은 더욱 지쳐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자기만의 속도는 게으름으로 오해받기 일쑤다.

하지만 내가 50대에 들어와 보니
오히려 반대로 보인다.
평생을 남들과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보다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
더 단단해지고 더 깊어지더라.

영국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는 말했다.
“인생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나보다 어린 이들에게 특히 전해주고 싶다.
너무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다른 사람의 길을 부러워할 필요 없다고.
너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도 된다고.
세상은 그걸 게으름이라 말할지 몰라도
결국 그 길은 너를 가장 멀리 데려다 줄 테니까.

50대가 되니 비로소 이해한다.
사람을 안아준다는 것은 조언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불안을 덜어주는 것도,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마음이 흔들릴 때
그들의 속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괜찮다, 한 번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말해주는 일이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온 시대보다 훨씬 복잡한 시대를 버티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어른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자신의 경험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은 흔들림조차 존중해 주는 것이다.

지친 마음을 안아주는 기술은
나이를 먹었다고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배워야 하는 기술이며,
경험보다 더 필요한 것은 따뜻한 시선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그 기술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오랜 세월 성과만을 바라보고 달렸던 깨달음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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