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현장으로 꺼낸 유럽 에필로그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끝으로 유럽여행의 종지부를 찍었지만,
한 가지의 중요한 절차가 남아있었다.
이틀간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귀국길을 밟아야 했다.
일주일 넘게 낯선 땅에 있으며 차츰 한국 생각이 났지만,
출국길의 그 고됨을 귀국길에서 다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그간 답답한 비행기에서 벗어나 버스와 기차를 타며
그리고 걸으면서 자유롭게 유럽 땅을 누볐기 때문에,
그 부담감이 더 컸던 모양이다.
귀국하기 전 사흘 밤을 묵었던 Hotel Italia는
좋게 말하면 고풍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낡은 숙소였다.
그간 묵었던 숙소들보다도 훨씬 낡아서,
이 숙소에 처음 왔을 때는
여기서 사흘을 묵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바로 곯아떨어져서 어찌저찌 사흘을 묵었다.
이 숙소의 조식은 항상 똑같다.
이 숙소에서 여러 번 묵었던 걸로 보이는 가이드가 말하기를,
'10년 내내 조식이 똑같다.'라고 했다.
정말 숙소에서 묵었던 사흘 내내 조식 구성이
'단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즉, 조식에 특이점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 숙소를 떠나는 날에는 조식 사진을 남겼다.
영국 숙소의 조식 사진과 함께 유이한 조식 사진으로 남았다.
영국 숙소에서 조식 사진을 남긴 것은,
'그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도
좋은 숙소에서는 음식이 맛있게 나온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반면, 이 숙소에서 조식 사진을 남긴 것은
'365일 내내 똑같은 구성의 조식을 제공하는 숙소가 있다.'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분명히 재밌는 추억거리로 남을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첫 유럽여행에서의 정말 마지막 순간을
남기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썩 좋아보이지 않았던 숙소도 사흘 밤을 묵으니
'미운 정'이 들어버렸다.
숙소를 나오고,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가 조금 지난 때였다.
두바이행 출국 비행편이 뜨는 오후 3시까지,
면세점에서 기념품을 사고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떼웠다.
그냥 평범한 카페 같은 곳에서 피자를 먹었는데,
왠만한 피자 전문점의 피자만큼 맛있었다.
피자의 고장이라 그런가보다.
5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다시' 두바이 국제공항으로 왔다.
영국으로 출국하기 전 경유했을 때,
공항을 둘러보고 여러 사진을 남겨서 특별히 감흥은 없었다.
다만, 특이점이 없었던 이탈리아에서 마지막으로 묵은
숙소에서도 조식 사진을 남겼듯이,
출국 과정에서 경유해 이미 특이점이 없어진,
두바이 국제공항에 다시 경유했을 때 남긴 한 가지 사진이 있다.
'서울-인천행(Seoul-Incheon) 안내판'이 그것이었다.
그 안내판에 뜬 서울-인천행 문구가 어찌나 반가웠던지 모르겠다.
한국어와 많이 다른 언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한국인과 정서가 많이 다른 사람들이 주인이고,
한국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 계속 펼쳐지는 낯섦만을 경험하다가
간만에 익숙한 것을 보니 정말 반가웠다.
인간은 어떤 국적이나 정주 환경 속에 규정되면,
규정된 공간에 익숙해져 벗어나기 어려운 습성을 가지게 된다.
늘 소속된 공간에 익숙하다 못해 진부함을 느껴,
그곳에서 막 벗어날 때는 새로움, 해방감에 젖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한 공간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한다.
그것이 인간이다.
필자도 평소 유럽의 역사,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필자를 규정하는 공간, 정체성은 한국이다.
그렇게 인천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마지막 귀국편 비행기에 탔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여느 일상을 보내고 있다.
좋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기록을 남기는 건
예삿일이 된 지 오래이다.
짧은 시간에 인상적인 시각 정보를 접하려는
시대적 추세가 반영되며,
'글'보다는 '사진'이 중심이 되는 여행 기록을
남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확실히 사진이 주는 시각적 효과가 크긴 하다.
자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독특한 매력을 주는 이국의 풍경은
누구에게든 관심을 끌기 좋은 요소이다.
그러니 선별된 여행 사진 모음을 공유하는 것은
SNS에서 한 번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을 때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되어준다.
그러나 필자는 이 시대적 추세를 단호히 거부했다.
'여행은 왜 가는 걸까?'라고 질문을 던졌을 때,
각자 생각하는 답변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옳고 그름 또한 없다.
필자는 그 질문에 대해
'배움' 그리고 '인식의 변화'에 무게를 주어 답변하겠다.
특별히 유럽여행에 한해서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
이상의 씨앗을 심는 행위'의 수식어를 하나 더 추가해야
이 여행기를 쓴 목적을 제대로 설명할 듯 싶다.
평소 필자는 유럽을 여행하는 것과 배우는 것의 간극이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온 뒤,
그 간극의 이유를 조금 더 정확히 진단하게 되었다.
전자는 누구나 '오랜 꿈'으로 간직한다.
유럽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화유산이 많기도 하고,
여러 측면에서 새로움과 재미를 느끼기에 확실히 좋다.
단지 여행을 위한 준비가 어려울 뿐,
막상 여행길에 오르면 싫어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반면, 후자는 '소수만 아는 흥미' 같다.
새로움과 재미가 있는 전자와 달리,
후자는 주로 책 속에서 지식을 골몰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상,
'먼 나라의 현학적 이야기'로 도외시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한 가지의 중요한 차이점을 도출할 수 있다.
전자는 '현장'에서 '직접 무언가를 경험'하고,
후자는 '책 속'에서 '이론을 골몰'한다.
당연히 보통 사람 입장에서는 전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후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자를 때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해서 문제이다.
한국과 유럽은 지리적으로 너무 멀고,
한 번 여행하기에도 쉽지 않다.
당장 국내의 어느 대학 사학과를 불문하고,
유럽 답사는 '실현 불가능한 일'로 여기고 있다.
결국 간극을 알면서도 줄일 수 없는 불가항력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실적 문제로 인해
'유럽이 어떤 공간인지, 어떤 내력을 가지는지'를
제도권 교육에서 충분히 배우는 데 제약이 존재하고,
그마저도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상의 씨앗을 심기로 했다.
여행기를 통해서 말이다.
보통 사람의 관심을 끌기 좋은 '유럽여행의 경험'을 전면에 내세우되,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틈틈이 집어넣어
독자 여러분이 유럽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기를 원했다.
그것은 곧 여행은 '배움'이자 '인식의 변화'라고
생각하는 필자의 의도와도 부합하는 일이었다.
필자와 독자 여러분의 눈높이는 같다.
필자 또한 여행기를 쓰기 위해 각종 정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인식의 변화 또한 이루어졌다.
'가르치려는' 여행기가 아니라, '같이 배우는' 여행기를 추구했다.
여행기를 쓰며 가장 어려웠던 점은
'어떤 내용을 담고, 어떤 내용을 빼는가?'였다.
꼭 담고 싶은 내용도 줄줄이 열거하면 '진부한 보고서'가 될까봐,
글의 무게와 분량을 생각해 내용을 간략히 줄이면
'중요한 맥락'이 생략될까봐 전전긍긍했다.
본문의 후반부에 다다르면서 그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필자보다 유럽여행을 여러 번 간 사람,
서양사 공부를 전문적인 업으로 삼는 사람은 훨씬 많다.
필자는 그저 유럽여행이 주는 흥미와
유럽을 탐구할 때 얻는 정확한 지식을 합치시키는
'중간 지대'를 여행기로써 모색했을 뿐이다.
이 시도에 대한 평가는 독자 여러분 개개인에게 맡긴다.
다만, 여행기의 전체적인 반응이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이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의견이 우세한 듯 하다.
감사할 일이다.
이제 책 속에서 꺼낸 현장의 유럽을
다시 책 속으로 넣어두려고 한다.
그렇지만 이 여행기는 언제든 열려있고,
언제든 현장의 내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후일 기회가 되어,
책 속으로 '남겨진' 현장의 유럽을
다시 꺼내 덧칠하는 두 번째 여행기를 쓸 날을 고대해 본다.