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전하는 지침서 2
장례가 마침표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앞으로의 삶이라는 긴 마라톤의 시작점에 불과했다.
상실을 겪은 이들이 마주하는 두 번째 관문은 슬픔을 서류로 증명하고, 고인의 흔적을 숫자로 환산하는 일이다. 이것은 이미 벌어진 상처를 다시 한번 날카로운 칼날로 할퀴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시간의 연속이다.
1. 한정승인, 고인의 고통을 추측하는 시간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한정승인’이라는 생소한 절차였다. 고인이 남긴 자산보다 부채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혹은 명확하지 않은 재산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법무사를 찾아갔다.
차가운 사무실에 앉아 고인의 채무 관계와 통장 내역을 훑어보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서류 더미 속에서 생전의 고인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했는지, 어떤 말 못 할 짐을 지고 있었는지 자꾸만 추측하게 됐다. 숫자로 남겨진 고인의 고통을 뒤늦게 마주하는 일은, 장례식장에서 흘린 눈물보다 훨씬 더 시리고 아팠다.
2. 사망보험금, 생명의 값을 수령하는 비극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사망'을 알리고 보험금을 청구하는 과정은 상처를 다시 할퀴고 아물지 못하도록 거칠게 벌려 버리는 것과 같았다.
고인의 생명을 담보로 책정된 금액이 적힌 통지서를 받을 때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의 무게가 고작 이 숫자로 치환된다는 사실에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돈이 절실한 현실과 그 돈을 받기 위해 고인의 부재와 이유를 반복해서 증명해야 하는 상황. 살면서 돈 앞에서 이토록 기쁘지 않다니 생경한 경험이었다.
3. 비극의 타이밍과 행정적 사투
부모님께서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이 모든 일은 나를 더욱 막막하게 만들었다. 짐도 다 풀지 못한 낯선 공간에서, 슬퍼할 겨를도 없이 법무사 사무실과 관공서를 오갔다.
감정은 한번 무너지면 영점 조절이 되지 않는데, 행정은 단 1원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고인이 남긴 마지막 흔적조차 지켜내지 못할 것 같다는 공포가 나를 채찍질했다.
비극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 뒤처리는 지독하리만큼 이성적이어야 했다. 한정승인 신청서를 접수하고 보험금 청구 서류를 등기로 보내며 나는 깨달았다. 이 차가운 행정의 숲을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 또한 고인을 향한 마지막 예의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자면, 반년이 지나 이 모든 기록을 남기는 지금도 여전히 모든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차가운 이성'이나 '절차'를 집요하게 입에 올리는 이유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슬픔의 파도에 잡아먹히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모래성을 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례와 행정이라는 긴 터널을 통과하며 배운 확실한 진실 하나는, 누군가는 반드시 이 일련의 과정들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슬픔은 나눌 수 있어도, 서류에 찍어야 할 인감도장의 무게까지 나눌 수는 없다. 누군가는 상주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법무사를 찾아가야 하며, 누군가는 숫자로 치환된 고인의 삶을 마주해야 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지독하고 건조한 과정들을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동안,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외면이 아닌 '수용'의 영역으로 조금씩 옮겨오게 된다. 그것은 한 인간이 어른으로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아프고도 성숙한 성장통이다.
나는 고인을 대신해서 살 수는 없다. 냉정히 생각하자면 비록 가족일지라도 고인의 삶이 내 삶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고인이 남긴 부스러기들을 정갈하게 갈무리할 의무는 내게 있다.
이번 상실을 겪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하게 확인했다. 나는 아수라장 같은 비극의 한복판에서도 끝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감정이 나를 무너뜨리려 할 때마다 '지금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떠올리며 스스로와 주변을 지탱하는 사람. 누군가는 뼈가 시리게 냉정하고 차갑다 말할지 모르나, 그것이 내가 상실에 예우를 갖추는 최선의 방식이자 스스로를 지키는 유일한 기술이었다.
상실 이후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백 번이고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여전히 가족들의 눈물을 마주하고 억지로 살아갈 힘을 쥐어짜야 한다.
그럼에도 차가운 절차들을 딛고 일어선 나는 이제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깊어진 눈으로 내 삶을 다시 차려낼 준비가 되었다.
이제는 비현실의 숲을 지나 진짜 나의 공간으로 돌아갈 차례다. 상실을 겪은 이들이여, 부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서류 더미 속에 숨어 있는 고인의 아픔을 마주할 용기, 그리고 그 아픔을 행정적으로 갈무리해 낼 차가운 이성이 필요하다. 이 지옥 같은 절차를 모두 마친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그 어떤 서류에도 적히지 않은 고인의 진짜 추억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