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술램프 Jul 24. 2021

꼭 완벽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 『완벽한 아이』, 모드 쥘리앵



『완벽한 아이』는 훈육이라는 미명 하에 15년 동안이나 부모에 의해 자행된 학대를 받으며 세상과 단절된 채 감금되어 있다가 18살에 비로소 그곳을 빠져나와 자유의지로 살게 된 프랑스 심리치료사의 실화이다.


아버지 루이 디디에의 계획과 구상에 의해 만들어져야 하는 아이, 3살에 철책으로 둘러싸인 집에 갇혀 사육당하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받던 아이가 있었다. 


완벽한 아이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겠다는 루이 디디에의 계획은 오랜 시간 준비된 것이다. 

루이 디디에는 악으로 가득 차고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보호하고 인류를 구원할 존재로 길러내려는 야망을 갖는다.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준비 단계로 루이 디디에는 자신의 아이를 낳고 교육시킬 아이의 어머니를 골라내어 자신의 계획하에 길러낸다. 가난한 광부의 여섯 살짜리 딸은 루이의 통제하에 대학교육까지 지원받고 그의 아내가 된다. 딸이 태어나고 4살이 되기도 전 철책으로 둘러싸인 집으로 옮기고 드디어 완벽한 아이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왜곡되고 편협한 세계관의 소유자 루이 디디에는 아이의 하루를 쪼개어 시간표를 짜서 그 틀 안에서만 움직이게 하며 몸과 정신을 통제하려 든다. 강한 정신력을 가지려면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며 어린아이를 캄캄한 지하실에 가두기도 하고 한밤에 불도 없는 정원에 혼자 있게 만드는 등의 담력훈련과 극기훈련을 시킨다. 자신은 세상의 악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할 수 있다며 자신만 믿으면 된다고 세뇌시키지만 정원사 레몽에게 6살짜리 어린 딸이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당하는 사실은 알지도 못한다. 심지어 어머니 자닌은 자신의 어린 딸이 성추행을 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고도 딸을 구하기보다 현실을 외면해버린다.


 루이 디디에는 철책 안의 세상이 오염된 인간들은 건드릴 수 없는 안전한 곳이고, 자신만이 딸을 보호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지만 모드에게 가장 위험하고 사악한 곳은 바로 가정이었다. 루이 디디에는 가부장적이며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에 젖어 자신의 대소변을 처리하는 일조차 스스로 하지 않고 딸을 시킨다. 어린아이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술을 마시고도 정신을 잃지 않는 강인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며 어린 딸에게 음주를 강요한다. 또한 아버지에 의해 길러진 첫 번째 희생자인 어머니는 학대의 바람막이가 돼주지 못할 뿐 아니라 학대방조자의 역할을 한다.


초인을 만들겠다는 목표만 있을 뿐 자식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본능적인 애정이 존재하지 않는 부모에게서 자라났지만, 모드는 아버지의 폭압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찾는 일에 성공한다. 모드의 곁을 지켜준 동물들과의 교감, 몰래 읽었던 문학 작품, 그리고 음악이 감수성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었으며 용기를 내도록 격려해주었다. 함께 지냈던 동물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고, 문학을 통해 교감하게 된 작품 속 인물들은 아버지의 감시와 억압에 굴복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격려해주었다. 


 비록 부모의 따뜻한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모드는 자신의 상황을 알아차리고 도와주려는 음악 선생님 몰랭에게서 희생적인 사랑을 받는다. 몰랭 선생님의 도움으로 모드는 세상으로 나오게 되고 드디어 자유를 찾게 되었다. 세상과 격리되어 살아온 탓에 타인과 대화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사회화를 위한 모든 것을 배워야 했지만, 이겨 내고 세상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성인이 된 모드는 법대를 졸업한 후 법무사의 길을 걷다가 자신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같은 정신적 고통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길을 찾아 심리치료학과 정신의학을 공부하고 심리치료사가 되었다.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드러내 보이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상처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심리치료를 받은 후 비로소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17살까지 15년 동안 지속된 학대의 경험을 모드 쥘리앵은 56세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한다.


인권유린과 아동학대의 현장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삶을 살게 된 모드 쥘리앵의 생생한 삶의 기록은 부모의 건강한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어떤 부모인가를 돌아보고, 바람직한 부모의 소양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할 수 없다. 부모는 자식의 인생을 지시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없다. 내 삶의 계획은 내가 세우는 것이며 나의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완벽한 아이의 기준은 무엇일까?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꼭 완벽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허술해도, 모자라도 스스로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는 삶이라면 그걸로 된다.     


67.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소유물이다. 내 안에도 주위에도 더이상 살아 있는 공간이 없다. 


  69.
사실 우리 식구는 평상시에도 거의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대화’ 혹은 ‘담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르침을 주거나 명령을 내릴 뿐이다. 아버지가 말을 시작하면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듣는다. 무슨 말인지 전형 알아듣지 못할 때도 많은데, 그럴 때면 공포가 내 마음을 잡아먹는다.      


70. 
내가 죽음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텅 빈 침묵 앞에서 찾은 놀라운 위안, 동물들과의 대화 덕분이다.      
92.  
어머니는 여전히 기쁨에 취한 눈길로 잠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우리는 곧 시선을 돌린다. 서로를 바라보는 게 우리에게는 너무 낯선 일이다.     
93. 
나는 인내를 통해 승리하는 첫 번째 나사송곳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언젠가 나 자신이 땅속에 박혀 목만 밖으로 내민 나사송곳이 된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겁이 난다. 나는 어느 곳에도 자리잡지 않고 깡총거리며 돌아다니는 운명이 더 부럽다.     
119. 
나는 말을 듣고 있는 척, 어머니의 수업을 듣고 있는 척, 숙제를 하는 척,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척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을 따르는 척, 사는 척한다. 하지만 나는 없다. 내가 있는 자리에 나는 없다. 나는 아무데도 없다.     
이어지는 날들은 매일매일이 똑같다. 내 삶 전체가 길고 메마른, 끝이 보이지 않는, 자비 없는, 단 하나의 똑깥은 날이다. 나는 쟁기에 묶인 소처럼 일과표에 매여 있다. 온 힘을 다해 쟁기를 끈다. 왜 끌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질문도 못 한다. 숨도 거의 쉬지 못 한다.     

양육이 아니라 사육을 하듯 자식을 길러내는 교육관은 아이의 인성을 병들게 하고, 삶의 의지를 꺾어놓는 무모하고 위험한 것이다. 모드는 15년을 광적인 아버지에게 학대당했으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로 탈출에 성공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137.  삶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강하다. 언제나 해결책이 있다. 기필코 그것을 찾아내리라. 나는 굳게 믿는다.     
158.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을 때마다 결말에 담긴 냉혹한 교훈이 나를 죄어온다. 그 교훈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마. 언젠가 자신의 광기를 깨닫는 날이 온다 해도,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사람이야. 도망쳐!”     

아무리 억압하고 통제하려고 해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막을 수는 없다.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도 손가락 사이의 좁은 틈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빛마저 가릴 수는 없다. 모드는 부모의 감시를 피해 숨어서 몇 페이지씩 책을 읽으며 진리를 깨우치고 자유의지를 키우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너의 옆에 있어 줄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