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물길을 내러 나간다

by 김도형



비가 오면
우산도 없이
물길을 내러 나간다



슬픔이 넘쳐
생각의 싹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해가 뜨면 마침내 누렇게 떠서
바람 속에 누워있지 않도록



적막한 밤에 비가 내려
유리창도 빗방울에 젖어들면
한낮의 뜨거운 위로를 반납해야 한다



우리는 맑은 날들만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지않아 어둠이 찾아왔고

밤은 차가운 비를 동반했다



헤어져 돌아오는 길

가로등 아래에서 얼굴에 흐르는

더운 비를 훔쳐냈다



또다시 비가 오고

수로에 물이 차면

지난날의 풍경들이 질식하지 않도록

서둘러 물길을 내야 한다



고마웠다고
감사했다고
가슴에 물길을 내야 한다



굳이 비가 아니어도 마음은 수시로 눅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