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불사의 동백

by 김도형



고속열차가 벡스코 역을 지나

길게 뻗어 나가는 교각 아래를 지나
아파트 단지를 지나 올라가면
산아래 올망졸망한 작은 집들이 나타나고
길은 가파른 듯 가볍게 파도친다



산기슭의 동네를 뿌리치고 포장도로를 올라서면
어느덧 사람의 흔적은 사라지고

바람과 물과 새소리만 들려 온다
길은 왼쪽의 높은 언덕과 오른편의 깊은 계곡

사이로 이어진다



예전의 이 길은

늙은 승려 혼자 지팡이를 끌고 다니던 오솔길이었으리


여름날 아침에는 이슬로 발목이 젖고
가을에는 색동 빛으로 물든 낙엽이 쌓이고
초겨울에는 서리가 내려 하얗게 소스라치던

숲길이었으리


그리고 봄이면 오늘처럼 붉은 동백이 수 천의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매달렸다가

처연히 뚝뚝 떨어지고 말았으리라





계곡을 막은 철망에는 이미 세상을 뜬 시인들의

낡은 글귀들이 매달려 흔들리고

두툼한 고목 아래에는 어김없이 돌들이 쌓여 있다


돌과 돌들이 쌓였다 무너지고 무너졌다 다시 쌓여

무덤 같은 탑이 솟아 올랐다





절 입구의 지장보살은 주먹만한 중생을 끌어안고

위엄 있는 미소를 짓는다
앞의 녹슨 복전함은 지나가는 객을 붙들고

몇 걸음 위로는 약수가 돌 항아리에 넘쳐 흐른다



멀리

대웅보전을 돌면 금동 관세음보살이 일어나서

손에 든 약병을 기울이고

또 한손으로는 시들지 않는 꽃송이로

향기를 지어낸다



동백화는 어디에도 피어있다
오르는 길에도 내려가는 길에도
산사의 탑에도 용왕의 머리 위에도 피어있다


붉은 입술 사이로 샛노란 혀를 내밀어 속삭이는 꽃
진초록을 한철 밀어내고 찐득한 애상을 빚어내는



산그늘 짙어지고
빗방울 후드득거리는데
바닥에 고이 내려앉은 동백


그 낙화를 마주하는 가슴에

겹겹으로 붉은 멍이 얹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