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최소한의 질서를 차리기
정신없이 바빴던 반 년간의 행정매니저 역할을 마치고 나니,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몇 달간 나는 꽤 기민하게 움직이는 전략가처럼 굴었고, 내게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매일을 버티고 있었다.
덕분에 어쨌든 태풍은 지나갔다. 그리고 거대한 태풍이 사라진 뒤 거울 앞에 서 보니, 그곳에는 누군가 싶은 30대 후반의 여성이 한 명 서 있었다.
육아라는 이름의 6년짜리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복귀자였다. 무릎이 툭 튀어나온 회색 추리닝 바지에 건조한 얼굴. 파견지에서는 ‘엄마’라는 임무를 완수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막상 복귀하고 보니 내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비참함, 슬픔, 자기 연민과 같은 감정이 전혀 아니었다. 뭐랄까, 꽤나 마음이 건조하고 서늘했다. 현실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무릎 나온 추리닝 바지를 내려다봤다. 원래도 미적 기능이 있는 옷을 자주 입지는 않았다. 외출복과 실내복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는 편이라 효율적인 추리닝을 좋아하는데, 이 옷을 가만 보니 나를 끊임없이 '대기 상태'에 머물게 하는 듯했다. 사회적 자아를 가진 개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뒤처리를 돕는 보조자라고 인식하게 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았고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바로 나를 위한 선물이나 증명서가 아니라, 나를 다시 나답게 만드는 최소한의 규칙. 나를 잘 차리는 마음이 간절하게 필요했다.
차림식은 대단한 비결이 아니다. 그저 무릎 나온 추리닝을 벗어던지고,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상태를 스스로 만드는 지극히 현실적인 질서다.
예를들면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와 나로서 일할 '작업복'을 갖춰 입는 것이다. 대단한 외출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릎이 나오지 않은 바지와 단정한 상의를 골라 입는다. 그리고 내 자리 한 평을 마련하고, 그곳에 커피 한잔을 내려 무조건 앉는 것이다.
나를 찾는 게 아니라, 나를 궁금해하기로 했다
책상 앞에 앉아 나만의 자리를 만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경력 단절 여성들이 말하는 '꿈 찾기' 같은 낭만적인 이야기는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꿈을 찾는다는 건 막연한 표현이었다. 나는 설계도를 그리기로 했다. 나를 해체한 뒤 다시 지어 올리는 이성적인 과정의 설계도.
누구의 딸이나 아내, 엄마로 소모되었던 에너지를 회수해, 오직 나라는 인간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도를 다시 그리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더 궁금해졌다. 진짜 밑바닥을 찍고 나니 오히려 담담해졌다. 더 무너질 곳도 없으니 이제는 내가 원하는 대로 다시 지어 올리면 그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 가지였다.
1. 경제적 독립: 내 손으로 직접 굴려 만드는 단 1원의 가치를 확인하는 것.
2. 지적 영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나만의 생각 저장소를 구축하는 것.
3. 관계의 재설정: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도 침범받지 않는 나만의 요새를 세우는 것.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건 타인의 인정과 승인이 아니라, 내가 나를 대하는 이 ‘차림의 방식’이다. 물론 영점에서 시작하기에 오랜 시간 시간의 누적이 필요하겠지만, 그 너머를 그리며 매일을 쌓으려 한다.
이를 위해 이제 이 좁은 마음의 방 안에서 나가, 나의 첫 번째 영토인 '경제적 독립'을 정복하러 가야 했다. 내게는 어떤 차림이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