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없이 찍어댄 점들이 만들어준 기회

이 점들이 내일은 어떤 선으로 이어질까

by 차림식


때로는 ‘그냥’하는 것들이 어느 순간 ‘기회’로 이끌 때가 있다. 내 인생에는 뜬금없이 찍어댄 점들이 수두룩하다. 책, 도서관, 선생님, 애기엄마••• 단어만 봤을 때는 다 같은 선상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내게는 점이었다.


최근 인생 지도에 찍은 맥락 없는 점은 바로 ‘AI툴‘이다. 그 툴을 활용한 영상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뜬금없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조언도, 그 시간에 자격증을 따면 더 안정적일 거라는 조언도 모두 다 쿨하게 받는다. 하지만 내 등 뒤에는 낭떠러지뿐이다. 무엇을 하든 내게는 앞으로 나아갈 길만 있기에, 지금은 맥락 없는 점에 불과한 영상채널 운영이 인생의 연장선을 만들어 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6년의 공백을 안고 돌아온 세상은 내 짐작보다 더 낯설고 상상 속의 세계 같았다. 이대로 멈춰 있다가는 이 흐름에서 영영 밀려날 것 같다는 공포가 몸을 움직이게 했다.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분명 나은 법이다.



세상이 내어준 공평한 기회들


얼굴 공개 없이 시스템을 실험하기에 AI는 제격이었다. 복잡한 장비도 필요치 않았다. 아이를 재운 밤, 짐 박스 사이에 놓인 노트북 한 대면 충분했다. 세상이 열광하는 소재에 새로운 기술을 입혀보는 일은, 갇혀있던 일상에 작은 숨구멍을 내주었다.


기술의 발전은 생각보다 공평하게 기회를 나누어주고 있다. 거창한 준비 없이도 기획력과 도구만 있다면 언제든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다. 6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세상은 의외로 많은 틈을 내어주고 있었다. 결과물이 어딘가에 닿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사회적으로 여전히 ‘쓸모’가 있다는 확인은 그 어떤 위로보다 강력했다.



글쓰기, 일상을 세우는 이성적인 질서


물리적인 공간은 한 뼘으로 줄었지만, 발을 디딜 수 있는 세계는 오히려 넓어졌다. 가족들로 북적이는 환경에서 온전히 혼자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노트북 모니터 속 ‘글을 쓰는 공간’이다.


채널운영이 내가 세상과 연결됨을 느끼는 고리라면, 글쓰기는 나의 내면을 지탱하는 닻이다. 단순히 기록만 하는 게 아니라, 엉망으로 뒤섞인 일상과 감정을 하나씩 꺼내 정돈하고 배열하는 생각의 정비 시간이 좋다.


머릿속에만 머물면 고통이고 후회인 기억들이 문장으로 옮겨지는 순간 ‘다룰 수 있는 대상’이 된다. 글을 통해 상황을 객관화하고 마음을 갈무리하며 정신의 주권을 되찾는다. 적어도 쓰는 동안만큼은 누구의 딸도, 엄마도, 아내도 아닌 오직 스스로로 존재할 수 있다.



침범받지 않는 생각의 요새


생각을 정리하고 맞는 차림을 찾아가는 이 과정은 결국 생존의 길이다. 나만의 차림이 단단해질수록, 그 어떤 흔들림 속에서도 다시 삶을 차려낼 수 있을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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