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간 다섯 개의 부동산 계약서가 남긴 것

미래의 수익보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

by 차림식

일 년 동안 다섯 번의 부동산 계약서를 썼다. 누군가에게는 일생에 몇 번 없을 경험이겠지만, 내게는 부동산 방문이 편의점 가는 것과 비슷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가 보면 벼락부자 된 줄 알겠다..


계약서의 시작은 부모님의 오래된 빌라를 매도하는 일이었다. 하필 불법 건축물이라는 결함이 있었다. 부모님께서는 벌금을 내며 살고 계셨다는 걸 몰랐다. 매도가 안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주인 없는 집은 없다고 이 조건을 안고도 매수하고 싶은 사람이 등장했다. 리스크에 대해 여러 번 설명한 뒤, 특약을 써서 결국 매도에 성공했다. (이때만 해도 모든 게 잘 풀릴 줄 알았다.)


매도를 했으니 매수지를 알아보는 와중에 부모님이 다주택자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아… 소위 말하는 썩은 빌라에 전세까지 낀 집이 도대체 어딨 다가 나타난 건지… 솔직히 말하면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부모님의 취득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매수와 매도의 타이밍을 조율하며 아슬아슬하게 아파트로 입성시켜 드렸다. (여기까지 또 잘 풀리는 줄 알았다.)


내 계획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우리 집도 상급지로 갈아타기 위해 전세 줬던 집을 매도했고,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의 전세금을 빼서 현금을 확보할 계획을 짰다. 투자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잠시 월세로 몸을 가볍게 하며 '다음 한 방'을 노렸다. 하지만 인생은 정교한 엑셀 시트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지…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라는 걸 몸소 깨달았다.


확보한 현금을 손에 쥐고 다음 스텝을 밟으려던 찰나, 예기치 못한 가족의 상실이 덮쳤다. 슬픔을 수습하기 위해 부모님과의 합가가 결정되었고, 어느덧 월셋집으로의 이삿날이 다가왔다. 전세로 살던 집은 아직 나가지도 않았다. 이자는 이자대로 나갔지만 어쨌든 이사는 가야 하니, 부모님 집도 매수한 지 3개월 만에 다시 매도하게 되었다. 이번에도 집마다 주인이 있다고 느낀 게, 매도까지 일 년은 예상했는데 내놓자마자 한 달 만에 매수자가 등장했다. 물론 잔금을 약속일이 아닌 자기 멋대로 아무 때나 입금하는 정말 독특하신 분이셨으나, 오차 없이 입금받았고 무탈히 매도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나를 거친 집들의 기록. 지나고 나니 이또한 내 경험이라 감사함 마음뿐.


동시에 이사를 하니 좁은 공간에 두 가구의 살림살이가 쏟아져 들어왔다. 거실은 짐 박스로 가벽이 생겼고, 물건더미에 끼어 잠을 청해야 했다. 물리적 압박감보다 더 컸던 것은 부모님의 깊은 한숨 소리였다. 그 소리는 공기 중에 섞여 나를 짓눌렀고, 그 슬픔을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짓눌린다 생각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산의 증식보다 지금 더 절실한 것은 우리 가족이 온전히 발 붙일 수 있는 '안정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동산 계약서를 다섯 개나 썼으니 대박 부자가 되었을 것 같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나는 시장에 패배했다. 내가 짐 박스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안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았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다녔던 임장의 시간들은 수익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기회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나는 '최고의 타이밍'을 기다리는 대신, 가진 현금을 몽땅 털어 큰 평수의 전세로 옮기기로 했다. 미래의 수익률을 저당 잡히고, 지금 당장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사기로 한 것이다.


언제나 미래를 위해 오늘의 불편을 당연하게 감수하며 살아왔다. '현실의 안정'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을 계산기에 넣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전세금에 현금이 묶이는 이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지 지금도 확신할 수는 없다.


지금 사는 집은 훨씬 넓고 크지만 낡은 체리색 몰딩으로 가득하다. 관리가 엉망이었던 집 상태 때문에 부동산과 소리를 지르며 싸웠고, 집주인을 상대로 끈질기게 협상한 끝에 겨우 몇몇 수리를 받아냈다. 이곳은 내가 꿈꾸던 완벽한 보금자리는 아니다. 여전히 나는 이 공간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지만, 마음만은 이전보다 조금은 여유로워졌다.


오락가락하는 일상 한복판에서, 나는 내게 맞는 '차림'을 계속해서 찾아 나가기로 했다.

큰 집으로 이사 왔지만 새로운 가구를 구매하지 않았다. 대신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닦고 배치하며 나만의 질서를 세우고 있다. 필요한 것은 중고 거래를 이용하고, 새것으로 채우는 대신 체리몰딩 방 안에 내 생각을 정리할 자리를 만든다.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흩어진 생각을 정돈하고 오늘 하루를 잘 차려내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삶을 장악하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아직 완벽히 안정적이지도, 편안하지도 않다. 그러나 내가 처한 환경이 어떻든, 내가 가진 것들 안에서 최선의 식(式)을 만들어가는 이 과정 자체가 나를 성숙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차림식'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무너질 것 같은 일상을 붙들고 나만의 좌표를 찾아가는 이 기록들의 합이다. 비록 세련된 무몰딩의 화이트 컬러의 내 집은 아니지만, 오늘 내가 차려낸 이 문장들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4화남겨진 이들이 결국은 해야 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